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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모쌤 손정화 Dec 22. 2022

때로는 친구처럼

진짜 부부의 사는 모습을 닮아가는 우리!

오늘 아침  엄마는 찰밥을 하셨다.

내가 엄마, 아빠 아침 식사를 차려드리기 위해 집으로 가는 시간은 오전 6시 40분이다.

아무 특이 사항이 없는 평일 아침에 나는 새벽 4시에 일어나 하루를 시작한다.

새벽예배를 드리고 바로 친정으로 가면 7시!

늦잠을 자 새벽예배를 드리지 못한 날이면 집에서 6시 40분에 나온다.


집에서 걸어서 2분 거리에 친정이 있다는 것은 지금 나에게 있어서 참 감사한 일이다.

마치 옆방에서 건너온 것 같이 엄마, 아빠를 뵈러 갈 수 있다.

주말에 나 대신 엄마, 아빠 아침을 차려드리러 오는 동생들이 "언니 아빠가 언니 찾아"라고 톡을 보내 바로 건너가면 "언니, 옆 방에서 나왔어?"라고 할 만큼 집에서 친정이 가깝다.


오늘 아침 친정 현관문을 여는 순간!

"왜? 뭘  먹고 있나? 하는 거야?" 하시며 엄마가 손에 주걱을 들고 나를 맞으셨다.

"엄마 뭐 했어?"

주방으로 들어서는 순간 주방 한편에 커다란 들통이 보였다.

"찰밥 했구나?"


지난 몇 달 동안 지켜본 결과 엄마가 유난히 좋아하시고 잘 드시는 음식들이 있다.

찰밥, 양배추, 호박잎, 옥수수, 고구마, 포도를 좋아하신다. 오리백숙, 흑염소탕은 보양식으로 사 드렸었는데 몸 생각하셔서 그러신 건지 생각보다 잘 드신다. 양배추는 거의 항상 식탁에 올라온다. 양배추가 있어서 고기를 드신다. 과일은 없어서 못 드신다. 포도를 제일 좋아하시고 모든 과일을 매일 1회 이상 꼭 드신다.

찰밥을 하시면서 즐거워하시고, 드시면서 행복해하신다. 김에 싸서 냉동실에 넣으시며 뿌듯해하신다.

그런 찰밥을 오늘 아침 하신 것이다.


언니와 동생들은 엄마가 좋아하시는 고구마, 감자, 빵, 밤, 찰밥을 좋아한다.

나는 그들에 비해 이 음식들을 좋아하지 않는다. 엄마가 좋아하시는데 나도 좋아하는 것은 딱 하나 옥수수뿐이다. 나는 찰밥도 그다지 즐겨 먹거나 찾지 않는다.


엄마는 찰밥을 김에 싸 주먹밥을 만드셨다.

"너도 하나 가져갈래?"

엄마는 내가 찰밥을 좋아하지 않는 것을 아신다. 그래서 혹시나 서운해할까 봐 물어봐주신 거라는 것을 안다.

"응 하나만 줘! 가져가서 임서방 주게"

그렇게 해서 찰밥 주먹밥 하나를 집으로 가지고 왔다.


남편은 주먹밥을 보자마자

"이게 뭐야? 우린 이런 음식은 안 먹어!" 하며 내 심기를 건드렸다.

남편이 잘하는 말 중 하나가 있다.

"이런 건 상놈들이나 먹는 거야! 우린 이런 건 음식이라고 생각지도 않아"

그 입을 들고 있던 숟가락으로 때려주고 싶은 순간이다.


사실 남편의 말은 농담으로 받아쳐도 되는 말이다.

남편을 두둔하려는 것이 아니라 남편은 말을 심하게 하며 농담처럼 받아쳐주기를 바라는 사람이다.

그런 남편의 말에 항상 아무렇지 않다가 딱 하나! 음식, 요리와 관련된 말에는 발끈하는 나를 보면서 나는 또 한 번 화가 난다. 말 같지도 않은 말에 반응하는 내 모습이 무척이나 보잘것없게 느껴진다.

이럴 때에는 누가 나에게 "그 말에는 화가 나는 게 당연해"라고 말해주었으면 싶다.

한차례 언성을 높인 대화가 이어졌다.


방금 언성을 높여 언쟁을 한 사람들은 어디에 갔나 싶을 정도로 그 순간이 지나고 나면 남편과 나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각자의 원래 모습을 찾는다.

"여보 김치볶음밥이라도 해줄까요?"

"네, 배고프네요"

"냉장고에 김치 좀 꺼내줘요"

"당신 안 먹으면 나도 먹지 않을 거야"


다른 사람이 들었을 때 기분 나쁠 것 같은 말은 되도록 하지 말아라! 그게 음식을 두고 할 소리냐! 너네 엄마는 옥수수도 못 찌시니 당연히 이런 고급 음식을 먹어보지 못했을 거다! 속에 있는 말을 막 쏟아부어 놓고 나서 약 5분의 시간 동안 감정의 찌꺼기를 정리하고 남편에게 김치볶음밥을 해줄 테니 먹을 거냐고 묻고 있는 내가 나도 신기하다. 김치볶음밥을 후다닥 해서 가져다주고 밥주걱에 붙은 밥풀을 몇 개 떼어먹은 후에 다시 내 자리에 앉아 노트북 키보드를 두드렸다.


'뭐지? 왜 이렇게 평온하지'

남편에게 언성을 높이며 할 말 다 했을 때보다 그 화를 누르고 김치볶음밥을 해 주고 난 지금이 더 행복했다.

나의 감정을 다스렸다는 성취감이랄까?

내가 평정심을 되찾고 김치볶음밥이라도 해주느냐고 물었을 때, 남편의 반응도 고마웠다.

그 정도의 언성 높인 언쟁으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듯이 우리는 정말 아무 일 없는 아침을 맞았다. 급기야 남편은 자신이 이번 달 열심히 일해서 성과급이 더 나올 것이라는 말까지 전했다.  

"정말요? 여보? 여보가 열심히 해서 너무 기뻤어요"

어느새 남편 어깨를 두드리고 있는 나를 보았다.


엄마, 아빠 식사를 챙겨드리러 아침, 점심, 저녁을 가다 보니 전에는 보지 못하는 모습을 본다.

엄마, 아빠 두 분이 나란히 엎드려 서로의 핸드폰을 보시며 시간을 보내시는 모습을 보았을 때! 두 분이 너무 사랑스러웠다.

엄마는 틈만 나면 아빠가 젊었을 때 얼마나 엄마를 서운하게 했는지 이야기하신다. 서운하게 한 것이 있으시면 격노하시면서 속상함을 표현하신다. 그러나 그때뿐이다. 여전히 반찬들은 아빠에게 더 가까이 놓으시고, 맛있는 것이나 고기 종류의 음식이 차려지면 아빠 옆, 앞에 놓으시느라 분주하시다.

요즘 나와 남편은 진짜 부부가 되어가고 있다. 우리 엄마 아빠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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