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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나팍크 May 20. 2024

10호. 퇴사 후 1년을 되돌아보다 (3)

친구들과 함께 모여 보드게임을 진하게 즐기고, 서로 연말 한국 여행을 떠났다. 이번 귀국행의 가장 큰 목표는 부모님께 호주에 계속 살고자 한다고 설득 아닌 설득을 하는 것이었다. 전화로 이미 은근한 의중을 내비쳤더니 아빠는 호적을 파라고 그런 딸은 필요 없다고 노발대발이셨고, 엄마는 응원하지만 슬퍼하셨다. 여하튼 난 한국으로 돌아갔고 엄마에게 호주 부동산에서 일하며 좀 더 지내고 싶다고 말을 했다. 아빠에게는 말도 못 꺼냈지만, 난 아빠가 이미 알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집은 살벌했지만, 한 편으로는 서로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게 참 많이 노력했다. 얇디얇은 빙판 위를 걷는 그 기분.


친구들을 만났고, 친구들에게도 호주 부동산에서 일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런데 참 이상했다. 보통 나의 결정에 크게 후회하거나 의문을 가지는 편이 아닌데 말을 하면 할수록 이 결정에 자신이 없어지는 것이다. 종국에는 이런 생각까지 들었다. ‘아니, 나 갑자기 뭐에 씌어서 부동산 세일즈를 한다고 한 거지…?’ 이 흔들리는 마음을 붙잡기 위해 셀링 선셋을 계속 봤다. 그래, 이것도 정말 재밌는 일일 거야. 그런데 볼 수록 자신감은 더 없어졌다.


엄마와 눈물 나는 이별을 하고, 난 이제 당분간은 호주에 살겠다며 한국을 떠나왔다. 엄마에게 자주 올 것을 약속하고, 미안하다며 툭 치면 울던 시기였다. 그리고 정말 펑펑 울면서 호주에 도착했고, 남자친구와 분위기 좋은 레스토랑에서 밥을 먹었다. 그에게 한국에서의 일과 내 기분을 이야기하자마자, 그러니까 호주로 돌아온 그 첫날밤 나는 알게 되었다.


아, 이거 내 길 아니구나.


참 절망적이었다. 성공했으면 했던 프로젝트도 실패하고, 내 길인줄 알았던 그 길도 내 것이 아니었고. 그러나 어쨌든 2024년도에는 더 많은 경험을 쌓고 동시에 외화를 벌어 외화를 쓰는 것이 목표였기에 부동산에서 계속 일도 했고 경험도 쌓았다. 채스우드 지점을 새로 오픈하던 시기여서 나 혼자만 오피스에 있는 날도 많았다. 그러다 보니 마음이 더더욱 힘들었고, 어느 날 무너지는 마음을 붙잡으며 내가 가장 신뢰하던 목사님께 전화를 했다. 그분은 확신의 T 셨다.


‘목사님, 저는 여기서 부동산 매니지먼트/세일즈 하면서 행복하게 살려고 했는데, 정신 차려 보니 뭐에 씐 듯 한 결정인 것만 같아요.’

‘그래, 한나. 왜인지 그 일은 한나에게 어울려 보이지 않아.’


웬만하면 그냥 그래 그랬구나 했을 텐데 그 목사님은 정말 단호했다. 나에게 어울리지 않는다고. 직업에 귀천은 없다. 하지만 ‘나’에게 ‘어울리는’ 일은 있다. 그냥 호주에 적당히 사는 것만을 목표로 내게 어울리지 않는 어떤 직업을 선택했었던 것이었구나. 그제야 깨달았다. 그리고 이제 진짜 정말 내 지난 1년 가장 큰 고민이 시작되었다. 내 인생 첫 사춘기였다.


‘나, 그래서 이제 뭐 하고 살아?’


마지막 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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