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어젯밤에 있었던 사소하지만 기억하고 싶은 짧은 만남을 먼저 이야기하려고 한다. 기억에 남아 있을 때 정리를 하지 않으면 잊어버리기 때문이다. 여행자들 에게는 여행 중 경험한 모든 것들이 특별하게 다가온다. 그리고 그것들은 강렬한 몇 가지의 기억들 말고는 시간이 지나면 흐릿하게 멀어지기 마련이다. 추억에 애틋한 집착을 보이는 나는 여행의 첫날부터 기록을 하지만 일주일 정도가 지나면 날씨와 장소만 남게 된다.
집으로 돌아와 정리를 하며 꺼낸 노트에는 길어야 열흘 정도의 기록만 남아있다. 이후의 행적들은 뒤섞인 시간 안에서 공간과 인물들이 이야기와 동떨어져 남아있다. 이야기에 짝을 맞추어 보지만 시간, 공간, 인물들을 짜 맞추고 과장을 첨가하면 새로운 무용담이 창작된다. 콜라주. 다음에는 선명한 추억과 함께 알찬 정보를 가득 담은 여행기록을 만들고 말 거라며 눈에 힘을 주고 결심하지만 매년 똑같이 반복했다. 그래서 이번에는 사소 하지만 나에게 의미 있는 시간을 빼놓지 않고 기록하려고 한다. 그것은 이야기의 대상에 대한 예의이기도 하기 때문에. 이제 그만하고 어젯밤으로 돌아가자.
예술제 관람을 마치고 내려오는 길에 내 뒤에서 차량 한 대가 전조등을 밝히고 뒤를 쫓는다. 마음이 다급해지고 쫓기듯 걷는다. 지나가길 바라며 길 한쪽으로 비켜서 걸음을 늦춰도 속도를 나와 같이 동기화했는지 전조등이 비추는 범위는 일정하게 유지된다. 신경이 쓰인다. 뒤에서 누가 일정하게 따라온 다는 것은 불편하고 불안한 일이다.
밤길 조심하라거나 뒤통수 조심하라는 말이 있다. 뒤는 가장 조심해야 하고 그만큼 신경이 쓰이는 곳이다. 사람의 가장 큰 약점은 신체의 모든 것이 앞쪽으로만 기능화되었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앞의 기능들에 몰두하다 보면 약점이 노출되고 방심을 하게 된다. 그래서 촉이 좋아 보이는 사람에게 우리는 말한다. 뒤에도 눈이 달렸나? 나는 부모님과 선생님 들은 분명히 뒤에도 눈과 같은 기능을 가진 무엇인가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농산물 임시 저장고 앞마당에 들어섰다. 텐트를 설치하려고 주위를 돌아본다. 한쪽에 제일 중요한 물이 나오는 수도가 있다. 누군가 등 뒤에서 나를 부른다. 돌아보니 승합차가 서있다. 승합차가 나를 부른 건 아니다. 창 밖으로 고개를 내민 것은 중년을 지나치려는 남자다. 뒤따르던 자동차의 정체를 이제 알겠다. 그리고 내가 가는 길을 비춰 주기 위해 속도를 맞추며 뒤를 따랐다는 것을 그제야 알게 되었다.
혼자서 여행을 하는 나에게 관심을 갖고 있었다. 가까운 곳에서 펜션을 운영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지금은 성수기라서 펜션은 모두 나갔지만 방갈로가 남아 있으니 거기서 잠을 자는 게 어떤지 묻는다. 고맙지만 사양한다고 말했다.
남자는 등산과 암벽을 타기를 즐긴다. 특히 인수봉을 너무 좋아해서 그쪽에 집도 한채 있다고 한다. 돈도 꽤 벌었고 살만 했는데 그만 몸이 아파 폐를 절반이나 잘라 냈다고 한다. 나는 계속 듣고만 있었다. 배낭은 그대로 내 등에 있었다. 여차저차 재산도 많이 까먹고 시골에 내려와 살고 있으며 지금의 두 번째 부인과 수년간 고생하며 펜션을 한 채씩 늘려가며 살아가고 있다고 한다. 처음 정착할 때 몇몇 배타적인 토박이 주민들과의 갈등으로 맘고생도 많았다고 한다.
순박하고 정이 많은 시골의 사람들이라도 낯선 이방인을 마음에 받아들이려면 시간이 필요 할 것이다. 순박함에는 두려움이 껍질처럼 덮여 있는 법이다.
젊어서 일 년 반 동안 전국을 떠돌며 여행 아닌 여행도 했으며 고생이 많았었다고 한다. 이야기는 쾌적한 밤공기를 타고 멀리 나아가고 있었다. 나는 앉고 싶어 졌다. 배낭은 아직도 등에 업혀 코를 골고 있었다. 함께 가는 게 어떻겠냐고 한다. 사양했지만 계속된 친절을 거절하자니 미안함을 넘어 너무 튕기는 게 아닌가 하는 마음이 들었다.
몇 번의 제안과 거절이 계속될 때 카메라가 멀어지듯 상황이 객관화되며 나는 관객이 되었다. 어두운 산골의 밤길에 두 사람이 대화를 하고 있다. 한 남자가 다른 남자에게 말한다.
"방갈로도 비었는데 거기서 자시죠."
"괜찮습니다."
"그러지 말고 가서 맥주라도 한잔 하면서 얘기도 좀 하고..."
"아뇨. 정말 괜찮습니다."
아쉬움이 많이 남았는지 내일 아침이라도 가는 길에 들러주면 아침식사나 차라도 한잔 하자고 한다. 약속은 하지 않았다. 지킬 수 있을지 자신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여건이 되면 찾아뵙겠다고 말하고 헤어졌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내일 아침이면 그냥 떠날 것을.
이것이 어젯밤의 사소한 만남이었다. 당연히 지루 하셨겠지만 나에게는 의미 있는 만남이었다. 아마도 내가 그분의 요청을 받아들여 함께 깊은 이야기를 나누었다면 더 좋았을 것이다. 그러나 잠깐씩 종아리와 어깨의 불편함이 나를 청취자의 선로에서 이탈하게 만들었음에도 자신의 일생을 요약본으로 내어놓는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나에게 열려있는 타인의 존재는 기쁨을 주는 동시에 내 존재의 의미를 새롭게 한다. 다시 한번 그분께 고맙다는 말씀을 전한다.
이제 오늘 아침이다. 삼양라면. 태양은 어김없이 떠오른다. 나는 태양이 한 번쯤 서쪽에서 떠올라 주었으면 한다. 한 번 정도는 그럴 수도 있고 그래 주었으면 좋겠다. 그 오랜 인류의 시간에서 단 한 번의 예외도 없이 동쪽에서만 떠올라야 할 이유가 뭔가. 이제 우리의 경험으로 이루어진 법칙과 믿음의 기반 위에 세워진 진리를 깜짝 이벤트를 통해 흔들어 버렸으면 한다. 뉴턴이나 아인슈타인 보다는 코페르니쿠스가 제일 아쉬워하겠지만. 그래도 현재의 철학자나 과학자들이 새로운 법칙이나 이론을 발견하면 된다. 우리는 그저 아주 희박한 하나의 현상을 보며 비밀스러운 마음을 간직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좋을 것이다.
태양아. 한 번. 멋지게. 그리고 놀랍게. 서쪽에서 나타나거라. 나는 그 순간 서쪽의 너를 보지는 않을 것이다. 나는 사람들을 볼 것이다. 절대로 그럴 수 없다고 믿는 사람들이 놀라워 하는 모습이 보고 싶다.
세찬 바람은 고개를 숙이게 만든다. 한 손을 때론 두 손을 머리 위로 올려 모자를 누르고 포로처럼 걷는다. 승용차 한 대가 다가오더니 내 앞에서 속도를 늦추다가 뒤쪽에서 멈춘다. 내게 길을 묻기라도 하려는 건가. 뒤를 돌아보았다. 누군가 나를 부른다. 산골 예술제의 오늘 공연을 위해 가던 사람들이었다. 이런 우연도 있다. 어설픈 표현과 인사를 주고받다가 운전석에 앉아 있기가 미안했던지 차에서 내려와 악수를 청한다. 늘 그렇듯 서울에서 보자며 상투적인 헤어짐을 도로 위에 놓아둔다.
생각하지 못했던 우연들은 그 확률이 낮을 수록 필연이라 생각하기 쉽다. 자신에게 이로운 경우에는 특히. 처음 본 사람을 사랑하게 될 때도 우연 보다는 필연이라 믿는다. 최면에 걸린다. 불리할 때는 재수가 없어서 그런거라 하고.
이후에는 바람이 인체의 운동에 미치는 영향과 시간에 따라 달라지는 바람에 대한 심리 정서적 변화의 관계를 파악하고, 논문의 주제로 활용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갖게 하는, 기체역학에 관한 심오하고도 피곤한 경험의 시간이 계속되었다. 더위를 식혀주던 넉넉한 바람의 면적과 압력이 십여 분도 지나지 않아 나에게 적대감은 물론이고 저주의 대상이 되어 버렸다. 그 짧은 쾌적함이 온갖 욕설로 모욕을 당하게 될 줄 누가 알았을까. 바람이 어떻게 20톤의 인간 무리와 10톤의 화물들을 태운 그 무거운 금속 덩어리를 하늘에서 떨어뜨리지 않고 멀리 보낼 수 있는지 그 힘을 나는 의심하지 않게 되었다.
한 시간 동안 2km도 걷지 못했다. 평균에는 절반도 못 미치는 거리지만 허벅지와 종아리에 몇 배의 산소가 요구된다. 산을 오르는 것과 같았다. 간신히 영동읍에 도착하게 되었다. 새마을금고에서 현금을 인출한다. 얼마인지는 궁금해하지 마시길. 처음 20만 원을 9일 만에 거의 소비해 버렸다. 모두 먹어 버렸다. 그동안 섭취한 음식의 양은 평소의 두세배 정도가 되었다. 몸은 많은 칼로리를 원했다.
음식점을 찾기 위해 같은 길을 두 번이나 왕복했다. 몸은 육류를 원했지만 허름해 보이는 칼국수 집에 들어갔다. 삼천 오백 원이라는 가격이 마음을 잡았다. 보통은 외관이 허름하고 음식 가격이 나이를 대신하면 전통이 있는 집이라 믿어도 좋다. 전통이 있다고 모두 만족스러운 것은 아니지만.
색이 거의 남아있지 않은 낡은 붉은색의 글씨들. 문과 문틀의 유격으로 떨리는 유리창과 창틀의 몸서리. 드르르륵. 주방과 탁자 사이에서 빨간 고무 대야에 열무나 배추김치를 바로 버무려 담는 모습. 찐득한 육수의 냄새와 후끈한 실내 공기를 고르게 휘젓는 선풍기의 바람. 식당은 정겨운 풍경을 칼국수와 함께 쟁반 위에 그대로 담아내고 있다.
묵직하게 실려 나온 그릇. 투박하게 풀어져 있는 계란 위에 올려진 고추 가루와 김가루의 색감. 마티스도 감탄할 야수적 접근법. 누구라도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는, 굶주린 식도와 위장을 압도하는 양의 스케일. 야박하다는 단어의 기원을 애초에 제거해 버린 수북한 열무와 배추김치. 식욕이 다시 찾아올 수밖에 없는 이 모든 요소들. 칼국수의 역사는 최종적으로 배를 부르게 했다.
영동은 난계 박연선생의 고향이다. 난계국악당에 들렀다. 다른 용무가 있었던게 아니다. 화장실을 이용하기 위해서였다. 화장실은 사우나와 같았다. 잠시 의자에 앉아 땀을 식히는데 정신이 아득해진다. 온몸이 늘어진다. 누웠다. 잠들면 안 되는데 하는 생각을 마무리하지도 못하고 잠이 들었다.
내가 자고 있다는 사실을 잠 속에서 알아차렸을 때 심장은 놀랐고 몸은 괴로워했다. 이미 밤이 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눈이 번쩍 떠졌다. 시계를 보니 삼십여분 정도가 지났다. 몸을 세울 수 없다. 조금 더 누워 있다가 느리게 상반신을 일으켜 앉았다. 발과 다리는 물론 온몸이 부어오른 느낌이다. 모든 것이 느리게 흐르고 있었다. 숨은 물론 심장도 느릿느릿 꺼져가듯 박동을 한다. 힘겹게 일어섰다. 쓰러져 버리고 싶다. 그래도 나는 가야 한다.
옥계리 도착. 옥계폭포가 있는 곳이다. 가보지는 않았다. 갈 수가 없었다. 된장 쌈밥. 친절한 주인 남자분은 내가 적응이 안 되는 모양이다. 무엇 때문인지 모르겠다. 그런 남자를 관찰하는 나는 즐거웠다.
미리 물색해 놓은 정자에 여자 두 명이 앉아있다. 대전에서 왔다고 한다. 함께 앉아 결코 기억에 남지 않을 이야기들을 했다. 간식으로 준비했던 오징어와 볶은 콩, 아몬드, 고구마, 떡, 결명자차, 물을 주고 돌아간다. 횡재.
오늘은 바람에게 몸과 마음을 모두 털렸다.
영혼은 가벼웁다.
달이 산 위로 솟아올랐다.
아무튼,
사람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