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진한이 Dec 29. 2020

6살, 나는 오빠 미워하고 좋아해.

우리 오빠 왜 정신지체야?

"엄마! 오빠가 내 머리 잡아당겼어!" "오빠가 내 안경 잡아채갔어!" 


 불과 10년 전만 해도 우리 집은 하루에 한 번씩 내가 오빠 고자질하는 소리가 들리는 집이었다. 철이 든 건지, 지금은 오빠도 30살 중반이 되고, 나도 20대 후반이 되어 이런 소리가 몇 달에 한 번 날까 말까이다. 


 우리 오빠는 발화를 못했고, 할 수 있는 소리는 '쉬', '으', '여', '야' 등이었다. 간혹 '엄마'를 정확한 발음으로 할 때면 우리 가족 모두가 놀랐다! 오빠에게 들은 익숙한 소리가 '으, 여, 야'라서 그런지 난 오빠를 부를 때 '오빠'가 아니라 '으', '여', '야'로만 불렀다. 예를 들면 오빠에게 '여!'라고 부르며 사탕을 건네거나했다. 나에게 '오빠'라는 단어는 부모님한테 고자질할 때만 쓰는 단어, 내 가족관계를 묻는 사람들에게만 쓰는 단어였다. 오빠가 내가 생각하는 오빠 느낌이 아닌데 오빠에게 오빠라 부르는 것이 어색했었다. 


  동생 같은 우리 오빠는 내 머리를 잡아당기고, 누워있는 내 머리나 발을 장난 삼아 밟았다. 그럴 때마다 나는 곧장 일어나서 엄마한테 고자질을 하고, 내 비장의 무기인 손톱을 고양이처럼 세워서 오빠를 할퀴었다. 더군다나 그때는 오빠가 거의 옷을 안 입고 생활하는 수준이라 내 공격을 고스란히 다 받았다.


  나한테 보복을 당하면서도 왜 나에게만 계속 시비를 거는지 오빠가 이해되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오빠가 나름대로 나에게 관심을 표현했던 것 같다. 하지만 어린 나는 보복당할 걸 알면서 왜 계속 괴롭히는지 이해가 안 됐다. 단지 나는 주변 친구처럼 평범한 오빠를 바랐을 뿐이었다. 


나도 평범한 장난을 치고, 나를 챙겨주고 언어로 대화가 되는 오빠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어린 내가 생각하기에 우리 집은 남다른 집이었다.


 '정신지체? 우리 오빠는 다른 오빠하고 조금 달라. 엄마 아빠가 우리 오빠는 정신지체가 있어서 내가 이해해야 한다고 했어.' ( '지적장애'명칭 있기 전에 20년 전에는 이 장애가 '정신지체'명칭으로 불렸다.) 6살 정도에 오빠가 다른 오빠들과는 조금 다르다는 걸 처음 인식했다. 

 

부모님은 날 괴롭힌 오빠를 혼내면서도 오빠가 '정신지체'가 있기 때문에 내가 동생이 아니라 누나이고, 내가 이해해줘야 한다고 했다. 날 괴롭힌 오빠를 내가 왜 이해해야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나에게 "으, 여, 아"로 불리는 오빠는 내 바람과는 달리 날 챙겨주기는 커녕 내가 좋아하는 치킨너겟을 다 뺏어 먹거나 먼저 아이스크림을 다 먹고 내 아이스크림을 호시탐탐 노리는 경쟁자일 뿐이었다. 어릴 때는 그런 오빠를 피해 허겁지겁 먹거나 오빠 몰래 숨어서 먹기도 했지만 초등학생이 되어서는 조금 양보하게 되었다. 내가 챙겨주고, 양보해야 하는 오빠가 답답하고 미운 마음이 들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에게 계속 시비를 거는 오빠는 내가 챙겨줘야 하는 오빠라서 신경이 쓰였고 오빠니까 좋아했던 것 같다. 

내 사이다를 노리는 오빠

 


 당시 6살인 나에게 말했던 부모님의 말씀이 지금은 이해가 된다.

 

  네가 동생이지만 누나이고, 내가 이해해줘야 한다는 말. 


  27살의 나는 6살인 나에게 말해주고 싶은 게 있다. 


 너가 생각하는 평범한 오빠와 달라서 화가 나겠지만 그래도 너가 오빠와 잘 지내는 모습이 대견하다고 말이다. 그리고 오빠도 너에게 관심이 있지만 바르게 표현하는 법을 모르는 것뿐이고 또 어린 동생보다 더 동생같은 오빠라서 부모님이 그런 말씀을 한 것이라고 말해주고 싶다.


 지금에서야 생각해보면 6살이었던 나는, 오빠라고 불러본 적 없었던 우리 오빠를 좋아했다.



이전 03화 1월 1일은 당신에게 어떤 날인가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