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일이라는 것은 꽤나 즐거운 프로젝트였다. 낯선 땅에서 하나부터 열까지 낯선 과제를 해나가는 것은 그러나 결코 쉽지만은 않았다. 행복했던 것은 이 과정을 함께 해줄 친구가 있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에 대해 나보다 먼저 경험해 보았던 친구였기에 많은 조언도 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이 프로젝트는 굳이 따지자면 성황리에 끝나지는 못 했고, 진행하던 와중에 이게 내 적성이 아니라는 결과에 다달랐다. 이 프로젝트를 통해 얻은 것이 ‘경험’과 다음을 위한 ‘밑거름’이라면, 잃은 것은 그 기간 동안 조금 더 진득하게 시드니를 경험할 시간이었다. 어떤 방식으로든 경험을 얻었으니 된 것이긴 하지만 조금 아쉬운 마음은 있다. 하지만 이 프로젝트를 통해 바라본 시드니는 또 한 편으로는 관광객으로서만은 접할 수 없는 경험이기도 했다. 덕분에 다른 흥미로운 렌즈를 통해 바라볼 수 있었다.
그러다가 워낙 건축과 부동산에 관심이 많은 나인지라 로컬 부동산에서 일할 수 있었다. 아무런 경험도 지식도 없는 나를 데려다가 이것저것 일을 시켜주고 알려주고 밥도 사주셨던 나의 키다리 아저씨 존팍. 호주 부동산도 한국과 마찬가지로 미친 듯이 값이 솟고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기대 인구 상승률이 향후 수십 년간 상승할 것으로 기대되었기에 호주에 집을 산다는 것은 한국처럼 고르고 골라 좋은 입지를 사는 것에 비해 상당히 쉬운 것으로 여겨진다. 또한 호주의 집들은 ‘사고 싶은 집 = 살고 싶은 집’인 경우가 많았다. 실은 그게 가장 부러웠다. 서울에서 내가 아무리 열심히 일해서 벌고 살아도 사야 하는 집은 외곽의 적당한 아파트나 혹은 시내의 아주 오래된 구축 아파트 정도였으니까. 한국인이 가구와 Interior 이렇게 관심이 많아진 것은 노력해도 Exterior를 바꿀 수는 없기 때문 아닐까.
집 하니 생각나는 것은 내가 살았던 집은 다소 마음에 들지는 않았다. 무엇보다도 카펫 바닥은 끝까지 적응이 안 되었다. 그러나 트레인 한 정거장 거리에 사는 조금 전 말했던 친구의 집은 누워있기에 딱 좋은 집이었다. 우리는 자잘한 놀거리/일거리들을 찾아 열심히 하다가도 시원한 마룻바닥에 누워 재잘재잘 떠들고는 했다. 진한 브라운 색상의 마룻바닥은 호주의 따뜻한 햇살과 참 잘 어울렸다. 영양분 가득한 토양 같은 바닥이었다. 나도 그 바닥에서 얼마나 많은 에너지를 얻었는지 모른다.
여하튼 난 그 로컬 부동산에서 실은 향후 몇 년간 일을 하며 호주에서 터를 잡아갈 예정이었다. 살면서 처음으로 인생의 방향키를 내가 잡았다고 생각했다. 살면서 처음으로 아무런 걱정도 부담도 없이 내가 온전히 내 삶을 경험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 판타지 같은 일이라 아직도 친구에게 그 말을 하던 밤이 생각난다. 바람 살랑이던 날에 처음으로 느낀 그 삶에 대한 자유로움. 두 번 다시 그 자유로움을 가질 수 있을까?
그 자유로움이 현재 진행형이 아닌 것은 2023년도 겨울 한국행 때문이었다. 다음 화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