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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E NEED YOUR VOICE Jul 21. 2020

영화 <메기>

믿음이 검이 될 수 있을까

         


*본 글은 스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수많은 선택과 믿음 사이에서 갈등하고 배반당한다. 인간이 관계를 맺는 데에 있어 믿음은 가장 중요한 요소이자 절대적인 연결고리다. 믿음을 쌓아 올리는 과정은 어렵지만 허물어지는 것은 쉽다. 영화 <메기>는 수많은 믿음과 오해로 점철된 사회를 재치 있게 풀어냈다. 본 작품은 믿음과 의심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옥섭 감독은 현 한국 사회에서 “여성”이 사회로부터 느끼는 믿음과 상실을 보여준다.          




의심과 믿음     


  낡은 개인 병원의 간호사로 일하고 있는 주인공 윤영은 병원 앞 마리아상에 걸린 엑스레이 사진 하나를 시작으로 일상에 균열을 맞이한다. 그의 애인 성환과 엑스레이 실에서 성관계를 맺은 적이 있던 윤영은 그 사진이 자신의 것이라고 생각한다. 누가 촬영 버튼을 눌렀는지, 그 상황을 목도했는지 가늠할 수 없는 그는 사직까지 고민하며 혼란에 빠진다. 영화는 현 사회에서 여성들의 삶 속에 익숙하게 녹아 있는 공포를 투영한다. 윤영이 겪은 일은 여성들이 화장실에서, 집에서, 숙박업소에서 의지와는 상관없이 찍힌 불법촬영이다.


  

  사적인 자신의 모습을 누군가 “관음”하고 “촬영”했을지도 모른다는 공포는 병원 전체에 전이된다. 윤영이 공포를 무릎 쓰고 출근했을 때, 병원에는 정형외과 이경진 부원장뿐이다. 부원장은 아프다는 것을 핑계로 병원에 나오지 않은 사람들은 사실, 윤영처럼 엑스레이 실에서 성관계를 가졌기 때문이라고 확신한다. 모든 직원을 의심하는 부원장에게는 어린 시절의 상처가 있다. 옥상에서 떨어진 아이 옆에 부원장이 있었다는 이유와 자신의 아버지가 떠민 것이라고 해명하지 않는 아이의 침묵으로 부원장은 누명에 쓰인다. 아무 죄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출처 불명의 소문으로 인해 가해자가 되어버린 부원장은 그 기억 때문에 쉽게 믿음을 갖지 않는다. 아버지의 손에 끔직한 사고를 당한 어린 아이는 집안에서 권력을 쥐고 있는 성인 남성에게 위협당하지 않기 위해 침묵을 선택했지만, 자신 또한 어린 아이였던 부원장은 그 상처를 교훈으로 덮는다. 부원장의 이야기를 마저 들은 윤영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믿음”을 가져야 한다고 말한다.


  

  작품 속 윤영은 인간에 대한 강한 믿음을 갖고 있는 인물로 묘사된다. 무작위 추첨으로 뽑힌 직원의 집으로 찾아가기 전 윤영은 왕진 가방을 찾는 경진을 보며 그 직원이 꼭 아프기를 기도한다. 윤영의 심리는 경진이 걸고 있는 일말의 희망을 배반 시키지 않고 싶지 않으면서도, 스스로 인간에 대한 믿음을 갖고자 하는 욕망이다. 윤영은 믿음이 있기에 공포를 털고 다시 일상을 마주할 힘을 내재하고 있다. 다른 직원들과 달리 윤영이 병원에 출근할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가 손에 쥔 믿음이라는 검은 이토록 단단하다. 하지만 남자친구의 전 애인의 이야기를 듣고 난 후 윤영은 새로운 혼란에 빠진다. 영화는 그 과정을 첨예하게 짚어 나간다.    


  

    

양날의 검     


  앞서 말했듯이 윤영은 상대적으로 굳은 믿음을 갖고 있는 인물이다. 하지만 영화 후반부에 이를수록 윤영은 누군가를 자꾸만 의심하고, 오해하며 자신이 갖고 있던 단단한 심지를 허물기 시작한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윤영에게는 자신의 집에 얹혀사는 애인 성환이 있다. 성환은 일용직으로 일하며 싱크홀을 메우고 정비하는 일을 한다. 어느 날 윤영은 성환의 전 애인으로부터 성환이 자신을 폭행한 적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윤영이 듣게 된 것과는 달리 성환의 겉모습은 낙천적이다. 전 애인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긴 성환은 일말의 죄책감도 느끼지 않는다. 영화는 가해자 남성과 피해자 여성의 상반된 모습을 통해, 가해자에게 너무 많은 마이크가 주어진 현 사회의 비정상적인 균형을 생각하게 만든다. 폭행 이력을 듣고 난 후, 윤영은 평소처럼 훅을 날리는 성환의 장난을 투명하게 받아줄 수 없다. “나 칼 들고 있다.”라는 말과 함께 눈을 흘기는 윤영의 한 마디는 단순한 장난을 받아주는 연인의 태도가 아니라, 위협적인 공격에 방어하는 인간의 본능이 서려 있다.


  

  영화는 관객에게도 윤영과 비슷한 상황을 던져준다. 성환은 윤영이  반지를 잃어버리자 어쩔  몰라 하며 찾아 헤맨다. 반지를 애타게  직장 동료를 의심하기에 이르는 성환은 언뜻 윤영과의 관계에 대한 간절함이 비춰진다. 윤영조차   없는 성환의 일상을 직접적으로 바라본 관객은 갈등을 마주한다.  모습을 통해 윤영이 성환에게 갖게 되는 불안을 오해와 합리적 의심 사이에 두게 되는 것이다. ㅇ앞서 언급된 부원장의 유년시절을 통해 “의심 폭력성에 대해 이야기 했다면 영화는 “믿음 위험성도 함께 드러내고 있다. 이러한 양상은 실제로도 흔히 목도할  있다. 폭행과 위협에 노출된 여성의 목소리는 쉽게 오해와 합리적 의심 사이의 구렁텅이에 몰린다. 윤영이 성환에게 갖고 느끼는 사적인 감정은 자신 또한  알고 있는 피해자의 외침을 곱씹게 만든다. 재빠르게 성환과의 관계를 결단하지 못하는 윤영의 모습은 가장 가깝다고 믿었던 “남성 대한 여성의 사적인 믿음 때문이다.




메기     



    영화의 초반부부터 등장하는 나레이션의 주인공이자 관찰자는 병원에 살고 있는 메기다. 작은 어항 속에서 “가만히 있어주는”것으로 윤영을 위로하는 메기는 엑스레이실 사진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윤영이 어째서 혼란스러워하는지 꿰뚫고 있다. 믿음, 오해, 의심이 전복되는 영화에서 유일하게 객관성을 갖고 있는 캐릭터이기도 하다. 영화를 보고 있는 관객은 메기의 목소리를 듣고 상황을 해석하며 극중 “메기”의 캐릭터와 비슷한 위치에 선다. 메기는 윤영과 성환처럼 연인 관계이지도, 직장 상사이지도, 혹은 피해자이지도 않은 철저한 제 3자이기 때문에 객관적 서술이 가능하다. 관계로부터 벗어난 존재는 영화의 흐름이 엇나가지 않도록 붙잡는다. 윤영은 성환의 이중성을 알게 된 후 더 자주 메기를 찾는다. 그는 미동 없는 메기의 움직임을 관찰하며 이름을 부른다. 어항 밑바닥에 납작하게 엎드려 고요한 움직임으로 입을 뻐끔거리는 메기는 갈피를 잡을 수 없는 윤영과 상반된다. 윤영은 메기의 이름을 부를 때 생활 속에서 놓지 못하는 불안을 잠시 거둔다.           




구덩이에서 빠져 나오는 법     


  윤영의 갈등은 허무하게 끝난다. 자전거를 타고 달려오는 자신에게 가파른 계단길을 미리 예고해주지 않은 성환에게 끓어오르는 분노를 토해낸 윤영은 이별을 고한다. 성환이 언제든 자신을 해칠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을 자각한 순간, 연인의 일상은 절대 원점으로 돌아갈 수 없다. 물리적인 힘의 원리에 따라 관계의 저울은 자연스럽게 기울고, 심리적 질서는 무너진다.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이가 나를 가장 쉽게 해칠 수 있다는 것은 본능적으로 강력한 의심을 유발한다. 윤영의 의심은 일말의 논리가 필요 없는 인간의 본능이다.

  작품의 말미, 윤영은 메기가 헤엄치는 어항을 품에 안고 성환을 찾아간다. 누군가를 치열하게 의심했던 경험을 고백하며 관계의 재고를 요구하는 성환의 모습에 윤영과 관객은 함께 혼돈한다. 윤영은 마지막으로 용기를 내 성환에게 폭행 사실에 대해 묻는다. 진실을 마주하기 전 불안에 가득 찼던 윤영의 눈동자는 성환의 대답과 함께 싸늘하게 바뀐다. 태연한 눈으로 “어, 전여친 때린 적 있어.” 라는 말과 함께 싱크홀이 발생한다. 싱크홀이 생기기 직전 수면 위로 튀어오르는 메기처럼 관객의 분노는 함께 폭발하고, 성환은 싱크홀 안으로 사라진다. 윤영은 성환을 구출하기 위한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은 채 떨어진 곳을 유심히 들여다본다. 선연하게 드러난 성환의 이중성을 마주한 윤영의 눈빛은 전과 다르다. 작품은 가해자 남성인 성환을 싱크홀로 밀어 넣음으로써 가해자의 변명을 일절 차단시킨다.


  

  윤영은 성환에게 직접 진실에 대해 질문하고, 폭행 가해자 남성을 분명히 끊어냄으로서 구덩이 밖으로 탈출한다. 윤영의 믿음은 허물어졌지만, 그가 가졌던 의심은 합리적이고 안전한 삶을 위한 장치로 기능한다. 자신의 이중성을 스스로 폭로하며 죄의식을 갖지 못한 남성은 구덩이에 빠진다. 작품은 관객에게 이 지점을 주목하게 한다.

  성환이 사라진 구덩이를 유심히 살피는 윤영의 눈을 보면서, 필자는 최근 한국 사회에서 목도한 것들이 떠올랐다. 구덩이를 탈출해 본연의 삶을 살아가야 하는 윤영과, 피해 여성의 삶을 응원한다. 우리는 서로가 서로의 메기가 되어줄 것이다. 진실을 바라보고 수면 위로 튀어 올라 분노하기를 주저 하지 않으면서, 수많은 구덩이를 피해 살아갈 것이다.    






피해자를 구덩이로 몰아넣는 모든 행위를 규탄한다.





글.기획/상아

#박원순_시장을_고발한_피해자와_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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