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홍지이 Oct 19. 2023

친애하는 나의 어린 친구에게

  이 글을 써야겠다고 생각하기 시작했을 때, 처음으로 헤아려봤어. 우리가 알고 지낸 지 어느덧 12년이 되었더라. 너와의 인연에 대해 이야기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우선은 놀라워해. 사람들은 익숙하지 않은 것을 보고나 들으면, 긴팔을 입어야 할지 반팔을 입어야 할지 짐작하기 어려운 간절기의 옷장 앞에서 서성일 때의 표정을 짓더라.


  너는 처음엔 나의 제자였어.


  교육에 진심이었던 선후배 교사, 함께 성장하는 즐거움을 일깨워 준 학생들, 고된 만큼 보람을 돌려주던 업무, 긴 역사가 구석구석 쌓여있는 정감 어린 교정까지. 출퇴근 거리 딱 하나 빼고 모든 게 마음에 쏙 들던 첫 학교를 등지고, 새로운 도전을 위해 온 학교에서 만난. 부임했던 첫 해에는 우리의 인연이 닿지 않았잖아. 전 학교에서는 설령 작은 실수를 해도 성장을 향한 시행착오가 될 수 있도록 경험과 지혜로 넉넉히 품어주시던 선배들이 계셨는데, 너와 나의 학교는 내 또래의 기간제 교사들이 20명가량이 함께 임용된 것만 봐도 혼란과 변화의 시절을 겪는 중이었거든. 뭔가 다들 얼굴 표정은 웃는데 아무도 소리 내서 웃지 않는 거야. 조심스러운 만큼 일도, 인간관계도 확신이 안 섰어. 고민을 감추고 숨겨야 할지, 실력을 뽐내고 드러내야 할지, 아니면 그 반대일지.    


  첫해는 그야말로 사력을 다 했던 것 같아. 길지 않은 경력을 가진 20대의 햇병아리 교사라는 본모습을 감추기 위해. 너 역시 같은 단발머리여도 어딘가 어설픈 뒷덜미를 숨길 수 없는 중학생 티를 갖 벗어난 고등학교 신입생이었잖아. 난 과목과 업무 특성상 2, 3학년 아이들과 주로 만났는데 그럼에도 네가 포함된 1학년 아이들에게 짙은 동질감을 느꼈어. 나 역시 그 해엔 이 학교에서는 신입생이었으니까. 비대칭으로 이루어진 데다 재단 내의 여러 학교가 함께 사용하는 건물에서 목적지를 찾지 못하고 두리번거릴 때마다, 무언갈 찾고 있음을 누구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았어. 그때의 난 차마 '모른다'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를 낼 수 없었던 교사였던 것 같아.


  조금씩 너를 알게 되었어. 점심시간에 동료 교사 ㄱ이 자신의 반에서 있었던 에피소드를 이야기할 때. 선배 교사 ㄴ이 수업 중에 있었던 일화를 들려줄 때. 나의 동아리 학생 ㄷ을 상담 하다가 친한 친구에 대해 말할 때. 그런 학생이 있구나, 그런 사람이 있구나. 1년 동안 수업, 학년부와 교과별 행사, 방과 후 프로그램 등으로 마주하는 학생들 중 눈에 들어오는 아이들이 있곤 해. 빛나는 재능과 통찰력으로 눈길이 가는 아이도 있지만 넌 다른 의미로 기억에 남았어. 때론 예의와 불손함의 사이를 투박하게 넘나드는 것이 사제 간 친밀함의 표현이라 여기던 학생들과 달랐던 것 같아. 늘 수줍고 조용하게 다가와 곁을 맴돌았지만, 상대의 눈만큼은 꼭 바르고 정직하게 바라보려 애쓰던 너.


  나는 더 이상 학교에서 길을 잃지 않게 된 2년 차 교사, 너는 원래 단발머리에 교복을 입고 태어난 것처럼 고등학생이 능숙해 보이는 2학년 언니가 되었던 그 해. 내가 운영하던 동아리에 네가 입부하며 우리 삶이 더 예쁘게 포개지게 되었어. 먼 곳에서 작게 웅얼거렸던 너의 꿈과 고민의 목소리에 온전히 귀 기울일 수 있게 되었고, 마침 합이 잘 맞는 학생들과 서로 자극을 주고받으며 성장하는 중이던 나는 열정이 마르지 않는 건강한 교사가 가는 길을 찾은 것 같았지. 사람들은 3학년이 된 네가 나와 같은 전공학과를 희망하고 내가 걸어온 길을 따라 걷게 된 걸 보며, '선생님에게 많은 영향을 받았나 봐요.'라고 얘기했지만 내 생각은 달랐지. 존중을 가득 담아 너에게 얘기한 적도 있었어.


"그 나이 때의 과거의 나보다 지금의 네가 더 훌륭해. 넌 분명 좋은 교사가 될 거야."  


  같은 전공을 선택해 진학한 너는 멋진 대학 생활을 보냈어. 대학생이 된 너와 모의해 꾸렸던 즐거운 교육 활동도 특별했지. 그렇게 몇 해가 가며 바라본 너는 교사가 되는 길을 걷고 있더구나. 졸업을 앞둔 넌 이런저런 방황과 시행착오 끝에 교사가 되었어. 나는 새로운 꿈을 향하기 위해 교사를 그만두고 학교를 나왔지. 바통 터치를 하듯 엇갈린 너와 나.


  애제자에게, 같은 전공을 공부하는 학우에게, 교단에 선 동료 교사에게

아니, 그 무엇보다 친구라는 이름이 어색하지 않게 되어버린 너에게

흘러 보냈던 우리의 이야기를 한 데 모아 차곡차곡 정리해 보려 해. 너에게도 나에게도 특별한 우리의 인연이 단정한 문장이 되고 한 편의 글이 되어 가는 과정이 우리의 인연이 각자의 마음에 만들어진 수많은 나이테처럼 자연스럽기를 바라.


  자, 그럼 시작할게.

친애하는 나의 어린 친구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