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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천수 Dec 19. 2021

누구의 ‘탓’인가?

문제는 남 '탓'이다






평소 우리 주변을 살펴보면 자기 일이 생각하는 대로 잘 풀리지 않거나 곤란을 겪게 되면 늘 누군가의 ‘탓’으로 돌리거나 환경을 탓하며 억지 변명하는 사람들을 많이 볼 수 있다. 이런 사람들은 집에서 돌아다니다가 어디 부딪혀서 물건이 떨어졌다거나 하면 자기 잘못은 인정하지 않고 대신에 "왜 이걸 하필 여기다 뒀어?"라고 하며 다른 사람을 탓한다. 집이나 회사에서 자기가 찾는 물건이나 서류가 눈에 보이지 않을 때도 “누가 내 물건을 치웠어?” 한다거나, 집안이 정돈되지 않고 어수선하면 “집이 엉망이야, 나 혼자만 일을 다 하고 있어”라며 투덜대는 등 아주 작고 사소한 일에서부터 시작해 무엇이든 남이나 환경‘탓’으로 돌려 버리곤 한다.   

   

이웃이나 친구 중에도 걸핏하면 부모 탓, 형제 탓으로 돌리는 사람들이 있다. 부부간에도 남편 탓, 혹은 아내 탓으로 돌리는 사람들이 많다. 이런 집에는 늘 불협화음으로 평안한 날이 드물다. 가족 간에 서로 탓을 하면서 티격태격하는 일은 불행한 일이다. 사소한 의견 대립으로 부부싸움도 잦아진다. 우리 주변에는 실제로 그런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원인은 모두 남의 탓 때문이다. 남의 탓으로 돌리는 일은 우선 상대방에 대해서 비난하는 일로 연결되며, 가족 간에 이런 생활이 계속되면 가정불화는 당연하다.     

 

“잘된 일은 모두 내 덕이요, 잘못된 일은 모두 남의 탓이다.”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에는 이러한 인식이 문화 전체에 만연되어 있다. 내가 하는 일은 잘못이 있을 수 없다는 철저한 자기 방어 의식 속에 설혹 남이 나의 잘못을 지적하더라도 이를 받아들이기는커녕 어떠한 변명과 궤변으로라도 자기 자신의 정당성을 내세우고 좀처럼 자신의 허물을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 이들은 살면서 남 탓으로 돌리는 일이 습관처럼 몸에 배었다. 그래서 불평불만이 마음속에 가득하다. 나이가 들어도 고치기는커녕 오히려 더 심각해진다. 자신의 생각이나 행동에 대해 전적으로 자기 책임이 아닌 것처럼 보이도록 유도해 나가면서 주변에 가까이 있는 사람들을 지겹고 피곤하게 한다.      


명심보감(明心寶鑑) 성심 편(省心篇)에, 불한자 가급 승단(不恨自家汲繩短). 지한 타가고 정심(只恨他家苦井深). “자기 집 두레박줄이 짧은 것은 탓하지 않고, 남의 집 샘이 깊은 것만 원망한다”는 말이 있다. 매사 남의 탓부터 먼저 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같은가 보다. “잘되면 내 탓이고 잘못되면 조상 탓”이라는 우리 속담이 말해주듯 우리의 일상생활 속에서도 너무 흔한 얘기다.     


프로이트의 성격 이론에서 ‘투사(projection)’는 자신의 성격, 감정, 행동 따위를 스스로 납득할 수 없거나 만족할 수 없는 욕구를 가지고 있는 경우에 그것을 다른 것의 탓으로 돌림으로써 자신은 그렇지 아니하다고 생각하는 일 또는 그런 방어기제로 자신을 정당화하는 무의식적인 마음의 작용을 이른다. 쉽게 말해 자기 마음의 갈등을 외부 사태로 핑계 대는 것이다. 예를 들면, 성범죄자가 자신의 성적 욕망을 노출을 많이 한 옷을 입은 여자의 탓으로 돌리는 것과 같은 것이다. 범죄를 저지른 사람이 나라고 생각하면 마음이 불편하기 때문에 내 탓을 남의 탓으로 돌리는 것이다. 나의 나쁜 점이나 내가 잘못한 것을 타인의 나쁜 점으로, 타인의 잘못으로 돌려서 내 마음을 편안하게 만드는 것이다.     


문제는 남 '탓'이다     


오래전 한 종교단체에서 우리 사회의 신뢰 회복을 위하여 "내 탓이요"란 캠페인을 벌려 종교계는 물론 우리 사회에 잔잔한 호응을 얻은 일이 있다. 이러한 운동이 전개된 것은 종교적인 문제뿐만 아니라 복잡하고 다양한 사회구조 속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갈등 요인과 결과에 대하여 각자가 먼저 자기의 잘못이 없었는지를 생각하게 하여 밝은 사회를 만들어가자는 취지인 것으로 생각된다.     


남을 탓하는 습관은 평소에 부딪치는 분노나 좌절, 스트레스뿐 아니라 자신이 처한 불행한 삶까지도 남의 책임으로 돌리고 남을 원망하고 잘못을 탓하기만 한다. 물론 다른 사람이 일으킨 문제로 곤란에 처할 때도 있지만 그런 상황에 대처하고 끝까지 자신의 삶을 책임져야 하는 사람은 다름 아닌 자기 자신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남을 탓하기에 바쁜 사람은 자신의 인생에 대해 책임감을 느끼지 못하는 자세로, 심지어 자신의 행복이나 불행까지도 타인에 의해 좌우되는 통제 불가능한 것으로 인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남을 탓하는 습관에서 벗어나 스스로의 의지와 감정을 조종하며 타인에 대한 불평을 멈추고 자신의 성급한 판단이나 오해를 성숙한 모습으로 인정할 때 삶은 더욱 행복해질 것이다.  


요즘 우리 사회의 모습을 보면, 모든 분야에서 이해관계자들이 자신의 주장이 옳다고 외치는 아우성과 분노와 상대에 대한 증오만 가득한 것처럼 보인다. 모든 공적은 내게 있고 나쁜 과오는 남에게 있다는 주장만 일삼는다. 아무리 눈을 씻고 봐도 자기중심적 사고에서 벗어나 남보다 먼저 자신을 돌아보는 반성의 태도는 좀처럼 보이지 않는 것만 같다.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면서 사회 전반에 걸쳐 생활환경의 많은 변화를 가져온 것 못지않게 지금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대선 정국이 혼란 속에 빠져 있는 것만 같다. 대선 후보자들의 양상을 보면서도 아쉬움이 남는 것은 잘해보자는 긍정적인 공약보다 상대 후보를 헐뜯는 네거티브가 여전히 성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대선후보 간 비방이 아닌 ‘정책 대결’을 해야 한다지만, 미래의 비전을 내세운 후보들의 정책 대결은 찾아보기 힘들다. 역대급 ‘비호감 대선’으로 불리는 이번 선거의 풍경 역시 정책 대결이 실종될 가능성에 대해 대다수 국민들이 우려하며 미래에 대해 걱정하는 모습이다.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익숙한 용어인 ‘내로남불’은 남의 잘못에는 가혹한 잣대를 들이밀면서 정작 자신이나 같은 편의 잘못에는 너그러운 이중 잣대를 적용하는 것을 말한다. 나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남 탓으로 돌리는 책임 회피다. 이러한 책임 회피는 지도자가 갖춰야 할 덕목 가운데서도 가장 피해야 할 자세일 것이다. 그런 이유로 같은 죄를 지어도 책임 있는 공직자에게 가중 처벌을 하는 것이 아닌지.  

  

내로남불


지금 국민들은 배제하는 정치가 아니라 도덕성과 청렴성, 화합과 함께 더해가는 포용의 정치를 하는 지도자가 ‘지도자답게’ 나라를 이끌어 갈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다.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모든 상황에 대선 후보 역시 책임을 공유할 수밖에 없다는 자세로 먼저 “내 탓이오”를 외칠 수 있는 후보자를 보고 싶다. 나쁜 인연 탓이라 할지라도 내가 관여되었던 잘못을 인정하는 것이 책임 있는 지도자의 자세다. 나쁜 인연도 인연이다. 그리고 선택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주어진 인연이라면 '네 탓'이 아닌 ‘네 덕분’이란 마음가짐으로 대하는 것이 지도자다운 태도가 아닐까?     


겨울의 아침햇살이 창을 통해 들어오며 눈부시게 빛 난다. 새로운 마음으로 창문을 활짝 열고 세상을 한번 바라보자. 코로나로 사회가 여전히 혼란스러운 지금은 남 탓만 하고 있을 때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자신이 직면한 어려움을 남의 탓으로 돌리는 대신 내 탓으로 돌려서 한번 생각해 보자. 좋은 일이 생기면 나보다는 내 이웃의 공으로 돌리는 배려의 훈련이 우리에겐 아직 필요한 것은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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