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꿈의 격차 09화

두번째 인연, 드디어 대기업에서 일할 기회를 갖다

by 서지영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했던가? 이것도 아니면 평소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해서 살아왔던 결과였는지, 그마저도 아니면 그냥 이제 모든 불운이 사라지고 행운만 찾아오려는 것인지.

직장생활을 하는 내내 순탄했던 적이 없었다. 첫번째와 두번째 직장에서는 해고를 당했고 이후 기나긴 실업 상태를 겪어야 했다. 요즈음 취업 때문에 대학교 4학년이되면 의도적으로 휴학을 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대학생뿐만 아니라 어려워진 경제 상황으로 대량의 실업 사태가 발생하면서 누구나 할 것 없이 힘든 상황이다. 나는 실업상태가 얼마나 힘들지 잘 알고 있다. 2년 넘는 기간 동안 직장을 구할 수 없었을 때, 나 혼자만의 삶이었다면 살아가는 것을 포기했을 것이다. 수입이 없기 때문에 경제적으로 힘들었고, 주위에서 나를 바라보는 시선도 참기 힘들었다. 어머니는 힘든 청소일로 번 돈의 일부를 용돈으로 주시면서 힘내라고 말씀하셨다. 언젠가는 잘 되겠지, 그렇게 집에만 있지 말고 여행도 좀 다니라는 말이 고맙기 보다 가슴이 아팠다. 늘 집에서 축 쳐져 있었던 내가 보기 싫으셨던 것이다. 무엇보다 실업은 마지막 남은 희망과 자존감마저 쓸어버리는 신비한 능력을 가졌다. 또 다시 취업에 성공한다 해도 잘해낼 것 같지 않아서 불안했고, 영원히 취업이 안될 것 같아 불안했다. 이력서를 넣을 때에는 ‘이번에는 되겠지’라는 희망으로 시작해서 불합격 메일에 또 다시 좌절로 끝나는 과정을 100번은 더 반복했던 것 같다. 영원히 끝날 것 같지 않은 실업상태는 2년이 조금 넘어서야 끝났다. 그래서 직장생활을 하는 내내 최선을 다하지 않았던 적이 없다. 나의 최선이 때로는 다른 사람들의 기대에 미치지 못했거나 과하게 넘치는 경우도 있었지만, 나의 모든 에너지를 쏟아 부으면서 일해왔다. 그래서인지 일하면서 주위 동료 및 관계자분들에게서 좋은 평가를 받아왔다.

그 중에서 지금까지 나와 인연을 이어오고 있는 분이 있다. 그때당시 나는 벤더의 파트너사에서 일하고 있었다. 엔지니어에서 프리세일즈로 역할이 변경되었기 때문에 새로운 업무를 잘 해낼 수 있는 방법을 찾기에 바빴다. 하루하루가 전쟁 같았고 시행착오로 좌절의 나날들이었다. 단시간내에 성과를 보여주고 싶은 마음에 나와 비슷한 일을 하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서 그들의 경험을 듣는다면 도움이 될 것 같았다. 같은 회사에서는 나와 같은 일을 하고 있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벤더에 눈을 돌렸다. 아무리 상황이 다급하더라도 일면식도 없는 사람을 붙들고 ‘당신의 경험을 말해줄 수 있나요?’라고 물어볼 수는 없었기 때문에, 가장 먼저 한번이라도 같이 일을 했던 사람들에게 메일이나 문자로 상황 설명을 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친절하게도 나의 상황을 이해하고 격려와 함께 조언을 잊지 않았다. 그때 나에게 가장 많은 격려를 해 주셨던 분이 지금까지 나와 연락을 주고받는 분이다. 그리고 이 분으로 인해 나는 인생의 두번째 점프업을 할 수 있었다. 실질적으로 지금의 내가 있도록 도와 주신 분이기도 하다.

지금의 멘토가 되어 주신 분은 업무로 만났던 것은 아니다. 자주 함께 일했던 분의 소개로 알게 되었지만 나를 유독 잘 챙겨 주셨고 나도 잘 따랐기 때문에 지금까지 연락하면서 지내고 있다. 멘토님과 내가 코드가 잘 맞았던 이유는 삶에서 뿜어져 나오는 열정과 에너지이다. 그동안 어느 누구 하나 먼저 찾아와 의견을 구하는 이가 없었을 것이다. 나 역시 17년 이상 사회생활을 하면서 먼저 다가와 진로를 상담하거나 업무관련한 의견을 묻는 사람이 없었다. 게다가 내가 벤더에 의견을 구하러 다닐 때에는 신입사원도 아니었다. 그러니 멘토님은 내가 열정이 넘치는 사람으로 생각했을 수도 있다. 나는 그것을 열정이라고 표현하기 보다는 ‘효율적인 적극성’이라고 말하고 싶다. 이미 나와 같은 시행착오를 겪어온 사람들의 의견을 구하면 빠르고 효율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일인데 시행착오를 겪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그래서 역사를 배우는 것이 중요하다. 한 사람의 인생에서, 한 나라의 역사에서 우리는 많은 것들을 배울 수 있다. 에드워드 카(Edward Hallett Carr) 역사학자가 쓴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책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역사에서 배운다는 것은 결코 단순한 일방적인 과정이 아니다. 과거에 비추어 현재를 배운다는 것은 또한 현재에 비추어 과거를 배운다는 것을 의미한다. 역사의 기능은 과거와 현재의 상호관계를 통해서 그 두 가지 모두에 대한 보다 깊은 이해를 진전시키는 데에 있다.


즉, 과거를 통해서 현재를 이해한다면 좀 더 현명하게 일을 처리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나 역시 공감한다. 거창하게 역사까지 거론하지 않아도 좋다. 개개인의 과거를 통해서도 우리는 많은 것들을 배울 수 있다. 어떤 한 사람의 모든 과거 중에서 나에게 필요한 정보만 취할 수 있다면 인생이 얼마나 풍요로울까? 하지만 그런 기회를 찾는 것은 쉽지 않다. 어렵게 얻은 경험을 쉽게 내어 주지도 않을뿐더러 다양한 경험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찾는 것도 쉽지 않다.

멘토님은 종종 이런 얘기를 한다. ‘우리는 피가 같다고, 붉은색으로.’ 그만큼 모든 일에 열정을 갖고 임하는 태도가 비슷하다는 뜻일 것이다. 어느날 멘토님이 전화를 주셨다. 좋은 회사로 이직할 기회가 생겼다며 이력서를 작성해서 보내 달라는 것이었다. 나중에 알았지만, 대기업에서 운영자를 뽑고 있는데 적당한 사람을 못 찾고 있다며 좋은 사람이 있으면 추천해달라는 요청을 받았던 것이다. 인재 추천 요청을 받고 바로 내 생각이 났다고 하셨다. 결국 벤더 추천으로 대기업에 이력서가 전달되었다.

그동안 열심히 일해왔다고는 하지만 나는 다른 사람들보다 특출 나지 않았다. 또 그동안 중소기업만 전전해왔고 의도하지 않게 이직이 잦은 편이었다. 그렇다고 학력이 좋은 편도 아니었기 때문에 대기업에 취업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일반적으로 현재보다 조금이라도 규모가 큰 회사에서 높은 연봉을 받기 위해 이직한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녹록하지 않다. 대부분 대기업에서 사회 생활을 시작한 사람들은 회사를 옮길 때에도 유사한 대기업으로 이동 하지만, 중소기업에서 사회 생활을 시작한 사람은 비슷한 규모로 이직하게 된다. 마치 물과 기름이 섞이지 않는 것처럼 우리 사회가 양분화 되어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대기업에서 절대 아래로 내려오지 않는 하나의 무리와, 중소기업에서 절대 위로 올라갈 수 없는 또 다른 무리가 절대 섞여 살 수 없을 것 같은 세상이다. 나 역시 대기업에서 일해보고 싶다는 동경은 있었지만 그것이 가능할 것이라고는 꿈에서조차 생각해보지 않았다. 내가 가진 조건이 대기업에서 요구하는 입사 조건과 매칭되는 것이 단 하나도 없었다. 무엇보다 대기업에서 일한다는 것 자체가 나와는 먼 다른 세상의 일 같았다.

너무 속물 같아 보여도 어쩔 수 없다. 성공하고 싶고 출세하고 싶은 것은 누구나 가지고 있는 욕구이다. 자아실현 욕구라 해도 좋고 허영심이라 해도 좋다. 어떤 식의 이름을 붙여도 좋은데 그때 도 지금도 나는 지금보다 더 좋은 곳에서 일하고 싶다. 좀 더 큰 규모의 회사에서 일해야 연봉이 오르고 복지가 좋은 것이 현실이다. 좀 더 솔직하게 말하자면 그 연봉이라는 것이 적으면 20%에서 많으면 40%까지 차이가 나기 때문에 가능하면 대기업에서 일하고 싶었다. 그리고 기회가 찾아왔을 때 놓치고 싶지 않았다. 정성껏 이력서를 작성해서 멘토님께 전달하였다. 멘토님은 몇일 후에 다시 연락을 주셨고 공식 사이트를 통해 다시 이력서를 제출하라고 하셨다. 그동안의 경력을 훑어가면서 정성스럽게 이력서를 작성하고 제출했다. 살면서 이렇게까지 이력서에 공들였던 적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정성스럽게 작성했다. 초조한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는데 일주일 후에 면접 보자는 전화를 받았다. 약 한시간동안 진행되었던 면접은 대부분 기술적인 질문들이었다. 다행히 그동안 업무하면서 경험하거나 공부했던 내용들로 어렵지 않게 답변할 수 있었다. 1차 실무 면접은 무난히 통과했지만 2차 임원면접이 문제였다. 임원면접에서는 프리젠테이션과 질의 응답으로 진행된다고 했다. 1차 면접 결과를 전달해주셨던 분은 나와 함께 일할, 면접에서도 만났던 파트장님이셨다. 내가 앞으로 보게 될 2차 면접이 걱정된다며 주의해야할 사항들을 알려주셨다. 나중에 합격해서 파트장님과 함께 일하는 내내 유쾌하고 즐거웠다. 외모와는 다르게 섬세하시고 팀원들을 잘 배려해주시는 분이셨다. 그분의 성향상 합격하길 바랬던 마음에 미리 전화를 주셔서 이것 저것 주의할 내용들을 알려주셨던 것이다. 임원면접에서는 대체로 그동안 내가 해왔던 일들을 토대로 앞으로 잘 적응해 나갈 수 있을지를 본다. 적응력 관련해서는 과거 경험이나 생각들을 솔직하게 얘기하면 되기 때문에 대부분 프리젠테이션을 준비하는데 일주일의 시간을 보냈다. 먼저 파워포인트 문서를 작성하고 멘토님께 검토를 부탁드렸다. 문서를 보시고는 만나서 얘기하는 것이 좋겠다고 하시면서 시간과 장소를 말씀해주셨다. 그날 저녁 멘토님은 프리젠테이션의 전반적인 방향성과 부각되어야 할 내용들을 지적해주셨으며, 프리젠테이션 발표에 대한 속도, 톤 등을 짚어 주셨다.

나는 프리젠테이션을 할 때에는 긴장을 많이하는 편이다. 그것이 학교에서 과제 발표를 위한 것이건, 면접을 위한 것이건, 업무에 필요한 프리젠테이션이건 중요하지 않다. 동일한 긴장감의 크기로 언제나, 항상 불안하고 초조하다. 프리젠테이션에서 긴장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은 상황들을 마주할 것 같은 막연한 두려움 때문이라고 한다.

•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한 공포로서 준비하지 못했던 부분에 대한 질문을 받았을 때 답변을 하지 못할 것 같은 두려움

• 두려움을 맞설 것인지 도망칠 것인지의 선택 사이에서 발생하는 아드레날린의 분출에 대한 결과물

• 자기 파괴에 대한 두려움으로 프리젠테이션을 망쳤을 때 발생할 상황들에 대한 공포


정리하면 결국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다. 또 다른 말로 표현하면 발생하지도 않은 상황에 대해 지레 겁먹고 걱정부터 하느라 긴장하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긴장감을 떨쳐낼 수 없다. 사람들 앞에서 얼마나 많은 강의를 했는지 셀 수조차 없지만 조금도 상황이 좋아지지 않고 여전히 두렵기만하다. 가장 긴장감이 고조되는 때는 발표를 시작하기 전이다. 막상 프리젠테이션을 시작하면 언제 긴장했냐는 듯이 괜찮아지지만, 발표 2~3시간 전, 혹은 중요한 발표일 경우에는 하루 전부터 긴장하게 된다. 발표가 끝나면 온몸의 긴장이 한순간에 풀리면서 안 쑤시는 곳이 없다. 거친 운동을 한 후 근육통으로 고생하는 것과 같은 통증이 몸 전체에서 느껴진다.

임원면접 당일 많은 준비를 마쳤던 프리젠테이션은 전혀 문제가 없었다. 또 프리젠테이션 내용들을 궁금해하는 것 같지도 않았다. 그들이 궁금한 것은 오직 내가 그들의 조직 문화에 적합한 사람인지, 잘 적응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을 해결하는 것뿐이었다. 집요한 질문이 1시간 넘게 계속되었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압박 면접으로 나를 합격시키기 위한 것인지, 떨어트리기 위해 질문하는 것인지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특히 면접관들이 공격하는 포인트는 한가지였다. 그동안 이직이 너무 잦았기 때문에 직원으로 뽑는다 해도 얼마 안 있어 또 다시 이직을 할 것 같다는 것이었다. 회사가 어려워진 상태에서 어쩔 수 없이 이직했고, 이후 첫번째와 두번째 회사는 실제로 폐업을 했다고 설명을 했음에도 공격은 계속되었다.

나는 요즈음 젊은 친구들이 오랜 실업 상태에도 불구하고 대기업이나 공기업을 고집하는 것을 충분히 이해한다. 대기업이나 공기업은 중소기업과 비교하여 폐업할 가능성이 적다. 중소기업의 경우 사업이 조금이라도 어려워지면 문을 닫는 상황까지 이어질 수 있으며, 직원들은 좋던 싫던 이직이라는 것을 선택해야한다. 실제로 선택이라는 것이 있지도 않다. 대기업이 복지 측면에서 훌륭하기도 하지만 안정적으로 오래 다닐 수 있다는 강점이 제일 크다고 할 수 있다. 나는 중소기업과 대기업의 차이는 연봉뿐이라고 생각했다. 역시 대기업에서 일해본 경험이 없었기 때문에 중소기업에서 일하는 것 자체에 대한 큰 불만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그날 면접을 보는데 나의 의지와 상관없는 이직을 문제 삼는 면접관들을 통해 알게 되었다. 상황이야 어쨌든 결과론적으로 나는 이직이 잦았다. 만약 나 역시 처음부터 대기업에서 사회 생활을 시작했다면 이직이 그렇게까지 많지는 않았을 것이다. 결국 내가 공격받는 상황 역시 하나의 문제로 귀결되었던 것이다. ‘사회 생활을 어느 규모의 회사에서 시작하느냐’는 ‘어떤 학교를 졸업했느냐’의 문제로 거슬러 올라가고 결국 ‘학창시절 얼마나 열심히 공부했느냐’의 문제로 귀결되었던 것이다. 10년 가까운 기간 동안 직장 생활을 했고 내 업무 관련해서는 숙련된 기술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학력에 대한 꼬리표, 학창시절을 어떻게 보냈느냐에 대한 눈에 보이지 않는 꼬리표가 매 순간 내 인생의 발목을 잡고 있었던 것이다.

과거는 단지 과거에서 끝나도 되지 않을까? 왜 매 순간 가슴 아픈 기억을 끄집어내서 그때의 나와 사람들을 죽도록 미워하도록 만드는 것일까? 아직도 극복하지 못한 내 문제일까? 면접보는 내내 어쩔 수 없이 이직했던 상황에 대해 공격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이렇게까지 몰아붙일 필요가 있었을까 싶었다. 결국 나는 계약직으로 입사하게 되었다. 1년 계약직 이후 성과에 따라 정규직으로 전환이 가능하다는 조건이었다. 최선을 다해 상황 설명을 했음에도 내가 미덥지 못했었던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입사를 결정했다. 멘토님과 상의했을 때에도 역시 동일한 의견을 주셨다. 그동안 나의 경력들이 모두 중소기업이었던 점을 고려한다면 대기업에서 일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고, 내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정규직으로 전환될 수 있기 때문에 일단 입사하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을 주셨다. 우여곡절 끝에 입사한 첫날을 잊을 수 없다. 드디어 나도 대기업에서 일한다는 즐거움과 설레임 뿐이었다. 넓직한 사무실에서 분주하게 일하고 있는 사람들 틈에 섞여 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다. 내가 대기업에 다닌다는 자부심은 퇴사하는 마지막 날까지 이어졌다. 대기업이라고해서 사람들이 더 친절하거나 문화가 혁신적이었던 것은 아니었다. 직장인들의 삶이란 기계의 부품과도 같은 것이다. 모든 일에서 전체를 볼 수 없으며,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면 되는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는 중소기업이나 대기업이나 마찬가지이다. 즉, 내가 하는 일은 변화가 없었지만 회사가 주는 자부심은 달랐다. 회사 자체가 내가 될 수 없지만 내 뒤에서 내가 어떤 사람인지 설명해주는 좋은 도구가 될 수 있었다.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내가 소속된 회사를 말할때마다 자부심이 느껴졌고, 회사에 대해 이런 저런 설명을 하지 않아도 되었으니 좋았다. 이전까지 만해도 ‘그냥 작은 중소기업입니다. 주로 소프트웨어 딜리버리를 하는 회사이고 저는 여기서 엔지니어로 일하고 있습니다’라는 자기소개가 ‘○○에서 운영자로 일하고 있습니다’라고 짧게 끝내도 모든 것이 설명되었다. 오히려 더 많은 것들이 설명되었다. 그동안 내가 어떻게 살아왔는지가 기업명 하나로 모든 것이 설명되는 것 같았다.

하루는 외근 가야할 일이 있었다. 대부분 사원증은 회사 내에서만 사용하며 외근이나 퇴근때에는 착용했던 사원증을 제거한다. 하지만 외근 중에도 사원증을 제거하고 싶지 않았다. 자랑스러웠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내가 이러한 기업에 소속되어 있다는 것을 한번이라도 더 봐주기를 원했다. 지금 생각해도 유치하기 짝이 없는 행동이었지만, 그때는 하루하루가 설레었었고, 사원증이 나의 과거의 현재와 미래를 말해주었던 것 같아 자랑스러웠다.

1년후에 정규직 전환심사가 진행되었다. 또다시 임원분들 앞에서 프리젠테이션을 하고 조직에서의 적합성을 평가받았다. 전환심사 때에는 1년간의 업적에 대한 프리젝테이션을 하였고, 조직의 적합성 평가 부분에서는 파트장님과 팀장님이 좋게 평가해주셔서 입사 때만큼의 압박 면접은 진행되지 않았다. 계약직 1년동안에도 충분히 회사에 대한 자부심은 있었지만 마음이 편했던 것은 아니었다. 계약직이라는 단어만 언급되어도 주눅들었었다. 1년 후에 또다시 평가를 받아야 한다는 것도 부담스러웠다. 나의 전환 심사 때문인지 파트장님은 나에게 더 많은 실적을 만들어주려고 애쓰셨다. 지금도 고마운 마음이 크지만 생각만큼 자주 연락드리지는 못하고 있다. 성격 자체가 살갑거나 사람들을 잘 챙기지 못하기 때문이지 절대 그 고마운 마음의 크기가 작아져서가 아니다. 반쪽짜리 직원에서 완벽한 직원이 된 이후에는 자부심이 더 커졌다. 업무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한 명, 두 명 친해진 사람들도 늘어났고 업무도 익숙해졌다. 어느 조직이나 그렇지만 업무 분장이나 사람들 간의 관계가 모두 원만하거나 완벽할 수는 없다. 내가 소속된 팀 역시 크고 작은 불화가 있었지만 서로 간에 의지가 되고 타 팀에 비해 실적이 좋았다. 내게는 좋은 기억으로 가득했던 곳이다.

하지만 가장 좋았던 것은 4년 넘게 몸담았던 회사를 통해 자존감을 회복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오해하지 말아야할 것은 단지 대기업에 다녔다고해서 없던 자존감이 생겼다는 것은 아니다. 이 회사에 다니는 동안 열심히 공부했고 많은 것들을 성취해냈다. 즉, 회사를 통해 얻을 수 있었던 것은 자존감 회복의 작은 불씨였을 뿐이다. 작은 불씨가 활활 타오르게 했던 것은 나의 열정이고 노력이었다. 사람들의 생활 수준에 따라 레벨을 나눠 부르는 ‘수저계급론’이 있다. 총 4가지의 수저로 계급을 나누는데 그 기준은 다음과 같다.


자산의 경우 평생을 모아도 10억을 저축하기 어렵기 때문에 단순히 연봉만 기준으로 이야기를 해야 할 것 같다(물론 대출을 받아 아파트를 구매할 경우 총 자산이 20억은 가뿐히 넘겠지만, 당장 팔아서 순수 자산으로 만들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이기 때문에 자산은 제외로 한다). 연봉을 기준으로 수저계급론을 적용하자면 내가 은수저로서의 삶을 사는 것은 얼마되지 않는다. 하지만 그 시발점이 되었던 회사가 대기업이었음은 부정할 수 없다. 대기업에 다녔던 경험으로 또 다시 유사한(혹은 더 규모가 큰)회사로 이직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회사가 고마운 것은 내가 은수저로서의 삶을 살 수 있도록 발화점이 되어서 아니라 자존감과 자신감 회복의 시발점이 되어줬기 때문이다. 그리고 바로 거기서 나 자신을 찾아가는 여정이 시작되었다.


진정한 나에게로 돌아가는 길에는 인적이 드물다.

자신의 빛을 인식하고 두려움, 의존성, 경쟁심, 스트레스, 망상, 우울 같은 그림자로부터 자신을 분리시키는 길이기 때문이다.

......(중략)

어둠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여행을 시작할 때, 그늘진 길로 되돌아가도록 유혹하는 많은 사람들을 만난다.

......(중략)

이해시켜야 하는 것은 상대방이 아니라 바로 자기 자신이다.


토니 험프리스의 자존감 심리학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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