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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나팍크 May 17. 2024

6호. 나(비)의 꿈



나는 꿈을 많이 꾸는 편이다. 혹은 잘 기억하는 편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일어나면 밤새 꿨던 꿈을 선명하게 읊어낼 수 있고, 잠들기 직전 친구가 말을 걸면 자다 깨다를 반복하며 서로 다른 3개의 꿈도 단숨에 꿀 수 있는 사람이다. 어릴 때부터 유난히 꿈을 잘 기억하는 것 같아 이유를 검색해 봤는데 수면의 질이 낮아서라는 말이 대부분이었다. 그맘때부터 수면의 질이 낮았다는 걸까? 잘은 모르겠다.


꿈을 많이 꾸는 편이라 그런지 어릴 때부터 내 판타지를 꿈으로라도 실현하고자 시도를 했었다. 그래서 초등학생 때 컴퓨터를 뒤져가며 배운 것이 루시드 드림. 루시드 드림에는 Wild와 Dild 2가지 방식이 있다. Wild는 우리가 흔히 가위눌림이라고 말하는 과정을 거쳐야만 하는데 어린 내겐 너무 무서웠던 탓에 Dild를 시도했다. 꿈에서 자연스레 꿈임을 자각하고 그 후부터는 꿈에 대한 주도권을 갖게 되는 것인데, 꿈 자체를 자각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꿈일기를 통해 꿈을 기억하는 연습을 해야 했다. 매일 새벽 1시와  4시쯤 일어나서 꿨던 꿈을 기록했다. 잠이 펑펑 쏟아지는 그 순간에도 루시드 드림을 통해 유유백서의 쿠라마를 만나기 위해 꾸역꾸역 일어나 꿈일기를 적었다. 꿈일기 훈련을 몇 주 하자, 어느 날 나는 꿈을 꾸던 도중 ‘어? 이거 꿈이다.’ 하고 자각하게 되었다. 드디어. 자각할 수 있게 되었다. 꿈이라는 것을 알자마자 나는 고도로 집중해서 쿠라마를 소환해 냈다. 그런데 루시드 드림이 처음이라 그런지 내가 기대했던 자의를 가진 쿠라마 대신에 포스터 속 자세를 유지한 채 정지해 있는 쿠라마만 등장했다. 그는 내 꿈에서 잠깐 동안 그렇게 서있기만 하다가, 이내 난 잠에서 깨버리고 말았다.


이 날 이후 난 루시드 드림에 대한 흥미를 잃었다. 몇 주를 노력해서 불러낸 쿠라마가 고작 한 거라곤 장미채찍을 들고 서있던 것뿐이었으니까. 그렇게 나의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던 루시드 드림은 끝이 나버렸다. 비록 쿠라마와 노는 것은 실패했지만, 난 그때 처음으로 꿈의 속성에 대해 조금 알게 되었다.


꿈을 자각하게 되면 어느 정도 컨트롤 할 수 있는 힘이 생긴다는 것.


하지만 호접지몽을 통해 느낀 가장 큰 행복감은 꿈을 현실로 끌어들여올 수 있다는 것이었다. 항상 꿈을 꿈으로만 치부해 왔던 나였다. 그런데 내가 자던 그 시간, 내가 꾸던 그 꿈들이 가짜가 아닌 실은 진짜일 수 있다는 것. 꿈에서 했던 사랑이 ‘진짜’와 다를 바 없다는 것. 중요한 사실을 모르고 살았던 것만 같았다. 나의 세계는 나의 인식과 경험으로 만들어진다. 내가 꿈에서 수영장을 갔다면, 그건 정말 간 것과 다를 바 없을 수 있다는 것이다. 1시간 전 수영장을 다녀온 것과, 1시간 전 꿈에서 수영을 한 것은 둘 모두 ‘기억’에 저장되어 있는 것이고 과거를 돌아봤을 때 이 둘은 거의 유사한 임팩트를 가지고 있다는 것. 꿈의 선명도는 조금 떨어지긴 하지만 우리가 현실이라고 부르는 곳의 기억도 시간에 따라 꿈 선명도에 수렴할 만큼 희미해지기도 하니까.


내 삶은 더 풍요로워졌다. 꿈에서 있었던 좋은 일들을 ‘아, 꿈이 현실이었으면 좋았을 텐데.’하고 슬퍼하는 것이 아니라, ‘내게 이런 일이 잠깐이지만 일어났었네!’라고 긍정하게 되었달까. 그러니까 한 마디로 나는 이 세상을 날아도 보고, 우주도 가보고, 열정적인 사랑도 해본 그런 사람인 것이다. 그리고 꿈에서 깨어난 나도 지금 이 순간을 꿈처럼 살아내면 되는 것이다.


매 순간을 꿈인 것처럼, 매 꿈을 현실인 것처럼, 그리고 그것의 의미를 이해하는 사람으로서 살아가고자 오늘도 노력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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