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글이 데려다주는 더 나은 세상이란

앞으로의 글

by 홍지이

비슷한 또래의 한 커플이 운영하는 인스타그램 계정을 즐겨 보곤 했다. 타인의 삶을 바라보는 것에 큰 즐거움을 느끼지 못하는 내가 SNS에서 팔로우한 몇 안 되는 인플루언서 중 하나였다. 팔로우한 지도 제법 된 것 같다. 서서히 그들이 어떻게 결혼했고, 어디쯤 살고 있으며, 직업이 무엇인지를 알게 되었고 부부의 말버릇이나 관심사, 유머 코드 정도도 자연스레 흡수했다.


이렇게 말하면 조금 웃기지만, 그들을 보면 알고 지낸 지는 꽤 오래된 사이 같은 익숙함이 있었다. 그런데 또 그렇다고 오랜 친구처럼, 그들에 대한 다양한 면을 속속들이 알지는 못했다. 내가 SNS의 글이나 사진을 자세히 살펴보는 편이 아니기도 하고, 그들 또한 보여주고 싶은 것만 보여줬기 때문일 것이다. 익숙하고도 낯선, 그 미묘한 거리감이 오히려 적당한 선이 된 듯싶다. 일상에서 만난 누군가와 지속해서 관계를 지켜내기 위해 애써야 하는 피곤함이 없기도 했다. 일주일에 한 번도, 때론 현생이 바빠 SNS를 잘 살피지 못할 때는 한 달에 한 번도 그들의 소식을 체크하거나 그들의 존재를 떠올리지 않았다. 한 달 뒤에 밀린 피드를 보거나, 최근 피드에서 여전히 밝게 웃는 그들의 표정을 확인하면 ‘여전히 잘 지내고 있구나.’라고 속으로 생각하는 것, 그뿐이었다. 그들은 모를 테지만, 난 그들과 제법 담백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들은 부부가 된 이후에도 자연스러운 일상을 선보였다. 둘은 자신의 일을 가진 직업인이었다. 몇몇 인플루언서가 하듯 계산한 듯한 앵글과 연출한 듯한 상황을 삶으로 둔갑시켜 전시하지 않았다. 보기 좋은 사진과 기발한 영상을 게재하고 자연스레 그 무드와 잘 어울리는 물건을 슬쩍 보여주고는, 며칠 뒤 ‘공구’라는 해시태그를 달며 그 물건을 팔려하지 않아서 특히 좋았다. 난 그들의 게시물에 댓글을 달거나 좋아요 버튼을 누르는 적극적인 팔로워는 아니었다. 하지만 그들의 피드를 보고 미소를 지은 날이면, 막연히 그들의 나날이 평온하기를 바랐다. 부디 생각지 못한 일에 휩쓸려 이 유쾌한 일상이 어지럽혀지지 않기를. 이 공간에 절절히 고백할 정도로 대단히 속상하거나 큰 상처를 받는 일이 없기를.




그러던 어느 날, 그들이 올린 피드를 보고 멈칫했다. 피드의 글은 ‘저희 커플이 책을 출간했습니다.’로 시작하고 있었다. 그 글엔 평소의 자연스러운 피드와 이질감이 느껴지는, 깔끔하게 연출된 사진이 붙어 있었다. 책은 평소 인스타그램에 올린 사진들과 짧게 남긴 글을 보완하여 엮은 책이라는 설명을 읽었다. 프로필에 올려둔 링크를 따라 그 책을 판매하는 온라인 서점으로 향했다. 미리보기로 살펴본 본문은 줄 간격이 넓었고 비싼 사용료를 지불해야 인쇄할 수 있는 멋진 폰트를 사용했다. 아낌없이 전면 컬러로 출력한 사진도 많음과 동시에, 페이지마다 하얀 여백도 참 많았다. 페이지를 까만 글자로 빼곡하게 채우지 않으면 어딘가 떳떳하지 못해 움츠러들던 나와는 다른 자신감인가 싶었다.


참 크고 단단하고 비싼 책이었다.


며칠 전 참여했던 전자책 만들기 수업에서 학인들과 나눈 이야기가 떠올랐다. 요즘 사람들이 인쇄한 책을 사거나 읽지 않는 이유에 관한 대화였다. 열댓 명 중 '책값이 비싸서'라는 말을 너덧 명쯤 했던 것 같은데. 내가 사는 작은 세상에서 ‘책’을 향한 서로 다른 말들이 충돌한다. 사람들은 ‘글’보다 누군가의 일상 ‘사진’이 잔뜩 담긴(그렇지만 사진집이라 할 수는 없는) 책을 2만원을 넘게 주고도 살 수 있는 거였구나. 그들의 책은 잘 팔리는가 보다. 1쇄를 넘겨 빠르게 2쇄와 3쇄의 영역에 진입했다는 소식을 봤다.


앞으로 이 세상에서 ‘글을 쓰고 있다’고 말해도 될까, 짐짓 두려워졌다.

첫 책을 만들며 프롤로그에 이런 글도 남겼는데.


화려하고 빠르게 움직이는 것들에 저조차 쉽게 마음을 빼앗기는 변덕쟁이지만, 순진하게도 여전히 진정성 있는 글만이 데려다줄 수 있는 더 나은 세상이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중략) 다 함께 더 나은 세상에 닿기 위해 여전히 글을 씁니다.


혹시 글을 써서 유명해지는 것보다, 유명해져서 글을 쓰는 것이 지름길이라면 내가 걷는 이 길은 앞으로 어디로 향하는가. 독자에게 외면당하면서도 소신껏 쓰고자 하는 글을 계속 써야 하는 것은 아집이 아닐까. 길의 행방은 모르지만 여전히 치기 어린 질문을 길동무 삼아 함께 걷고 있다. 그 동무들이 내게 물었다. 네가 글이랍시고 쓴 것을 모은 ‘책’의 가격은 한강이나 존 윌리엄스의 그것과 별 차이가 없는데, 온당한 처사냐며. 분주했던 마음과 머리가 일순간 서늘해졌다. 퉁 치기로 한다면 내쪽이 훨씬 남는 장사이리라.


앞으로는 설익은 푸념을 글로 남기지 않기로 하자. 일기는 일기장에, 쓰레기는 쓰레기통에.

(이 글은 조만간 비공개 할 예정입니다.)

keyword
이전 14화나를 돌보는 에세이 읽고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