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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엘리 Jun 26. 2022

혐오의 전염병

전염병 확산의 책임을 소수자에게 돌리는 사회

몸이 가렵다. 며칠 전부터 열이 났다. 여름 감기에 걸렸나 싶었는데 얼굴에 발진이 나기 시작했다. 하나 둘 생긴 발진은 하루 새 온몸으로 퍼졌다. 허겁지겁 회사에 전화를 했다. “몸이 아파서 쉬어야 할 것 같습니다.” 다행히 내일은 주말이다. 두통과 근육통을 이겨내고 노트북을 열었다. ‘피부 발진’을 검색하자 원숭이두창에 대한 기사들이 주르륵 나온다. “동성과 성관계한 게이·양성애자 남성들만 걸린 희귀병 ‘원숭이두창’” “원숭이두창, 유럽서 만 건 이상 보고…감염자 모두 동성과 성관계” 댓글은 더 원색적이다. “동성애자는 치료하지 마라” “동성애자 더럽다”는 댓글이 수많은 공감을 받았다. 나는 동성과 성관계를 하지 않았는데, 어떻게 감염된 걸까. 더 찾아보니 동성과의 성관계 뿐 아니라 확진자와의 밀접 접촉이나 침방울을 통해서도 감염될 수 있다는 기사들이 나왔다. 하지만 그런 기사들에도 “거짓말하지 말라. 동성애자만 걸린다”는 댓글이 대다수였다. 기사나 전문가도 믿지 않는 사람들이 내 말을 믿을 리 만무하다.


코로나 확산 초기가 떠올랐다. 2020년 봄 이태원 게이클럽에 코로나가 퍼졌다는 소식이 인터넷을 달궜다. 66번째 환자가 클럽 3곳에 방문해 대규모 감염이 우려되는 상황이었다. 그가 방역당국에 적극적으로 협조했는지, 그의 거주지와 직장 소재지, 직업, 일주일 간 그가 방문했던 곳이 인터넷에 모두 공개됐다. 그의 가족, 지인, 직장동료 모두 그가 누구인지 알아챘을 터다. 그 사람은 어떻게 되었을까. 직장에서 잘리지 않았을까? 가족들은 그가 성소수자임을 받아들였을까? 한 치의 거짓도 없이 자신의 동선을 공개했던 걸 후회하고 있지는 않을까. 그는 그 일이 일어난 뒤 사과문을 썼다. “클럽은 지인의 소개로 호기심에 방문했다”며 사과했지만 비난은 여전했다. 그가 방문한 이태원 클럽에 다녀온 사람들은 방역당국에 협조하지 않고 숨기 시작했다. 방역당국은 경찰과 공조해 그 방문객들을 색출했다. 몇몇은 신상을 속였다. 한 학원 강사는 역학조사에서 무직이라고 답했으나, 그가 학생과 동료 강사들을 감염시킨 사실이 뒤늦게 드러났다. 그는 학부모들에게 고발을 당했다.


만약 원숭이두창에 걸렸다는 사실을 들킨다면 사람들은 내게 뭐라고 할까. 사실 내가 가장 잘 안다. 코로나 확산 초기, 나도 코로나에 걸린 확진자들에게 손가락질을 했다. 중국 우한에서 온 코로나 1번 확진자를 향해선 ‘짱깨’라고, 원숭이두창에 걸린 사람을 보고선 내심 ‘더럽다’고 생각했다. 그 사람이 내가 될 줄은 몰랐다. 내가 퍼뜨린 ‘혐오의 전염병’이 내게 부메랑처럼 돌아온 것만 같았다. 몸이 아프지만 신고할 엄두가 나지 않는다. 사회적으로 매장을 당하는 것보단 아픔을 참는 게 백배 낫다. 전염병에 걸리면 공공의 이익을 생각해서 꼭 신고해야한다고들 한다. 하지만, 팬데믹 2년 동안 뼈저리게 느꼈다. 공공은 개인의 인권에 별로 관심이 없다.


*  글은 성소수자 혐오가 방역에 미치는 영향을 전하기 위해 필자가 지어낸 가상의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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