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본가에는 제법 큰 고양이 박만식이 살고 있다. 꼬리까지 하면 75cm는 족히 되는 녀석이고, 고양이라 몸이 쭉쭉 늘어나서 일어서면 아일랜드 식탁에 있는 음식도 뺏어갈 수 있다. 예전에 한 번 실수로 문을 열어둔 날 이 녀석이 길거리로 나가 다른 고양이들 옆에 섰는데 글쎄 덩치만 봐서는 거의 황제였다. 표범무늬를 가지고 있는데 저렇게 맹수 같은 녀석이 세상 맑은 눈으로 날 보고 있으면 진짜 너무 귀여워서 왕 물어주고 싶다.
공식적으로 우리 집 넷째이자 막내 호칭을 가지고 있는 그 녀석은 아무도 부여하지 않았지만 스스로 ‘보디가드’ 역할을 도맡아 하고 있다. 이 네 발의 보디가드가 할 일이 참 많다. 아침이 되면 일층부터 이층까지 순회하며 자는 사람들을 한 번씩 확인한다. 예전에는 울어가며 깨우더니, 이젠 깨우지는 않고 그냥 한 번 쓱 보고 살아있구나 하고 돌아간다. 슬슬 사람들이 깨서 집안 환기를 하기 시작하면 이제부터는 바깥세상 확인을 해야 한다. 우리 집은 조그마한 마당이 있는 집이라 길고양이들이 들르기 때문에 박만식은 창문을 열면 조금 긴장을 한다. 그러나 정말 미안하지만 인간은 환기가 필요하기 때문에 그나마 박만식이 편해하는 시간 정도로 합의를 봐서 환기를 진행하고는 한다. 거실 창문을 열면 꼬리를 바짝 내리고 살짝 커져서는 창문 앞을 서성거린다. 그러다가 부엌 창문을 열면 거기로도 가서 한 번 두리번두리번 하거나 앉아있어야 직성이 풀린다. 이층 창문을 열어놓으면 이 정도 반응은 아닌데, 가끔 일층 창문에서 고양이를 발견한 후에 그 고양이가 2층 창문 방향으로 갈 때면 어떻게 그걸 아는지 그 고양이의 동선에 맞춰 있는 창문을 다 찾아가서 확인을 한다. 고양이가 좀 심하게 왔다 갔다 하는 날에는 창틀에 오줌을 곧잘 싸다 보니 우리 집 거실 창틀은 늘 청소로 반짝반짝하다.
박만식은 우리 집까지 오기 전에 두 가정을 거쳤는데, 마지막 가정의 스토리는 조금 들었다. 다묘 가정이었던 그곳에서 박만식은 스스로 영역을 지키느라 다른 고양이들과 다툼이 있었고, 유별나다고 판단되어 결국 대구 우리 집까지 오게 된 것이다. 처음 왔을 때는 장이 안 좋은지 설사도 많이 했다. 유산균도 먹이고 좋은 사료도 먹이고 걱정도 했고 기도도 했고. 많은 사랑으로 이 녀석은 이제 우리를 자신의 가족으로 받아들인 듯하다.
박만식은 말이 많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하고 싶은 말마다 톤이 다 다르다. 깨울 때는 약간 고음의 공명이 있고, 놀아달라거나 츄르 요청 때는 발톱 싹 넣은 앞발로 내 볼을 건들며 세상 가느다란 목소리로 외친다. ‘야-옹-’. 아빠가 귀찮게 하거나 청소기를 돌리면 꼬리를 삭 낮추고 약간 낮은 목소리로 또렷하게 야옹을 발사한다. 귀여운 녀석. 하고 싶은 말이 많은 녀석이다. 지금도 심심한지 우다다 한 번 하고서는 나를 툭 건들며 ‘얄ㄹㄹ옹-’이라며 놀아달라고 말하고는 다시 우다다 하러 달려간다.
고양이 이야기를 하려면 책 1권도 모자랄 것 같아 슬슬 마무리해보려 하는데, 마지막으로 한 마디를 얹자면 우리 박만식은 똥 눌 때가 진짜 귀엽다. 가끔 일어서서 볼 일을 볼 때면 정말 근엄한 표정으로 찡긋하고 있다.
아, 귀엽다 박만식. 귀엽다 고양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