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가 쓴 딸의 교환학생 체험기
일주일 후면 딸이 떠난다. 짐 싸기 귀찮아 여행도 꺼리는 데 일 년 치 짐을 챙겨야 하니 막막했다. 거실에 여행가방을 꺼내 놓고 목록을 작성한 다음 하나씩 지워가며 넣어 보라고 시켰다. 일 년 동안 입을 옷과 신발. 참기름, 고추장, 깻잎 통조림 같은 먹거리. 여벌의 수건과 속옷을 챙기고 덜어낼 짐은 없는지 빠뜨린 건 없는지 아내가 여러 번 확인하고 꼭 필요한 물건만 눌러 담아 무게를 쟀다. 22.5 kg. 23Kg을 초과하면 추가운임을 내야 하는데 합격이다. “한 번 들어봐” 끙끙거리며 들어 보지만 지면에서 고작 십 센티. 그것도 몇 초 못 버티고 무겁다고 내려놓는다. 비행기에 들고 타는 작은 캐리어와 백팩도 있는데 저 많은 짐을 메고 끌고, 기차 타고 버스 타고 숙소까지 갈 수 있을까? 한숨이 절로 나온다.
순례길에서 만났던 이십 대 초반의 여학생이 떠 올랐다. 배낭이 너무 무거워 버릴 건 없는지 매일 고민하고 있었는데 놀랍게도 그 학생은 학교 갈 때나 멜만한 작은 배낭을 메고 있었다. 검은색 삼선 줄무늬 운동복에 운동화 한 켤레로 한 달을 걸은 것이다. 침낭은커녕 잠바 하나도 제대로 들어갈 것 같지 않은 작은 배낭에는 여벌 옷 한 벌과 속옷, 세면도구만 있을 것이다. 그 학생이 생각나 멋 부리러 가는 것도 아닌데 최대한 짐을 줄이라고 말했지만 옷이나 가방 신발은 절대 포기 못 한단다. 여러 번 고민하다 고작 꺼내 놓은 짐은 옷이 아니라 참기름이나 밑반찬이었다. 펼쳐 둔 캐리어에 쭈그리고 앉아 사진 찍어 달라고 어리광 피우더니 출국일이 다가오자 잠도 제대로 못 자고 걱정하기 시작한다. 짐도 무겁지만 일 년 동안 밥하고 빨래하며 학교 다닐 생각 하니 갑갑한 것이다. 아내와 나도 걱정되기는 마찬가지만 애써 내색하지 않았다.
병아리가 자라 오개월 정도 되면 어미닭은 졸졸 따라다니는 병아리를 부리로 쪼고 높은 곳에 올라가 외면한다고 한다. 엄마닭의 변심이 서운하겠지만 혼자서 먹이 찾는 훈련을 시키는 것이다.
부모가 자식을 평생 돌볼 수 없다. 천둥 번개를 피하며 먹이를 찾다 보면 위험 앞에서 도망치거나 맞짱 떠야 할 때가 있는데 이런건 부모한테 물어볼 게 아니라 코피 터지고 상처가 아물면서 혼자 깨달아야 한다. 새끼가 자라면 세상으로 등 떠미는 건 동물의 본능인데 다 큰 자식을 품 안에 가두고 참견하고 간섭하는 건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뿐이다. 먹이고 입히고 교육시켰으면 부모의 역할은 다했고 먹고살려고 최선을 다한 모습을 자식에게 보였다면 훈련은 충분하다. 멀리 날아가는 새끼를 지켜보는 게 늙어 갈 부모의 유일한 의무라고 외쳤지만 막상 출국일이 다가오니 중간에 포기하지 않고 잘 버티다 올지 걱정이 앞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