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빠는 특수학교를 다녔고, 통학버스를 타고 등·하교를 했다. 이때 보호자가 시간에 맞추어 기다리고 있어야 한다. 물론 혼자 하교할 수 있는 학생도 있지만 오빠는 혼자 집까지 못 찾아가기 때문에 보호자가 있어야 했다. 그래서 매일같이 등·하교를 돕는 부모님이 오빠 곁에 있었지만 5분 정도 부모님이 늦게 왔을 때가 있었다. 그 날 처음으로 오빠 보호자가 되어야 했고, 결과적으로 보호자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해서 화가 났었다.
수업을 끝마치고 집 가는 길 위에 노란 통학버스가 하교 장소에 서있었다. 그런데 옆에 있어야 할 우리 부모님이 보이지 않았다. 그때 부모님이 안 계시기 때문에 내가 오빠 하교를 도우러 가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릴 때는 가족 중 장애인이 있으면 무시당할 수 있다는 생각을 많이 듣고 했던 터라 주변 사람들에게 우리 오빠가 장애가 있다는 걸 숨겼다. 하지만 그 순간에는 숨길 수 없었다. 마음이 급했다. 그래서 그 순간 친구에게 "사실 우리 오빠 장애인이야, 내일 봐!"라고 외치며 오빠에게 뛰어갔다. 도착하니 노란 통학버스 도우미 선생님은 초등학생 보호자에게 오빠를 인계하고 가버렸다.
그러나 초등학생 보호자인 나는 힘 센 고등학생을 통제할 수 없었다.
오빠는 내리자마자 나를 신경 쓰지 않고 큰 도로 쪽으로 뛰어나갔다.
오빠가 위험한 도로 쪽으로 뛰어갔기 때문에 나도 쫓아서 뛰어갔다.
나보다 덩치 큰 오빠를 잡으러 뛰어가는 내 눈에 눈물이 고였다.
나는 정말 무기력했고, 주변 어른들도 무관심하게 쳐다만 보고 있었다.
때마침 우리 부모님이 왔고, 도망가는 오빠는 부모님에 의해 잡혀서 무사히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이 사건이 있은 후에 어린 나는 무력감을 느꼈고, 화가 났다. 나도 오빠를 통제할 수 없는데 나에게 오빠를 인계한 통학버스 도우미 선생님에게도 화가 났다. 또 당황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도 화가 났다. 화가 나지만 이미 일어난 일이었다. 어떻게 보면 당연할 수도 있다. 장애인 자녀가 있기 때문에 부모님 다음으로 보호자가 될 수 있는 사람은 남은 비장애 자녀밖에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