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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무개 Mar 31. 2022

자신의 소리

내가 소리내지 않을 때 내 소리를 들었다.


오래전 차마고도를 순례하던 때였다. 

티베트 고원의 한 낮. 높은 언덕에 오르자 사방이 시야의 밑으로 가라앉았다.

우뚝 솟은 마음이 이런 것인가 했다. 반가부좌를 하고 잠시 숨을 고르게 했다.

햇빛이 내는 소리가 들릴 것 같이 고요했다. 바람은 물론 대기의 어떤 흐름이나 변화를 느낄 수 없었다. 세계는 정지해 있었다. 눈을 감았다. 신체의 오감으로는 어떤 자극도 와닿지 않았다.

나도 모든 것을 정지했다. 


얼마 후 내가 숨을 쉬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숨소리가 들렸고 가슴과 배의 움직임이 있었다.

콧구멍에 드나드는 공기가 코털 사이를 가르며 흐르고 있었다.

심장도 뛰고 있었다. 박동에 따라 몸이 덜컹거렸다. 목과 손끝에서도 작은 퍼득거림이 있었다.

자세가 흐트러지지 않도록 윗가슴과 허리에 긴장을 주었다. 숨 보다 작은 미세한 움직임이 있었다. 

이때 옷과 살이, 옷과 옷이 스치며 마찰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는 모든 것을 압도했다. 감각이 한 곳으로 모였다. 눈과 코는 물론 피부도 소리에 기울이고 있었다. 한 동안 그렇게 있었다. 








여행에서 돌아와 촬영한 동영상을 정리했다. 원본 테이프 하나가 음향에 문제가 있었다. 녹음이 잘 되지 않았다. 모니터 출력을 최대로 올렸다. 지잉~ 하는 잡음만 들렸다. 촬영본 모두를 확인하며 원인을 찾으려고 한 나절을 보냈다. 반복해 재생을 하던 중 문득 장소가 그곳임을 알았다.

녹음은 문제가 없었다. 단지 아무 소리도 없었던 것이다. 아무것도 녹음하지 못한 것이다. 잡음이라 생각한 것은 녹화 시 작동되던 카메라의 소리였다.


.

나는 내 소리만 들었고 카메라도 자기 소리만 녹음을 했다.

주변이 고요할 때, 자신도 고요해지면 작고 깊은 소리를 알아차릴 수 있다.

마음도 이와 같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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