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11시, 어두운 방안에서 따뜻한 주황색 불빛
임신을 처음 경험하게 되는 사람이라면 '태교'의 중요성에 대해 수도 없이 듣고, 알아봤을 것이다. 한 번 경험해보니 사실 태교랄게 별로 없는 것 같다. 엄청나게 겁 먹고 조심하지 않아도, 매 순간 의식하지 않아도 될 것 같은데 첫 임신은 간식 하나를 먹더라도, 말 한마디를 하더라도 신경이 쓰였다.
엄마의 혼잣말로 많이 대화해야 한다, 건강한 음식을 먹으며 영양분을 보충해야 한다, 무리하지 않되 적당히 운동해야 한다, 아빠의 목소리를 많이 들려줘야 한다...
모든 주의와 행동은 내가 해야하는 거지만 아빠의 목소리를 많이 들려주기 위해선 아빠가 그리고 그의 의지가 필요한 일이다. 아빠 목소리를 자주 듣지 못한다면 태어나서 괜히 둘이 어색할 것 같고(?), 뭔가 정서적으로 꽉 채워주고 싶었다. 사실 태아의 시기에 아빠 목소리가 어느 정도 영향을 주는지에 대한 상관관계를 입증하진 못한다. 다만 아기와 엄마를 위해 배에 대고 또는 옆에서 목소리를 들려주는 그 시간이 엄마에게는 모든 긴장이 풀리며 육체와 정신적 평안함을 가질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일 것이다. 적어도 나에겐 그랬다.
그렇게 '내가' 원했던 아기-아빠와의 시간을 매일 밤 11시에 가졌다. 배에 대고 이야기하거나 일상 속에서 아기에게 말을 거는 건 멋쩍은지 도저히 못하겠다는 남편은 매일 밤 책을 읽어주기로 했다. 우리는 늘 둘 중 한 명이 자러 가면 다른 한 명도 함께 들어가기에 자기 전 책 읽는 시간이 루틴이 되었고, 그 루틴은 임신 후기를 함께 했다.
밤 11시, 한껏 나온 배가 미끌거릴정도로 튼살크림을 바른 후 침대에 눕는다. 침대 헤드에 있는 간접등을 켜고 남편은 책을 펼친다. 내가 좋아하던 그 시간은 남편도 꽤 진지하게 임해주어 육아관련 서적으로 시작해 그 날의 종이신문까지 준비했다. 나는 이불을 덮고 눈을 감은 채 편히 누워있고, 남편은 침대 헤드에 베개를 세워 걸터앉아 책을 읽는 그 시간이 처음엔 뭔가 어색하고 쑥쓰러웠다. 너무 대놓고 보호받고 사랑받고 있는 행동같달까. 괜히 간질거려서 혼자 실실 웃기도 했다. 말랑하고 다정한 사람이라 생각했는데 살다보니 생각보다 딱딱한 사람이구나를 느껴왔다. 그래서였을까. 그 시간이 내가 생각하는 우리의 결혼생활에서 가장 따뜻하고 편안한 시간이었다. 어떤 긍정적인 표현을 다 갖다 붙여놓을 수 있을만큼.
그렇게 출산을 하고, 육아를 하고, 각자 많은 변화를 겪으며 하루하루를 살아내가면서 암만 다시 생각해봐도 그 때만큼 둘이 붙어서 포근했던 시간이 없다. 그 이후로 둘만의 알콩달콩한 시간들이 줄었다는 반증이 되는건가. 뭐 아무튼, 나의 움직임 하나 하나에 관심을 기울여주던 것도, 뭐 먹었나 잘 먹었나 끼니를 챙겨주는 것도, 매일같이 튼살크림을 발라주는 그 손까지 그리운 것들이 참 많지만 밤 11시의 주황 불빛의 분위기는 다시 생각해봐도 참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