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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토 Jun 19. 2020

오늘부터 진짜 부부 / 김아연,박현규  

처음이라 서툴러요 

수술실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나를 간호사가 불렀다.  “안으로 들어오세요”

“몸무게 3.3kg, 여아입니다. 왼쪽 손가락 5개, 오른쪽 손가락 5개, 왼발 발가락 5개, 오른발  발가락 5개” 간호사는 손가락과 발가락을 하나씩 쳐들고 나에게 보여주면서 숫자를 세기 시작했다.

“맞지요?”  

간호사의 환한 미소는 바라지도 않았지만 마치 생닭이나 활어를 쳐들고 ‘아주 싱싱하니 확인해 보세요”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당황한 나는 얼떨결에 “네”라고 대답했다.

갓 태어난 아이와 아빠가 처음으로 대면하는 순간이었고 5분도 안 되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만감이 교차했다. 맷돌이 날아와 가슴 한 복판에 박히는 느낌이었다. ‘아 이제 나도 한 사람의 아빠가 됐구나!’. 살면서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무거운 책임감이 구름처럼 몰려왔었다.


이렇게 큰 아이가 어떻게 사람의 뱃속에 열 달이나 들어가 있었을까 하고 생명에 대한 경외감이 들기도 했지만 아이의 모습은 나의 상상과 달랐다. 이마는 쭈글쭈글하고, 코는 납작하고, 양 볼은 벌겋고…… 솔직히 귀엽거나 예쁘다는 느낌보다 영화 속 ET 같았다. 드라마에 나오는 것처럼 ‘혹시 아이가 바뀐 것은 아닐까?’ 의심하며 수술실 밖 의자에 앉아 혼자만의 소설을 썼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처음 태어난 아이는 거의 이렇게 외계인 같은 모습으로 엄마 아빠와 만난다고 한다.


지구인 같지 않던 아이는 어느덧 자라 성년이 되었다. 자나 깨나 뿡뿡이를 안고 놀던 아이는 이제 대학생이 돼서 연애를 하고, 아르바이트를 해서 돈도 벌고, 나와 같이 맥주를 마신다. 가끔 나에게 술 좀 줄이고 운동하라는 잔소리도 잊지 않는다.

혹시 이 아이가 나중에 결혼하고, 가정을 꾸려 우리 부부가 살았던 것처럼 비슷한 인생의 여정을 걷는다면 아빠인 나는 딸에게 어떤 조언을 해주면 좋을까? 나처럼 중간에 길을 잃고 머뭇거리거나 어디로 갈지 헷갈릴 때, 먼저 가본 나에게 화살표의 방향을 물어본다면 나는 뭐라고 대답해야 할까? 솔직히 자신이 없었다.

결혼도 한 번밖에 못해 봤고, 부모가 된 적도 처음이었다. 아이를 키운 것도 한 번뿐이다. 부부와 부모가 되는 것에 대해서 배우거나 미리 실습을 해 본 것도 아니었다. 물건도 많이 사본 사람이 좋은 물건을 고르는 안목이 있다는데 인생의 중요한 일들을 죄다 한 번밖에 못했으니 어떻게 나의 아이에게 삶의 충고를 해줄 수 있을까?  


아내는 읽어보라고 하면서 이 책을 책상 위에 남겨두고 야구를 보러 거실로 나갔다.

 왜 이렇게 결혼 생활과 아이들 양육이 힘들고 어려운 걸까?라고 질문하는 부부를 위해 아주 실질적인 조언과 방법들을 알려준다. 내 아이에게 내가 알려 주고 싶었던 작지만 중요한 삶의 도구들을 소개하고 있는 것 같다.


‘남자는 여자가 평생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기대하고, 여자는 남자가 결혼하면 변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많은 사람들이 익히 들어 아는 말이지만 현실은 반대다. 여자는 변하게 되고, 남자는 결혼해도 절대 변하지 않는다. 기대가 실망으로 변하니 부부관계가 악화되고 심할 경우 서로를 증오하고 결혼생활이 파탄 나기도 한다.

 간혹 회사에서 점심을 먹으면서 30대 초반인 직원이 질문을 한다. 결혼을 꼭 해야 하는 건가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나는 “아니 꼭 할 필요 없어”라고 대답한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양육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알고 있기 때문이다. 차라리 안정적이면서 좋아하는 직업과 취미가 있으면 결혼하지 않아도 좋을 것 같다고 말한다.

이 책에서 말하는 것처럼 연예와 결혼은 다르고 아이를 낳기 전과 후의 결혼 생활은 완전히 달라진다. 삶이 달라지는 것을 인정하고, 자신의 생활 패턴과 관심의 우선순위를 바꿔야 하는데 이게 잘 안 된다. 안되기도 하지만 이 모든 일들이 처음 해보는 일이다 보니 서툴고 어렵다. 그래서 더 힘들다.


 농경사회에서는 아이의 숫자가 노동력이었다. 아이를 많이 낳아야 농사에 힘을 보탤 수 있었지만 지금은 1명의 천재가 수만 명을 먹여 살린다는 시대다. 직장이 집 근처 밭이나 논이었으니 아이를 바구니에 뉘어 두고 김을 매거나 모를 심을 수도 있었지만 지금은 아이를 안고 직장에 출근할 수 없다. 해가지면 일을 더 하고 싶어도 못했으니 야근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게다가 지금은 아이를 먹이고 입히는 것 외에 할 일이 훨씬 더 많아졌다. 유아일 때는 먹이고 재우고 돌보고 치우느라 지치고, 학교에 들어가면 숙제를 봐주고, 용하다는 학원을 알아봐야 하고, 대학을 가기 위해 정보를 수집하고 바뀐 입시전형을 같이 공부해야 한다. 산업화 경쟁사회에서 육아는 쉽지 않다. 이러다 보니 에너지가 소진되고 피곤해지면서 서로에게 짜증을 내고, 사소한 일들로 싸움이 잦아진다. 부부간, 자식과 부모 간에 금이 가기 시작한다.


대개 처음 하는 일은 잘하고 싶다. 첫사랑. 첫 아이. 첫 직장. 하지만 냉정하게 말하면 잘 못하는 것이 정상이다. 자전거 핸들을 잡자마자 달리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그런데 사람들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고 어려운 일인 사랑을 하면서, 부부가 되면서, 부모가 되면서 잘할 수 있다고 착각한다. 그리고 잘해야 된다고 욕심을 부린다. 뜻대로 안 되면 자신을 미워하고 아내나 남편, 아이에게 화를 낸다.

아내도 남편도, 아빠도 엄마도, 아이도.. 모두들 처음 해보는 거라 모두 서툴고 힘든 것이다.


시간이 약이 아닌 경우도 있다.

언젠가는 스스로 깨닫겠지 하면서 참고 산다고 해서 양말을 벗어서 아무 데나 던져두는 일이 없어지지 않는다. 며칠 동안 엄마가 없으면 집은 늘 폭탄 맞은 것처럼 변하게 된다. 저자가 말하는 것처럼 말을 하지 않는데 엄마나 아내의 마음을 이해하는 아이나 남편은 지구 상에 없다.

내가 엄마이니 힘들 더라도 직접 해야지, 참아야지 하면서 끓어오르는 화를 억제하고 있는 엄마.

아내가 알아서 하니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고 오해했던 나 같은 남편들이 읽고 문제를 찾아서 방법을 생각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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