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머니와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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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흔이 넘어 보이는 아주머니는 짧은 침묵 사이를 부드럽게 잘라내며 다시 말한다. "우리 집이서 자아~." '지금 아주머니가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지 아세요?' 마음은 이렇게 말하며 입으로는 다른 말이 나왔다. "정말 그래도 돼요?" 잠깐 기다렸다 같이 가자고 한다. 살았다!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목젖은 신앙인이라도 된 듯 감사의 기도를 위해 경전을 뒤적거린다. 이게 무슨 일인가 싶지만 탈진한 몸과 함께 바닥에 주저앉은 정신은 숨을 들이마시는 것에 힘을 쏟기에도 버겁다.
숨은 저절로 쉬는 게 아니었다. 너무 쉬웠을 뿐이었다. 아주머니는 밭두렁과 주변에 옮겨 심은지 얼마 안돼 보이는 참깨 모종에 물을 준다. 파란색 물뿌리개가 무거워 보인다. 아주머니의 작은 체구와 마른 몸은 가볍다. 얇은 살 가죽과 드러난 핏줄은 자신의 몸을 뼈의 힘으로만 지탱하고 있는 것 같았다. 흙과 참깨와 물을 대하는 아주머니의 태도는 단순하지만 지루하지가 않다.
도로 옆으로는 주말 농장처럼 꾸며 놓은 밭이 있다. 60대로 보이는 남자가 아주머니와 인사를 하고 잡초를 정리한다. 아주머니가 몇 차례 물을 받아 뿌리고 있다. 계속 보고있자니 엉덩이를 붙이고 있던 바닥에서는 서서히 가시나무가 자란다. 도와주어야 한다는 마음은 뱀의 혀처럼 날름거리기만 한다. 이런 내가 마음이 쓰였는지 아주머니가 내게 금방 끝날 거라며 느려진 늙은 몸을 서두른다. 가시방석.
여러분. 나는 좋거나 이롭다거나 하는 인간은 아니지만 적어도 밥상 예절을 지키지 않아 숟가락을 빼앗긴 경험은 있다. 웬만하면 도와드렸을 거라는 변명을 하는 것이다. 느린 숨을 쉬며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는 나는 누군가 내 사정을 알아주기를 바라며 더욱 좋지 않은 안색을 만들려고 노력했다. 좌불안석. 그렇게 눈치를 보고 있었다.
마음의 갈등이 마구 번지고 있을 때 저만치 밭에서 일하고 있던 남자가 한마디 한다. "거 좀 도와드려." 가시처럼 찌릿하게 정신을 찔러 버린 한마디. 창피함이 몰려든다. 도둑질을 하다가 들켰을 때가 지금 같았다. 훔친 껌을 늘어진 티셔츠 목덜미에 집어넣었는데 그만 셔츠 자락을 바지 안으로 넣지 않아 돌아서려는 찰나 발밑으로 토독 떨어져 버린 껌. 마주친 가게방 주인의 눈빛. 대략 난감. 동공 방황.
당황한 나는 얼떨결에 한마디 한다. 차라리 하지 않았다면 인류의 발전에 공헌하고도 남았을 그 한마디. "...괜찮다고...하..시..길..래..." 들리지도 않을 것 같은 작은 소리에 마지막 네 음절은 그 음량과 정확성이 반토막씩 잘려 나가며 사라진다. 하아~ 정말 왜 이러는 걸까... 뱉은 말이 검은손이 되어 나를 발가 벗기고 똥구덩이에 던져 버린다. 내 말이 나를 모욕했다. 아무에게도 보이이지 않고 숨겨 왔던 모습이 내게 나타난 것이다. 자기 대면.
"아니 이러믄 내가 일 시킬라구 그러는 거 가짜녀~" 물을 길어 나르는 내게 아주머니는 안타까움과 미안함으로 마음을 대신한다. 일을 마치고 나니 아주머니의 아들이 멀리서 트럭을 세우고 기다리고 있다. 막내아들이라고 했다. 나는 우선 차를 보자 걱정이 되었다. 두 발로 걷는 것 이외에는 어떠한 이동 수단도 이용하지 않기로 다짐을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 사정을 일일이 말하고 말고 할 상황이 아니다. 뒤따라 갈 테니 서행하며 앞서 가라고 말할까. 그건 너무 나간다 싶었다. 이게 뭐라고.
차에 오르기 전 간단히 아주머니가 아들에게 사정을 전한다. 나는 핑계 비슷한 말로 첫인사를 나누고 차에 올라탔다. 오르막길을 삼백여 미터 정도 올라갔다. 산자락에 집이 있다. 마당에 서면 대청호가 보인다.
아주머니는 아들만 다섯을 두었고 아주머니의 형제는 없다고 했다. 그래서 사람이 찾아오는 것을 무척 좋아한다고 했다. 옛날에는 보따리장수들도 집에서 자주 묵고 갔다고 했다. 아저씨는 병원에서 삼 년째 투병생활을 한다고 말했다. 한 때는 논도 스무 마지기 정도 있어 먹고 살만 했으며 자식들 공부시킬 정도는 됐었는데 시동생과 사촌 동생이 돈을 빌려가 사업을 하다 망했다고 한다. 결국 가진 것 모두 날리고 속이 상해서 술만 드시다가 병이 나서 저렇게 누워만 있다고 한숨을 쉬었다.
가장 큰 걱정은 아직 결혼을 하지 않은 막내아들이었다. 눈을 뜨나 감으나 그 걱정뿐이라고 한다. 아들은 나보다 한 살이 많았다. 조용하고 부드러운 인상이다. 그냥 형님이라고 불렀다. 아주머니는 나에게 궁금한 것을 물어본다. "아이고 대관하도 안혀?" 서울까지 걸어서 가는 중이라고 말하니 돌아온 대답이다. "아니 월마나 대관허댜" 계속 염려와 걱정이 잡은 손을 타고 전해 온다. 집은 어디며 장가는 갔는지 자식들과 아내에 대해서. 몇 번을 다시 묻느다. 당신의 이야기와 나에 대한 질문을 몇 차례 반복한다. 기억이 짧게 머물다 간다.
사람들이 찾아오는 것을 정말로 좋아한다는 말은 사실이다. 아주머니가 시간의 긴 팔로 끄집어낸 과거의 이야기들이 그것을 증언하고 있었다.
어머니는 약간 치매 증상을 보이고 있었다. 처음 같은 말을 되풀이할 때는 어색한 미로에 빠진 것 같았다. 똑같은 물음과 똑같은 답을 한다. 하지만 어머니는 항상 처음으로 묻고 처음 듣는 것이다. 그러니 말할 때나 듣고 있을 때에도 표정과 눈빛은 언제나 새로움과 호기심으로 가득하다.
아들은 어머니와 나의 대화를 듣고만 있었다. 반복되는 이야기와 질문에 어떠한 제약이나 설명을 가하지 않고 그냥 있었다. 그 모습은 내게 큰 존경을 불러일으켰다. 내게 장가를 갔는지 세 번째 묻는 질문에 '아까 물어보셨잖아요.' 하거나 '결혼했다고 말했잖아요'하고 말하지 않는다. 그냥 있는다. 아들은 나를 위하려는 나섬이 없다. 누구 하나를 배려하기 위해 바람을 일으키거나 파도를 만들지 않는다. 그 진중함은 거실 전체의 기운을 부드럽게 잡아준다. 웃으며 기다리고 있다.
먼저 씻으라고 한다. 세탁기와 넓은 창문과 비누향 까지도 낯설지 않게 느껴진다. 통돌이 세탁기를 보고 빨래를 하고 싶어 졌다. 하지만 양말 두 짝과 옷 두어 개. 손으로 대충 빨아야지. 샤워를 하고 머리가 말라 갈 때쯤 아들이 빨래를 해준다며 내놓으라고 한다. 마음을 읽은건가? 무엇인지 모르는 편안함이 형식적인 양보나 사양지심을 지워 버렸다. 부탁한다며 내주었다.
저녁을 먹는다. 어머니는 겸상을 하지 않는다. 나와 아들은 안방에서, 어머니는 문턱을 경계로 거실에서 작은 상을 앞에 둔다. 둥근 상은 넓이가 파전 하나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밥과 국 그리고 김치를 담은 그릇 세 개가 상을 가득 채웠다. 송구한 마음에 "오셔서 같이 드세요." 한마디 하고는 더는 말하지 않았다. 밥 두 그릇. 담배. 휴~
아들은 세탁이 끝난 빨래들을 작은 방에 널어준다. 나는 앉아있었다. 빨래를 향해 선풍기를 틀어 놓는다. 보고만 있었다. 그는 작은 방에 드나들며 시간마다 옷걸이를 뒤집어 선풍기 바람을 고르게 쏘이게 했다. 그래도 난 그냥 보고만 있었다. 가슴에서 무언가 부풀어 올랐다. 크게 숨을 들이켰다가 뱉었다.
어머니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11시.
밤이 깊어간다.
이제 자야 한다.
습기를 머금은 공기가 창을 통해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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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있어서.
참.
고마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