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립 보행을 확인하다. 11

마음을 깨는 소리

by 아무개





옥계리 출발. 오늘은 대전까지 가려고 한다. 어느새 매일 도착지를 정한다. 대전은 자연스럽게 오늘의 목표가 된다. 걷는 행위의 낭만적 요소는 매 걸음마다 축적되지 않는다. 목적은 낭만적일 지라도 목표는 낭만적이지 않다. 목표는 목적보다는 구체적이고 선명하다. 선명함은 흐린 배경의 틀에 목적을 가두게 된다. 목표에 도달하려는 의지 작용은 본래의 목적을 방법적 차원의 실행을 통해서 망각시키거나 소멸하게 한다.


무엇이든 잊을수록 망각은 보다 선명해진다. 어느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으며 깨닫듯 생각이 나면 망각은 사라진다. 망각만이 망각될 수 없다. 나타나거나 사라질 뿐. 소멸은 마른땅에서 보폭마다 '새로운 의미'의 싹이 자라면 소멸한다. 새로운 의미들은 인식의 차원을 확장시키고 삶의 방향을 바꾸게도 한다.





목표와 시간과 거리의 상호 작용은 나를 옥천까지 손쉽게 밀고 나아갔다. 발 밑의 포장도로 말고는 모든 것이 오래되었다. 절연테이프를 사려고 철물점에 들렀다. 테이프가 왜 필요한지 모르시는 분은 '직립보행... 6'에서 확인하시기 바란다. 500원을 주고 하나를 구입했다. 여주인은 더위에 지친 내 모습이 안쓰러워 보였는지 얼린 물을 주겠다며 안으로 들어간다. 운동을 좋아해서 항상 얼려둔다며 꽁꽁 아니 꽝꽝 얼린 500ml 생수병을 내민다. '고맙습니다.'


마실 만큼의 물이 녹을 때를 기다리며 걷는다. 자꾸 물병으로 시선이 간다. 병을 흔들어 보기도 한다. 병을 들고 있는 손은 차가움을 지나 시린 곳에 도달했다. 나는 머리가 보온밥통 같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생각이 웃길 만큼 대견스럽다고 다시 생각했다. 코와 입에서는 뜨거운 바람이 나온다. 기다림은 시간을 느리게 한다. 마음의 조급함이 빛의 빠르기를 넘어서기 때문이다. 얼음은 평소보다 여섯 배는 더 느리게 녹고 있다. 특수 상대성 이론.


한 모금도 되지 않는 물이 병목에서 흔들린다. 일단 입 안이라도 축여야겠다. 병뚜껑을 엄지와 검지로 잡는다. 병은 시계방향으로 뚜껑은 시계 반대방향으로. 미끄러지지 않을 만큼의 압력을 이용해 비틀어 돌린다. '따다닥!' 마개가 터지듯 소리를 낸다. 나는 멈칫 걸음을 멈추고 그대로 섰다. 갑자기 머리가 텅 비었다. 보온밥통 같던 머리가 신선 칸의 빈 냉장고처럼 서늘 해졌다.


'따다닥!' 그 소리와 똑같은 것이 내게로 들어왔다. 소리의 두께와 넓이는 물론 무게까지 똑같은 알맹이들이 가슴 가운데 어디쯤에서 탄산수가 터지듯 했다. 그리고 온몸으로 퍼져 나간다. 병을 쥔 손의 손가락 사이사이에는 물기가 과즙을 짜낸 듯이 흐른다. 나는 정수기의 물을 받아서 얼렸을 거라고 믿었던 것이다. 그러나 열려있지 않은 물병은 근거 없는 나의 편견을 가차 없이 날려버렸다. 나는 왜 당연한 것으로 시작한 생각을 틀림없는 것으로 확정 지었을까. 나는 무슨 생각에서였는지 계속 서 있었다. 물병을 열기 전의 나와 지금의 나는 전혀 다른 세계의 존재처럼 멀어지고 있었다. 나는 뚜껑을 열기 전의 나를 비웃고 비난한다. 심지어 내 안에서는 경멸이라는 단어가 두개골에 새겨져 버릴 지경이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그 경멸에 대한 수치심이 기쁨과 충만함을 느끼게 한다. 정신은 좁고 마른 껍질 속에서 깨어 나온 애벌레처럼 가볍고 신선함을 느낀다. 아마도 내가 더위에 서서히 미쳐가나 보다. 흥분은 한 동안 지속되었다. 왠지 모를 웃음이 실실 나온다. 내가 미친 게 확실하다.





대전. 길은 평탄한 편이었지만 더위가 만만치 않았다. 자동차는 더 많아져 간다. 나는 지쳐가고 있거나 이미 지쳐있었다. 대전역을 6km 남겨두고 대청호 방향의 표지판이 보인다. 대청호로 가기 위해 도로 환경을 정비하는 남자에게 거리를 물어보았다. 2km 정도라고 한다. 그러나 결과는 6km 이상을 더 걸었다. 그 남자는 내게 왜 그랬을까. 길은 아름다웠다. 그러나 길만 있었다. 야영을 할 장소가 없다. 그래서 계속 가야 했다.


경사도 적당히 반복되는 구불한 길은 여유롭고 아름다웠다. 그러나 눈앞에 펼쳐진 벚나무 그늘 길은 더 이상 아름답게 보이지 않기 시작했다. 가벼웠던 발은 몸의 신호를 거부하지 못하고 서서히 느려진다. 이상 신호는 느끼함과 짧은 호흡이 맞물리며 나타났다. 종류가 전혀 다른 땀이 나기 시작했다. 어... 이러면 안 되는데 하는 생각과 탈진이라는 단어가 빠르게 스친다. 길 옆으로 몇 걸음 옮긴 후 쓰러지다시피 앉아서 잠시 쉬었다. 앉아만 있을 수는 없었다. '앉아있지 않으면?' '가야지.' '간다고?' '그래.' '어딜?' '어디든, 여기서 잠을 잘 수는 없으니까.' 정신은 분열하기 시작했다. 속이 메슥거리며 구토가 나오려 했다. 상태가 심각해질 수 있다고 판단을 했다. 다시 주저앉았지만 그대로 있으면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었다. 나는 사투를 벌이는 영화 속의 영웅은 아니어도 분명 어떤 두려움과 싸우고 있었다.


자신에게 이 상황을 극복해 보자고 독려하며 일어섰지만 결국 얼마 가지 못하고 육체에 대한 주도권을 상실했다. 제기랄! '여기까지인가?' 불안한 마음과 함께 119에 신고를 해야 한다는 생각과 그렇게 되면 쪽팔릴 거라는 생각을 한다. 이 와중에. 그런데 쪽팔림을 생각하자 이상한 힘이 생겨나 나를 좀 더 걷게 만들었다. 빙판에 미끄러져 척추가 부러져도 벌떡 일어나 출근을 하게 되는 것이 바로 쪽팔림 때문이다. 나는 쪽팔리지 않기 위해 혼과 신을 다해 터벅터벅 내리막 길을 걸었다.


완만한 내리막을 돌아 나서자 멀리 도로를 가로지르는 사람이 보였다. 표류하던 바다에서 육지를 발견한 것 같았다. '살았다' 입 밖으로 뱉을 수는 없었지만 나는 말했다. 나를 발견하고 내게 관심을 보이길 간절히 바라며 걸어갔다. 나이가 일흔 정도로 보이는 아주머니였다. "아니 무얼 그렇게 지고 다닌댜~?" 아주머니는 내게 마을 사람을 대하듯 말을 걸었다. " 예... 에~" 기쁘고 고마웠지만 기력이 다했다. 그래도 뭔가 말을 하기 위해 기운을 차리려고 하자 구역질이 먼저 나오려 한다. 입을 꾹 다물고 참았다. 아주머니는 다시 한번 묻는다. "이불 보따리여?" 어떻게 알았을까. 이불 보따리를. "예... 이불 보따립니다."


서울에 가는 길이며 잠잘 곳을 찾는 중이라고 했다. 그리고 더위를 먹은 것 같다며 힘든 표정을 지어 보였다. 내심 공감 어린 위로의 말을 기대하고 있었다. "그러믄 우리 집이서 자~" 아주머니는 내 눈을 올려 보며 아무렇지도 않게 말한다. "예?" 놀란 나는 아주머니의 눈을 더 깊게 바라보았다.






오늘은 여기까지만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여러분들이 무슨 소설을 연재하고 싶으냐고 비난을 해도 할 수 없다. 적어 놓은 일기를 정리하는데 시간이 많이 소요된다. 마구 개념어들을 늘어놓고 관념 안에서 혼자 수영을 하다 보니 무슨 생각으로 써놓았는지 꼼꼼히 정리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하루의 일들을 한 번에 기록하고 싶었는데 쓰다 보니 글 속에서 처럼 지금의 나도 같이 지쳐가고 있는 것 같다. 덥지도 않은데. 이건 무슨 동일화 현상?


고백하자면 중간에 끝내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다. 그래서 적당한 곳을 찾다가 이왕이면 이야기의 새로운 전개가 이루어져야 하는 시점에서 끝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드라마도 이런 식으로 전개할 것이다. 현재의 마무리를 다음의 호기심으로 전환하는 것이 일일 드라마뿐 아니라 모든 연속 장르의 기본 메커니즘이다. 아. 젠장. 이런 긴 핑계를 하느니 조금 더 쓸걸. 여러분 미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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