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전국을 휩쓸었던 '향수, 어느 살인자의 이야기'라는 책이 있다. 새하얀 드레스를 입은 붉은 머리의 여자가 쓰러져 있던 표지가 아직도 생생하다. 향기가 너무 갖고 싶었던 향기 없던 소년의 이야기였다. 책의 전반 내용과는 무관하지만, 인생의 첫 끌림을 향기로 느꼈던 소년을 보며 처음으로 '향기'란 이런 것이구나 깨닫게 되었다.
계절에도 향기가 있다. 여름 향기, 겨울 향기는 특히나 향수/기억을 자극한다. 호주에서 겨울 향기가 없는 크리스마스 시즌을 경험한 적이 있는데, 이게 크리스마스 일리 없다고 생각했다. 한국 겨울의 그 특유의 차갑고 건조한 공기를 들이마시면 어떤 향기로 그 기억이 인식되는데, 그 향기는 내게 크리스마스의 트리 같은 존재이기 때문이다.
한국으로 돌아가는 지금은 호주의 공기를 담아 가고 싶다. 특유의 계절 냄새는 물론이요, 커피 냄새, 싸구려 섬유 유연제 냄새, 어느 집을 가도 나는 엇비슷한 캔들 냄새, 특유의 주택 냄새. 아 참, 겨울 바닷가 냄새도.
가끔 일하다가 힘들 때 이런 냄새들을 향수처럼 챱챱 뿌리면 지금 이 행복한 순간들이 몽글몽글 피어오를까 봐. 일어나기 힘든 날, 호주 새벽 공기 향을 뿌리면 왠지 커피 한 잔 때리러 가는 마음으로 번쩍 기상할 수 있을까 봐. 그래서 이렇게 그리운 향기들을 담아 한국으로 가져가고 싶다.
공기와 향기는 세관에도 안 걸릴 텐데!
좁(향)은 갓 지은 밥의 향기, 혹은 밥을 입에 물었을 때의 그 향기에서 나온 단어이다. 얼마나 달고 향기로울까. 밥의 향기는 단순 후각을 넘어서 생존의 문제이다. 그 향이 향기로운 것은 내 몸을 먹여 살릴 물질임을 나의 무의식이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 달고 구수한 향기는 나의 생존을 보장한다. 인간은 예로부터 향기로 위독한 음식과 그렇지 않은 음식을 판별하고는 하지 않았는가.
그래서 이 향기들을 더 담아 가고 싶은 건지도 모르겠다. 삶에 치여 말라가는 와중에 그 향기들을 맡으면 생생하게 살아있던 그 순간이 떠오를 것 같아서. 나를 다시 살려낼 것 같아서.
책 향수로 다시 되돌아가 보자면, 주인공 그루누이는 향기가 없다. 체취가 없다. 그래서 실은 아무도 그의 존재를 잘 인식하지 못하고, 혹은 부정적으로 인식하기까지 한다. 그런 그가 추구했던 향기들은 생각해 보니 다 '사람'에게서 나던 향기였다.(책을 읽은 지가 15년도 더 되어서 부정확할 수도 있다.) 결국엔 인간답게 살고 싶었던 그 마음에 그도 향기를 계속해서 담아나갔던 것이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