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 후 1년은 내 생에 가장 길고 풍요로웠던 기간이라 1편으로는 완 성될 것 같지 않아 고민하다 넘버를 붙여 보았다. 풍요는 단순 긍정만 포함하는 것이 아니다. 비가 오고, 때로는 작열하는 태양을 견디는 그 모든 순간이 풍요를 구성하는 것이다. 퇴사를 왜 했는지부터 시작해 보자면 실은 여러 이유가 있었다. 업무 역량을 늘리기 위해 영어를 배 워야겠다는 생각도 있었고, 새로이 도전해보고 싶은 일도 있었다. 그 러나 무엇보다도 이 모든 것을 생각하고 실천 가능하게 했던 것은 '못 해 먹겠다.'라는 생각이었다. 좋은 팀이었다고 말할 수 있겠지만, 일 을 하는 과정에서 겪었던 두려움에 가까운 기억들은 약간의 우울증 과 공황을 내게 투척했다. 어느 순간부터 집에만 오면 매일같이 눈물 이 났고 모든 것을 그만두지 않으면 살 수가 없을 것 같았다. 회사에 서 부장님이 내 이름을 부르면 심장이 너무 쿵쾅쿵쾅 뛰어서 심호흡 을 크게 해야 했다. 속으로는 달달 떨리고 현기증이 났지만 또 아무렇 지 않은 척 스스로를 세뇌하며 '부르셨어요?' 하며 가던 나였다. 이 맘 때에 대해선 더 이상 이야기 하지는 않겠지만, 어쨌든 난 시드니를 자발적으로 간 것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가지 않고서는 더 이상 버 텨낼 수가 없었다.
피한 곳에는 낙원이 없다고 누군가 말했지만, 내게 그곳은 반년 간은 천국이었다. 나이가 들며 일하며 배우게 되는 것 이외에는 관심을 두 지 않았는데, 친구들과 함께 모여 영어를 배웠다. 하나의 언어를 배운 다는 건 새로운 문화를 배우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것을 깨달으며 영 어를 배우는 것은 점점 더 즐거워졌다. 악센트와 단어에도 그 국민의 정서가 가득 녹아있었다. 호주 특유의 그 투박한 시골 아재의 말투와,
'Chuck a sickie(병가 던지기라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말이다.)'와 같은 줄임말은 호주라는 큰 국가의 정서를 언어로 압축해서 보여주 는 듯했다.
에콰도르 출신 파비오와 폴란드 출신 베티는 나의 가장 좋은 어학원 친구였다. 친구가 되는 데 가장 큰 요소는 나이와 약간의 소외감이었 다. 셋 다 나이가 비슷했고, 우리 반에서 각 출신 국가의 유일한 사람 이었다. 덕분에 어학원에서 난 한국어 가르쳐줄 때를 제외하고선 한 국어를 한 번도 쓰지 않고 졸업할 수 있었다. 우리는 성격이 참 달랐 다. 파비오는 영어도 잘 못 하고 발음도 좋지 않은데도 늘 당당했고 자신은 더 이상 배울 필요가 없다고 느껴진다 하였다. 베티는 매우 솔 직해서, 출신 지역에서 기인한 화법이라 하였다, 이런 파비오에게 직 설적으로 넌 영어를 못 하니까 경각심을 가지고 배워야 한다고 말했 다. 나는 그런 파비오와 베티의 억양을 둘 다 못 알아들어서 이해하기 까지 장장 1달 이상이 걸렸다.
어학원을 다니면서 호주에 갔던 소정의 다른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다른 일(프로젝트)도 열심히 하였다. 이게 무슨 일인지는 알 사람은 알 테지만 여러 이유로 잠깐 감춰두겠다. 신나는 일들이었다.
9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