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내는 시간만큼 행복은 달아난다
화는 예기지 못한 큰일을 당해 생길 수도 있지만, 대개는 일상에서 부딪치는 사소한 문제 때문에 일어난다. 우리가 평소에 대수롭지 않게 하는 말이 상대방에게 큰 상처가 되어 화를 일으킨다는 사실 또한 알아야 한다.
"귀가 먹었어?" "눈은 뒀다 뭐해?" "머리가 어떻게 된 거 아니야?" "당신은 어떻게 매번 그래?" "내 이럴 줄 알았지. “
말은 한번 내뱉으면 주워 담을 수 없다. 말하는 사람이 의도한 대로 뜻이 통하는지는 듣는 사람에게 달렸다. 그래서 말을 던지는 사람의 의도와는 전혀 다른 나쁜 뜻으로 알아듣고 다툼이 일어나는 경우도 허다하고, 상처 받고 오해받은 채로 관계가 서먹해지거나 심지어 단절되는 경우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화는 평상시엔 얼굴을 감추고 우리 마음속에 숨어 있다. 누군가 우리를 화나게 하는 말이나 행동을 하면 우리는 곧바로 상대방에게 고통을 줄 말이나 행동을 하려 한다. 화라는 물건은 상대적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음속에서 화가 일어날 때마다 우리는 흔히 나를 화나게 한 사람에게 앙갚음을 해야 속이 시원하다고 믿는다. 이런 마음은 누구나 다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남에게 화를 풀면 마음이 편해질까? 절대 그렇지 않다는 것을 누구나 알 것이다. 무엇인가 찝찝하고 개운찮은 느낌을 받을 것이다. 그렇지만 나를 화나게 한 사람에게 화를 내지 않는다면 오롯이 자기 자신만 화병(火病) 속에 묻힐 것이다. 이럴 때는 내가 무엇 때문에 화가 났는지 상대방에게 알려 주어야 한다. 화가 나도 참으면 병이 된다. 화를 너무 오래 품고 있으면 건강에 아주 해롭다. 그것이 남편이건 아내이건 자식이건, 친구나 낯선 사람이어도 사실대로 말을 해야 한다.
사회 심리학자들의 연구 결과에 의하면, 화를 발산하기 위해 ‘이불을 뒤집어쓰고 고함을 지르던가, 주먹으로 베개를 힘껏 치거나 두더지 게임을 하며 뿅망치를 힘껏 내려치는 놀이’ 등은 매우 위험한 방법이라고 한다. 당장은 기분이 한결 나아졌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것은 단지 화의 에너지만 발산했을 뿐 근본적인 원인은 처리한 것이 아니라고 한다. 내면에 잠재한 화는 더욱 커질 수 있다고도 했다. 이럴 땐 화가 난 자신의 감정을 조용히 들여다보고 숫자라도 세며 화를 가라앉히고, 왜 기분이 나쁜지 솔직히 이야기하고, 활짝 웃으며 화를 가라앉히는 연습을 하라고 한다.
미국의 정치가 토머스 제퍼슨(Thomas Jefferson)은 ‘화가 났을 때는 말하기 전에 열까지 세어 보라, 매우 화가 났을 때는 백까지 세어 보라. “고 했다.
부부도 가끔 대수롭지 않은 일로 싸울 때가 있다. 내가 생각할 때 가장 많은 불화의 씨앗은 친정과 시댁의 가족 문제, 성격 차이, 경제적인 문제가 가장 큰 요인이 아닐까 한다. 어떠한 이유든 부부가 어느 한쪽 때문에 고통을 받고 있다면 빨리 그 사실을 말해주는 것이 좋다. 행복할 때 행복을 나누듯이 고통스러울 때도 고통을 나누어야 한다. 내가 가진 화가 상대방 때문에 일어난 일이라도 먼저 차분하게 자신의 감정을 털어놓고 되도록 빨리 화해를 해야 한다. 화가 났을 때 하루 이상 마음에 품고 있어서는 안 된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고통은 심해지고 화해의 타임을 놓쳐버린 후 후회하는 경우를 직접 경험한 일이 있을 것이다. 남편은 아내에게, 아내는 남편에게 서로의 마음속에 쌓여있는 모든 것을 다 털어놓을 권리가 있을 뿐만 아니라 의무도 있다는 것을 알고 서로에게 마음의 문을 열고 한 발 더 다가서자. 그보다 더 쉬운 일은 그에게 선물을 하는 것이다. 선물과 함께 이런 말을 곁들이면 금상첨화 아닐까?
“여보, 나 지금 화 많이 났어. 당신이 그걸 알아주었으면 해.”
“여보, 이제 난 기분이 훨씬 좋아졌어. 그동안 내 그릇된 판단 때문에 당신이 고통을 받았다는 걸 깨달았어. 내가 당신과 나 자신에게 어떻게 고통을 안겨 주었는지 이젠 알겠어.”
누구나 한 번쯤은 가족 중에 누구와 사소한 말다툼이나 기분 언짢은 일로 한동안 전혀 대화를 하지 않고 지낸 경험이 있을 것이다. 그 순간은 한집에 살면서도 가족이 멀리 있는 존재처럼 느껴진다. 그런 상황이 전개되면 서로가 불편하다. 대화가 단절된 가족 간에는 어떤 다른 상대보다 더 어색하고 냉랭할 것이다. 이럴 때는 서로가 많은 것을 공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며 본심이 아닌 순간적인 감정의 굴곡에서 벗어나 대화로 풀며 용서와 사랑으로 감싸 주어야 한다. 진정한 이해를 위해 우리는 먼저 자신과의 대화의 문을 열어야 한다. 자신과도 대화할 수 없는데 어떻게 타인과의 대화를 기대할 수 있겠는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으면 남을 사랑할 수 없듯이.
화는 사람의 마음속에 살아있는 생명체와 같다. 그래서 화는 꿈틀거리고 언제 어디서나 나타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화는 시간이 걸려야 가라앉는 습성을 지니고 있다. 어떤 오해로 화가 빚어졌다는 사실을 본인이 알았더라도 금방 갈라 앉지는 않는다. 화가 가라앉을 때까지 서두르지 말고 기다려야 한다.
한 번은 아들이 슬며시 다가와 어떤 값비싼 물건 하나를 사야 한다며 평소에는 안 하던 애교까지 부린 적이 있었다. 나는 그 물건이 왜 필요한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버럭 화를 낸 적이 있다. 그 말을 듣고 아들은 자기 방에 들어가 버렸다. 저녁을 먹으러 나오지도 않고 방문조차 걸어 잠근 채 틀어박혀 있었다. 답답한 것은 내가 더 그랬다. 아들이 필요한 것을 사지 못한다는 것에 대한 섭섭한 감정이 만들어낸 불만 때문인가? 아니면 기대했던 아버지의 거절로 마음의 상처를 받아 화가 난 것 일까? 그런 행동을 보는 나도 화가 났지만, 곰곰이 생각하며 내 마음을 진정시켰다. 화가 났을 때는 성급한 판단에서 벗어나 내 마음과 대화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걸 아니까.
화는 다스리는 것은 밥을 지을 때 뜸을 들이는 거와 같다. 너무 성급하게 뚜껑을 열면 설익은 밥을 먹게 된다. 제대로 된 밥을 먹기 위해서는 잠시 기다려야 한다. 화도 마찬가지다. 당장 화가 났다고 감정을 주체하지 못해 괴로워하지 말고 일단 숨을 고르고 마음을 추슬러야 한다.
아들을 조용히 불러내어 상황을 파악하고 화가 난 연유를 알아보았다. 사고 싶은 물건에 대한 나와 다른 의견이 무엇인지를 이해하고 나서 아들의 의견을 존중해 주었다. 합당한 이유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더 이상의 불편한 관계는 지속되지 않았다. 아들의 마음 또한 돌아서자마자 마음을 전하기는 뭣했는지 저녁이 되어 죄송하다는 말과 함께 낯선 포옹으로 속마음을 알려 주었다.
요즘 같은 때에 차를 몰고 거리에 나서면 교통체증에 시달리기 십상이다. 그럴 때면 나도 모르게 화를 내고 다른 운전자에게 욕을 파 붓는다. 너무 느리게 운전한다고, 멋대로 차선을 바꿔 끼어든다고, 깜빡이를 제대로 넣지 않는다고. 동승자가 쓸데없는 짓이라고 해도 자제력을 잃고 흥분을 한다. 그러한 행동은 언제나 똑같은 상황에서 일어나는 정해진 사고방식처럼 튀어나온다. 아마도 날마다 겪는 교통체증에 대한 일정한 행동방식이 운전을 통해 익숙해져 있다는 증거일 것이다. 차 안에서 화를 내봤자 다른 사람이나 상황이 내가 원하는 대로 바뀌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잘 알면서도 습관처럼 내뱉는 미련한 행동으로부터 빠져나와야 되지 않을까? 나는 요즘엔 그런 상황에 처할 때는 못 부르는 노래도 한 번씩 불러보기도 하고, 음악을 듣거나 숫자라도 세며 초조하고 조급한 마음을 다독인다. 그것이 독감에 걸린 것처럼 힘이 빠지는 화로부터 나를 보호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차 안에서 고함을 지르는 대신, 지난밤의 황홀했던 일이나 오늘 있을지도 모르는 유쾌한 일을 생각하면서 웃어보자. 때로는 우리의 발목을 잡는 화는 인생을 사는데 하등 쓸모없는 짓이란 것을 생각하면서.
랄프 W. 에머슨은 “1분 동안 화를 낼 때마다 당신은 60초 동안 행복을 잃는 셈이다.”라고 했다.
화는 우리의 일상에서 부딪치는 자잘한 문제 때문에 일어나는 경우가 많다. 우리는 일상에서 일어나는 사소한 일로 화내는 시간만큼 행복을 잃어버리는 오류를 범하지는 말아야 한다. 빠른 시간 내에 화를 다스리며 잃어버린 작은 행복들을 다시 되찾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