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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에서 글쓰기 선생님이 되다니

by 홍지이

지난 5월 15일에 맞춰서 책을 출간했다. 최종 원고를 출판사에 송부하고 나면 마음이 후련 섭섭하다. 그 후부터는 원고 교정과 후반 디자인을 위해 출판사와 편집자, 디자이너분들의 몫이 크다. 그런데도 왠지 실제 책이 출간될 때까지 다른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2월을 지나 보내며 원고도 보냈고, 우리 가족은 제주로 왔다. 3월부터 맞이한 제주에서의 봄에는 ‘적응기’라는 이름표를 달아 주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최대한 느적느적 보내보면 어떨까 싶어 계획 없이 하루를, 일주일을 보내 보았다. 차츰 이곳에서 내 몸에 맞는 리듬을 찾아가기를 바라며.


나와 남편은 서로의 루틴을 조율해 나갈 수 있지만, 반려견은 자비가 없었다. 서울에서와 비슷한 시간에 동그란 눈으로 날 바라봤다. 나가야 한다는 뜻이다. 그곳에서처럼 하루 2회 이상의 산책권을, 당연히 받아야 할 것을 달라는 듯한 당당한 태도로 내게 요구했다. 무늬의 일상을 지키는 일부터 바로 세워야 했다. 아침, 저녁으로 바깥 산책을 해야 하는 무늬는 조금 익숙해진 곳에서는 배변하지 않는 까탈 쟁이다. 작은 털 뭉치 가족의 쾌변을 위해 적당히 인적이 드물면서 아이의 키보다 풀이 우거지지 않은 공원과 잔디를 찾느라 순찰을 돌았다. 산책하러 갈 때 함께 들를 수 있도록 그 장소 근처의 아침 일찍 여는 카페, 도서관과 서점을 무리 지어 찾아 두었다. 포털 지도 앱에 저장한 장소가 하나둘 늘고, 집을 중심으로 별이 가득 뜰 즈음 6월이 온 것을 알았다.


그렇게 6월이 되어서야 그럴듯한 루틴이 잡혔다. 무늬와의 약속 자리를 빼놓은 뒤, 금요일 아침 9시에 시작하는 사라 아메드 책 낭독 모임을 시작했다. 슬슬 더워지는 것 같아 바깥 산책을 줄이고 홈트레이닝을 위해 가정용 천국의 계단도 구매해서 모니터 앞에 설치했다. 주말에 오는 남편과의 시간 보내기는 우리가 원하는 핏 앤 타이트 패턴을 이뤄갔다. 그리고 생각지도 못했던 글쓰기 수업을 맡게 되었다.




그러고 보니 학교를 그만둔 뒤, 수업을 해야겠다는 생각 자체를 해본 적이 없었다. 제주에서 다시 시작할 줄이야. 제주에서의 첫 수업은 제주평생교육장학진흥원 산하 ‘제주도민대학’에서 진행하는 ‘도민 강사’ 프로그램이었다. 도민 강사란, 말 그대로 도내에 거주하는 도민 중 성인을 대상으로 교육할 콘텐츠와 자격을 보유한 자에게 강의 개설의 기회를 주는 것이었다. 도민에게 지원하는 외국어 학습 프로그램을 알게 되어 홈페이지에 들어갔다가 알게 되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수업이 뭐가 있을까. 학습자와 나눌 수 있는 유의미한 콘텐츠가 무엇일까에 대해 골똘히 고민했다. 마침 두 권의 에세이 단행본을 출간하며 책에 들어갈 원고를 작성하고 손 본 경험, 출간을 위해 출간 기획서를 작성하고 출판사에 투고해서 매칭된 기억이 생생한 시기였다.


그렇게 지원서는 ‘책이 되는 글쓰기 : 슬기로운 작가 생활’이라는 타이틀을 달게 되었다. 교사 5년 차였나, 6년 차였나. 이제 좀 학교가 뭔지, 교사가 뭔지 알듯 말 듯 한 그때. 선배 선생님들께서 같이 해보자 불러주셔서 출간했던 5권의 책, 그 책을 준비하며 ‘나무에게 미안하지 않은 글쓰기’에 대해 생각했었다. 종이에 인쇄되고 책이 되는 글을 쓰고자 한다면, 최선을 다해 마지막까지 진심을 담아야 한다는 오래된 마음을 기억해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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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수업 설계를 하는데, 이럴 수가. 왜 즐거운 거지? 피곤은커녕 준비할수록 눈은 똘망똘망, 정신도 반짝반짝 해지는 게 느껴졌다. 그리고 좋은 글을 찾고 수업과의 연결고리를 찾으며, 자꾸 웃음이 났다. 가르치는 자의 도파민 대방출이었다. 수업 준비가 그야말로 순풍을 탄 돛단배처럼 순행하고 있었다. 과업에 맞는 단계와 참고자료를 찾아보고, 수업 흐름도를 작성하며 학습자가 어려워할 지점을 미리 체크했다. 이쯤 하면 되지 않았을까 싶어 겨우 멈췄다.




다행히 제출한 기획서가 통과되어 수업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그리고 맞이한 대망의 첫 1차시. 교실에는 10명 조금 넘는 분들이 앉아 계셨다. 다행히 수업 개설이 가능한 인원이 참여 신청을 해주신 데다, 대기 인원이 제법 많아서 정원을 늘려달라는 요청도 받았다. 함께 글을 쓰고 읽고자 하는 분들이 이렇게 많으시다니. 심지어 평일의 이른 시간임에도 부지런히 와주시고. 감동에 감동이 이어져 너무나 신나게 수업을 해 버렸다. 첫 수업을 마치고, 벌써 아쉬웠다. 이분들과의 수업은 2시간씩 4회. 내가 그렇게 설계했다. 4차시로 설계할 것이 아니라 6차시, 아니 8차시로 설계할걸.


무사히 마친, 벌써 추억이 되어버린 제주에서의 첫 수업. 처음 학인들의 글을 읽고 피드백을 드릴 때 이미 마음을 품었다. 이분들과 글쓰기 모임을 하고 싶다고. 수업이 끝나고, 마음을 마주한 분들과 다정한 글벗이 되어 서로의 곁을 지키게 되었다. 이분들 덕에 제주에서 글쓰기로 단단한 우정을 쌓아가고 있다. 이 이야기는 길고 아름다우니 다음 글에서 더 정성껏 다루기로 하고.


첫 수업을 하며 알게 된 진흥원의 담당자분께서 제주의 다른 평생교육 기관을 소개해주셨다. 그 덕에 7월에는 그곳에서 글쓰기 수업을 개설했고, 눈부신 학인 분들을 만나 여름을 닮은 싱그러운 글을 눈에 담았다. 그리고 8월부터 초겨울까지는 제주연구원 산하 교육기관에서 에세이 읽고 쓰기 수업을 할 기회도 얻게 되었다. 어느 덧 4차시를 넘은 이 수업은 요즘 나의 가장 큰 행복이다. 오늘은 평생학습관 주무관님에게 전화가 왔다. 직장인을 위한 글쓰기 수업을 기획해 보자며. 아마 가을부터 겨울에 걸쳐 진행할 것 같다. 이게 다 뭐람.


얼마 전, SNS에 ‘기회의 섬 제주, 일복의 섬 제주’라고 썼다. 행복한 툴툴거림. 내가 제주에 와서 다시 수업을 하고 있다 하니, 지인들이 학교는 셀프 퇴사했으면서 거기까지 가서 그게 뭐냐며 웃고는 그래도 잘 어울린다고 말해주었다. 나 역시 제주에서 살기로 했을 때 전혀 계획하지 않은 일이라 당황스럽기는 마찬가지다. 사실 아무 계획이 없기도 했고. 하여튼 당분간은 섬마을 글쓰기 선생님으로 분하려 한다. 원래 반골 기질이 있어 누가 시키면 하고 싶었던 일도 흥미가 똑 떨어지는 편이다. 대신 꽂히면 뜯어말려도 피곤한 줄 모르고 달려들곤 했다. 현장에서 멀어진 지 오래라 사그라들었나 했는데 간만에 ‘뿅’ 하고 살아났다. 우연히 얻어걸린 듯 하지만 아무튼 소중하고 귀하고 감사한 기회. 완전 제대로, 열심히 해 버릴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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