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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은 자꾸만 나를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게 해

상처가 된 시 쓰기 수업

by 홍지이

올 초에 세운 목표 중에는 ‘시 쓰기 공부’가 있었다. 하지만 시 앞에서는 왜 자꾸 움츠러들기만 했을까. 제주로 이사를 온 봄부터 이미 눈여겨 봐둔 비대면 클래스 신청 페이지를 들락날락하기만 여러 번. 그러다 5월쯤부터는 그 수업을 신청했다가 환불할 수 있는 마지막 날 취소하고 마는 만행을 저질렀다. 그것도 여러 번. 7월 말 즈음이었나,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한순간 ‘에잇, 모르겠다! 질러버리자!’의 마음으로 신청하고 호탕하게 일시불 결제까지 마쳤다. 배수진으로 환불이 가능한 날짜를 확인하지 않은 채. 내게 비대면 시 쓰기 수업은 꼭 들어가야 할 아주 작은 바늘구멍이었고, 마침 나는 세상에서 가장 거대한 낙타였다.


주 1회 2시간, 총 6주간의 일정이 짜진 그 수업에서 하루 만에 낙오했다. 수업 시작 전 안내에서 시를 한 편씩 제출하기로 되어 있었다. 강의를 진행한 시인은 수업에 참여한 예닐곱 학인의 시를 잘근잘근 씹었다. 그리곤 시에서 잘 언급하지 않는 뾰족한 단어와 표현으로 난자했다. 내겐 뭐라고 했더라. ‘시라고 말하기에 부끄러운 글’을 썼다고 했던가. 다른 이의 시를 읽고는 별 말도 없이 ‘그런데 요즘 이런 시를 누가 쓰기도 하나요?’라고도 했다. 창작시로 합평이란 걸 처음 해 봐서 원래 그런 것인 줄 알았다. 하지만 목부터 올라오는 화끈한 기운은 애써 진정하기 위해 품은 생각과 달랐다. 초반과 달리 고요해졌다. 강사에게 하던 질문이 줄어들었고, 학인끼리 의견을 나누던 채팅창도 잠잠해졌다. 비록 카메라를 켜지 않은 채 참여했지만, 모니터 너머 앉아있는 다른 이의 표정을 가늠할 수 있었다. 아마 나와 닮은 얼굴을 했으리라. 폭력의 시간이었다.


수업은 밤 10시 즈음해서 끝났다. 그날은 자정이 넘도록 잠을 이루지 못했다. 짙은 안개를 닮은 뿌연 악몽도 꿨다. 일어나서 클래스 운영 센터의 영업이 시작하자마자 전화를 걸어 환불을 요청했다. 전화를 받은 직원은 내가 취소한 수업의 이름을 듣더니, 잠시 침묵하고는 목소리를 진지한 톤으로 바꾸며 환불 사유에 대해 자세히 말해달라고 했다. 방금 다른 몇 분도 같은 요청을 했다며. 난 초보를 위한 강의임에도 난도가 높고, 강사의 소통 방식이 일방적이라 참여자 간 활발한 의견 개진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정도로 말했던 것 같다. 최대한 정제된 말을 사용하려 애썼다. '시인이 시를 너무 미워하는 것 같아요.'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그 강의를 위해 개설한 단체 채팅방에 어젯밤 함께 모멸의 시간을 버틴 이들이 남아있었다. 강의를 취소하게 되어 미안하다고 사과하고 인사를 드린 뒤 ‘나가기’ 버튼을 눌렀다. 어젯밤 잘 벼린 바늘과 화살을 입에 물었던 시인을 향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공격도 방어도 하지 않기로 했다. 이 답답함을 간직해 보자. 그럼 앞으로는 그런 말들 앞에 곧바로 불쾌함을 표시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였다.


돌아와 책상에 앉았다. 그럼에도 계속 시를 쓰고 싶은 이유에 생각해 보았다.

우선은 내 안에 요동치고 있는 낱낱 한 단어와 고고한 문장이 서로 손을 잡고 둥글게 모였으면 한다. 적당한 표현을 찾지 못해서 오랫동안 빈칸으로 남겨둔 기억의 한 지점과 화해하고 싶다. 이젠 정말 넘어서고 싶다. 노력이 다른 무엇이 되지 않고 그저 노력으로 남아도 괜찮다 위로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싶다. 시가 가진 정의로움으로 조금 다른 생각에 명찰을 달지 않아도 곧바로 이름을 부를 수 있는 여유를 갖고 싶다. 시차를 두고 서툰 바느질로 여며놓은 자리가 날실과 씨실이 맞물려 뭉툭해져서, 아니 동그래져서 구멍으로 번져 들어가도 좋다. 그 안을 들여다볼 용기를 낼 수 있다면. 앉아있던 자리에 남겨둔 온기를 다음에 그곳에 올 누군가와 기꺼이 나누듯, 한 번쯤은 세간에 떠도는 너그러운 소문의 주인공이 되고 싶다. 그러기 위해선 시의 도움이 필요하다.


움직일 줄 모르고 사라질 줄만 아는 무지개,
그 무지개처럼 살고 싶은 이원하 시인처럼
(시 ‘하고 싶은 말 지우면 이런 말들만 남겠죠’ 중 일부 발췌)

썩지 않으려면 다르게 기도하고 다르게 사랑하고
감추고 건너뛰고 부정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는 최승자 시인처럼
(시 ‘올여름의 인생 공부’ 중 일부 발췌)

작은 점들과 희미한 선들을 모아
죽은 무명 시인을 위한 나라를 건설하듯 말하라는 황인찬 시인처럼
(시 ‘멀리 떠나는 친구에게’ 중 일부 발췌)



시 쓰기는 오래 남겨둔 자잘한 꿈의 조각 중 가장 큰 파편이다.

그러므로 나에게 바람직한 방법을 찾아 기어코 한 걸음 두 걸음 내딛어 보려 한다.

여전히 시는, 글은 자꾸만 나를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게 하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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