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밤봇 Apr 11. 2021

24. 아침 6시는 시간이 느리게 가

B급에서 A급이 되고 싶어졌다.

24. 아침 6시는 시간이 느리게 가



 일요일 오전 10시 약속이 없는 평화로운 주말, 아침에 일어나 씻고 머리를 말리면 언제나 그랬다.


"머리 한 번 잘 됐네."


 유독 아무런 약속이 없는 날에는 머리 드라이가 잘 되곤 했다. 신경쓰지 않고 아주 대충 말렸음에도 불구하고 왜 그렇게 자연스럽고 컬도 괜찮은지, 썩 만족스러운 거울 속의 모습을 보면 기분이 좋아졌다. 


 일요일의 제법 잘 말려진 머리와 뽀송뽀송한 느낌으로 시작하는 하루의 시작, 최근 이사와 생일로 친구가 선물로 준 핸드드리퍼를 이용해 커피를 한 잔 내렸다.


 기분 좋은 바람, 그리고 제법 좋은 커피 냄새, 필터에 올라오는 풍부한 거품, 탁 트인 거실 창문으로 보이는 전경은 완벽한 하루의 무드를 만들어 주었다. 시작이 좋았다.


 그렇게 커피와 아침밥을 가볍게 먹고 오늘 갈 곳은 헬스장 밖에 없다는 것을 알고서는 헛웃음이 나왔다.


"야 진짜, 중요할 땐 별론데 이런 날은 잘 되네."


 기분 좋은 볼멘소리를 냈다. 




 회사로 출근해야 하는 평일 아침, 나름 신경써서 머리를 말리다 보면 어딘지 모르게 여기저기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왁스와 스프레이, 드라이기로 보수하려다 보면 점점 더 머리는 가라앉고 마음에 들지 않아 최악의 상태로 치닫는다. 결국 내가 내리는 극약처방은 머리 다시 감기.


 그렇게 해서 차악적인 모습으로 출근을 하다 보면 그 날의 하루의 무드는 뭘 하든 좋지 않다. 첫 단추가 잘못 꿰이자 하루가 피곤하고 힘이 부치기 시작했다. 퇴근하면 오늘은 빨리 자야겠다는 생각이 머리를 지배하고, 발걸음은 무겁고 눈꺼풀은 무겁게 내려 앉는다.


 하루의 시작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우리의 기분은 정말로 크게 좌지우지 된다. 사실 아침에 일어나서 기분이 좋고 나쁠 일은 그렇게까지 많이 일어나지 않는다. 특히 평일에는 아침에 일어나 씻고 머리를 말리고 아침밥을 먹거나, 화장을 하거나 옷을 입거나 하는 그런 정도의 경험이 전부다.


 하지만 그런 경험 안에서도 우리는 사소한 것들이 주는 감정을 제법 오랫동안 끌고 가기에, 아침의 무드는 정말로 중요했다.

 




 한 동안 친구와 새벽 6시에 일어나서 40분 간 한강 변을 따라 운동을 하고 집에 돌아와 1시간 동안 공부를 하는 그런 약속을 한 적이 있었다. 2주 정도 지속하고 나서 서로가 그만 두기는 했지만, 이러한 새벽 시작의 일과는 언제나 좋은 아침의 무드를 만들어 주었다.


 첫 번째는 주변을 관찰 하는 여유를 주었다. 회사 생활을 하면서 주변에는 제법 민감하지 못하게 지냈다. 주변의 아름다운 풍경도,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사는 지에 대해서도 크게 신경쓰지 않았다. 그러나 새벽 한강 변에는 우리와 같이 새벽부터 뛰는 사람이 많았다. 저마다 해가 반사된 반짝이는 강변을 그림의 배경 삼아 달리는 그 모습이 유독 아름다웠다. 나도 그 풍경에 녹아드는 한 부분이 될 수 있음에 피곤함보다 기분 좋음이 더 강해졌다.


 우는 갈매기, 반짝이는 물결, 달리는 사람들, 산책 나온 강아지, 흐르는 땀, 조금은 더러운 한강의 쓰레기까지 하나하나 눈에 들어왔다. 그것들을 대화의 주제로 삼아 이야기 하다보니, 시간은 제법 많이 흘러 있었다. 이렇게나 부지런히 살고 있는 사람들이 많음을 실감했고 그 부지런함의 대열에 잠시나마 껴 있음이 뿌듯했다. 


 두 번째는 시간이 제법 길다는 것을 알았다. 퇴근하고 집에 오고 식사를 하고 운동을 다녀오면 훌쩍 지나가 있는 시간으로 언제나 시간이 빠르다고 이야기하며 뭔가를 시도하기엔 언제나 늦은 시간이라도 생각했지만, 새벽의 시간은 생각보다 느리게 흐르고 있었다. 6시에 그렇게 뛰고 집에 들어와 씻고 나오면 7시, 출근을 하는 8시까지 1시간이 남아 공부를 했다. 15분짜리로 이루어진 인터넷 강의를 4강이나 듣기에는 충분한 시간이었고, 조금 느릿한 말투가 잠이 와 1.25배로 듣다 보니, 끝나는 시간은 좀 더 여유로웠다.


 마음에 들지 않는 머리를 다시 한 번 감기에도 충분했고, 식빵에 잼을 정성스레 바르고 먹기에도 충분한 시간이었다. 새벽의 시간은 많은 것을 하고도 마음이 여유로운 시간이었다. 시간은 언젠 같은 속도로 흘렀을 테지만, 아침은 저녁과 다르게 길었다.


 세 번째는 잠이 드는 시간이 빨라졌다. 당연히 아침 일찍이 하루를 시작하면 피곤함을 느끼는 시간도 제법 빨라져 밤 11시가 되면 눈이 감기곤 했다. 그럴 때면 양치질을 하고 침대에 누워 휴대폰을 조금 하다보면 어느 새 꿈뻑꿈뻑 졸고 있었다. 휴대폰을 끄고 잠을 드는 시간은 자정을 넘지 않았다.


 돌이켜 보면 12시가 넘어서 잠들기 위해 침대에 누워 휴대폰을 하는 일에는 그렇게까지 큰 영양가가 있었던 적이 없었다. 채팅방을 보거나, 인스타그램과 같은 SNS를 확인하거나, 유튜브에 들어가 조금은 자극적인 콘텐츠들을 본다거나 하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다 보면 30분도 1시간도 훌쩍 넘겨 1시라는 시간을 보고 헐레벌떡 잠이 드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아침을 만끽하는 그 2주 간은 제법 건강한 생활을 했었다.




 새벽 시간도 같은 속도로 흘러가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언제나 저녁에는 좀 더 분주하고 시간이 없다고 생각이 든다. 여유가 없어지는 그 시간보다는 여유가 있는 아침, 그리고 나아가 조금 더 좋은 무드로 하루를 시작하고 싶어졌다.


 그래서 첫 단추를 오랜만에 또 잘 꿰어보려고 한다. 비록 새벽에 운동을 갈만한 그런 상황은 아닐 것이다. 이사를 하고 나서는 제법 걸어가야하는 것도 있었고, 헬스장은 30분만 하기에는 아쉬움이 조금은 존재하기에 아마 일찍 일어나는 시간은 조금은 늦어질 것이다. 그렇지만 아침 모닝커피 한 잔과 토스트, 그리고 현재 하고 있는 공부를 1시간은 하다보면 아침의 좀 더 좋은 시간을 보낼 수 있지 않을까? 오랜만에 다시 2주간의 챌린지를 시작해보려고 한다.


 알람은 6시로 맞춰져 있다. 일어나서 커피를 내리다 보면 잠이 조금 깨겠지.

작가의 이전글 23. 지하철 15분이 20일이 쌓이면 책이 한 권이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