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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한이 Jan 15. 2021

오빠의 뇌전증 (1)

안 쓰러지면 안 돼요? 뇌전증 기록

오빠는 20살 이후부터 생긴 뇌전증으로 십 년 넘게 고생하고 있다.

오빠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우리 가족 또한 고통이다.

인 생각을 말로 표현 못해서 그렇지 아마 우리 가족 중에 제일 힘들어할 것이다.


오빠 인생의 반동안 고통을 준 뇌전증, 한 번 쓰러질 때마다 가족에게 충격을 안겨주는데 그중에서도 뇌 깊숙이 박혀서 잊히지 않는 사건들이 몇 가지 있다.


#1. 처음 오빠가 쓰러진 날

 - 내가 초등학생 때 컴퓨터 자격증 시험을 치고 왔던 날, 오빠는 그 날 저녁에 쓰러졌다.

엄마는 시험장까지 차로 나를 데려다주고, 오빠와 엄마는 내 시험이 끝날 때까지 좁은 안에서 기다렸다. 

좁은 차 안에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었던 오빠가 그날따라 많이 보챘던 기억이 있다. 그 날, 오빠가 쓰러졌다. 내 시험 결과 또한 좋지 않았다. 오빠가 쓰러진 게 나 때문인 것 같았다. 이 날이 처음 오빠가 쓰러진 날이었다.


#2. 할머니가 오빠의 뇌전증을 처음 본 날

 - "야가 이라노? 먹다 체해서 쓰러졌나?" 뇌전증은 체해서 쓰러지는 게 절대 아니다.

  뇌의 전류가 매끄럽지않아서 생기는 것이다. 그러나 할머니는 '뇌전증'이라는 병에 대해 잘 모르시기에 흰자가 뒤집어지는 오빠를 보며 체해서 쓰러졌다고 했다. 우리 가족은 오빠의 증세에대해 바로 알아주지 못하는 할머니를 잠깐 원망했었다.


#3. 오빠가 문 닫은 화장실에서 쓰러져서 아무도 곁에 있어주지 못한 날

 - "오빠가 문을 닫고 화장실에서 쓰러져서 못 들어가!"

 다급한 목소리, 떨리는 손. 오빠가 뇌전증으로 인해 앞으로 처박히면서 쓰러졌지만 우리는 도울 수 없었다. 화장실 문이 오빠 앞에서 닫혀있어서 열고 들어갈 수 없었다.


경직된 팔이 나무 문에 부딪히는 소리, 오빠가 의식을 잃어 꼴깍꼴깍 넘어가는 침 소리를 들을 수밖에 없었다.


혼자 외로운 싸움을 견뎌낸 오빠는 얼굴에 피칠갑이 된 채로 비틀거리며 나왔다.

딱딱한 화장실 타일에 세게 부딪히며 코피가 터졌기 때문이다. 한편으로 다행이었다.

어디 뼈가 부러진 게 아닌 코피가 터진 거라서.


#4. 여행 가서 쓰러진 날

 - 내가 어릴 때는 가족 여행을 잘 다니지 못했다. 왜냐하면 부모님은 생계를 책임지시고, 나는 공부하느라 가족 여행을 갈 여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에는 가족여행을 다니고 있다. 왜냐하면 40년가까이 생계를책임지셨던 우리아빠는 회사를 퇴직하며 여유가 생겼고, 동시에 나또한 임용고시를 합격해서 여유가 생겼기때문이다. 가족여행 다니는 건 거의 10년 만이다. 가족 여행을 가는 건 항상 설렌다. 하지만 오빠는 여행 가는 날마다 숙소에서 쓰러졌다. 여행을 가면 항상 걱정이 앞섰다. 이동 중에 오빠가 쓰러질까 봐, 하지만 불행 중 다행으로 오빠는 숙소에 있을 때만 쓰러졌다. 여행을 가면 좋은 추억과 더불어 오빠의 아픔도 함께 가져온다.


#5. 오빠와 씻다가 쓰러진 날

 - 성인이 되면 남자 형제는 남자 가족이 씻겨주고, 여자 형제는 여자 가족이 씻겨줘야 한다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집에 남자가 얼마 없으면 이는 벅차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빠 목욕은 아빠와 내가 번갈아가면서 해주는데 그 날은 내가 오빠를 씻겨주는 날이었다. 샤워를 하고 있는 오빠의 눈이 초점이 없어지기 시작하더니 얼굴이 한쪽으로 일그러진다. '또 쓰러지는구나!' 오빠는 몸이 뻣뻣하게 굳었다. 의식을 잃어가 더 무거워진 오빠를 양 쪽 겨드랑이 사이에 팔을 넣으며 옆으로 안전하게 눕혔다. 왼팔을 빼서 오빠 머리 팔베개를 해주며 부모님을 불렀다. 잠깐 오빠 혼자 화장실에 있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혼자 있었으면 화장실 기물에 부딪혀 크게 다쳤겠지.


#6. 오빠가 피아노에 머리가 부딪혀서 실로 꿰매야 했던 날

- 저녁이었다. 오빠는 또  쓰러졌다. 의식을 한 번에 잃으며 나무토막처럼 쓰러지기 때문에 피아노 모서리를 오빠는 피할 수 없었다. 날카롭진 않지만 딱딱한 피아노 모서리에 오빠 머리가 부딪히며 찢어졌다. 머리에서 피가 철철 흘러 정신 혼미해진 오빠를 급하게 진정시키며 우리는 119를 불렀다. 구급대원들이 오빠를 둘러싸고 오빠에게 나가자고 했다. 오빠는 머리에서 피가 나는 채로 안 가겠다고 자리에 드러누웠다. 베개가 모두 피로 범벅이 되었다. 10분 정도 타이른 후 우여곡절 끝에 오빠는 구급차에 탑승했다. 여기까지도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그뿐인가? 낯선 사람들이 가득한 곳에 오게 된 오빠는 집에 가고 싶어 소리를 질렀다. 흰 가운 입은 의사가 가까이 와서 오빠의 머리를 보려 한다. 낯선 사람이 갑자기 다가오니 오빠는 완강히 거부한다. 힘도 세서 병원에 있는 간호사, 의사 모두 달라붙어 꿰매려고 눌러도 결국에는 모두 뿌리쳤다.


 모두 못 하겠다했다. 그 와중에 오빠를 어린아이 대하듯 천천히 말하는 의사 선생님이 있었다.

 "괜찮아~, 엄마가 이거 끝나면 맛있는 거 사주실 거야~, 아이구 잘 하네~"


오빠는 모두의 마음을 알았는지 30분 넘게 거부하다가 점점 순응했다. 마지막에 압박붕대까지 해주신 의사 선생님 덕에 오빠는 찢어진 머리를 꿰맬 수 있었다. 비록 병원을 나서고 집에 오자마자 압박붕대를 풀어 던지긴 했지만 말이다.


#7. 이 글을 쓰는 오늘도 오빠가 쓰러졌다.

 - 1월 15일 새벽 4시 53분, 오빠는 새벽 2시쯤에 잠이 들었고, 수면 중 발작은 잠을 청한 후 3시간 안에 발생한다. 오빠는 잠을 자다가 또 쓰러졌다. 아빠는 오빠를 덮고 있는 이불을 걷었고, 나는 오빠의 머리를 내 다리로 받쳐서 편하게 해 주었다. 오빠가 혀를 깨물어 나오는 피와 침을 닦기 위한 수건을 엄마가 주었다.

 대발작 중인 오빠 눈에서 눈물이 흘러나왔다.

 얼마나 힘들까.. 얼마나 힘들면 발작하는 와중에 눈물을 흘릴까, 얼마나 아플까..


의식을 잃은 중에도 눈물 흘리는 오빠를 보면 동생인 나도 마음 아픈데, 부모님 가슴은 얼마나 찢기는 고통일까.


오빠의 뇌전증은 완치가 어렵다는 걸 알면서도 완치를 바란다.


이미 장애가 있어서 일상 속 활동들도 평범하게 하기 어려운데

뇌전증까지 생겨버리니 엎친데 덮친 격이라는 표현은 이때 쓰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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