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프리세일즈로 일하고 있을 때였다. 그 전까지 엔지니어로 일해왔기 때문에 나의 동료는 대부분 엔지니어이다. 어느날 엔지니어 후배와 선배가 대화하는 것을 듣게 되었다. 늘 자격증 취득에 관심이 많았던 이들은 ‘기술사’라는 자격증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앞으로의 커리어와 노후 준비를 위해 기술사 자격증을 취득하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그 순간 나 역시 기술사라는 자격증 취득에 도전해보아야 겠다고 생각했다. 뿐만 아니라 이 당시 내 나이는 30대 후반이었다. 37살인가 38살이었고 40살이 가까워 온다는 것에 대해 상당한 불안감을 느끼고 있었다. 안타깝게도 인생 자체가 불안감 그 자체인 듯하다.
40이라는 숫자의 의미는 상당히 많은 것을 내포하고 있다. 공자는 다음과 같이 40살의 의미를 정의했다.
<吾十有五而志于學, 三十而立, 四十而不惑, 五十而知天命, 六十而耳 順, 七十而從心所欲, 不踰矩.>
40세에는 자신의 주관이 확고하여 판단에 흔들림이 없다는 뜻이다. 과연 그럴까? 현실의 나는 40이 넘었지만 여전히 무엇인가를 선택해야할 때마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 알지 못한다. 예를 들어 40이 넘어 공부를 계속하려고 고민한다면 다음과 같은 고민이 가능할 것이다. (물론 내 고민이다. 그리고 나는 공부를 계속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아직도 모르겠다)
• 공부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은?
• 2~3년이라는 시간과 에너지를 투자할 만한 가치가 있을까?
• 졸업 이후의 삶은 무엇이 달라질 수 있을까?
• 단순히 공부를 위한 공부로만 남는다면, 공부의 의미가 있을까?
누가 이러한 질문에 답할 수 있을까? 현재는 하루하루 살아내는 것만으로도 버겁고, 미래는 예측 불가능하다. 결국 선택을 할 때에는 자신의 가치관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의미에서 공자는 40이면 완전한 가치관 확립으로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를 판단하는데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했던 것 같다. 현명한 공자에게나 어울리는 말이다.
나에게 있어 40은 다른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최근 뉴스 기사에는 40대의 희망퇴직이 높아졌다고 한다. 물론 권고하는 것이지 강제적인 것은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희망퇴직 대상이 50대에서 40대로 낮아졌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기업은 기존 인력을 모두 수용할 필요가 없다는 뜻이며 이를 위해 불필요한 인력을 감축해야 하는데 그 대상이 40대도 포함된다는 것이다. 즉, 회사가 어려운 상황이 되었을 때 언제든지 내가 1순위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불안감을 고조시켰다. 이미 두 차례의 해고 경험이 있던 나는 ‘해고’, ‘명예퇴직’과 같은 단어에 트라우마가 있다. 언제든지 버림받을 수 있겠다는 생각은 실력을 키워야겠다는 생각으로 바뀌었다. 내 실력을 키운다면 회사가 나를 버린다고 하더라도 나를 필요로 하는 또 다른 회사로 옮겨 갈 수 있는 기회가 생길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 실력을 키운다고 또 다른 기회가 생길 것이라는 확신은 없다) 실제로 내 주위에는 수많은 노력을 했음에도 40대 후반에 은퇴한 사람들이 많다. 은퇴 후 개인 사업으로 성공한 사람도 있고, 실패한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 더 이상 직장생활이 힘들다며 그만둔 사람들이었다.
이와 같이 내가 공부를 시작한 이유는 자존심 회복과 40대 이후의 안정된 삶을 보장받기 위해서였다. 그 수단으로 학위가 아닌 자격증을 선택했던 것은 주위의 영향이 컸었다. 엔지니어 후배와 선배는 그 당시 자격증 취득을 위해 많은 것들을 알아보고 있었다. 사실 이들이 기술사라는 자격증을 언급할 때에도 나는 그러한 자격증이 있는지조차 알지 못했다. 그것이 어떤 자격증이며 취득했을 때 어떤 혜택이 있는지 알지 못하였다. 그때 당시 자격증에 대한 리서치 결과는 다음과 같다.
<시험에 대한 설명>
컴퓨터 관련 자격증으로 정보관리기술사와 컴퓨터시스템응용기술사가 있으며 관련부처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이며 시행기관은 한국산업인력공단이다.
<검정 방법>
필기(1차)는 주관식 논술형(매교시당 100분, 총 400분)이고, 실기(2차)는 구술형 면접으로 20분 정도이다.
<자격 조건>
정보처리기사, 종보보안기사 2가지 중 1개를 가지고 4년간의 관련 경력이 있으면 응시할 수 있다.
<시험 과목>
디지털 서비스, IT 경영, 소프트웨어 공학, 데이터베이스, 알고리즘, 통계학, 운영체제, 컴퓨터 구조,네트워크, 정보 보안, 인공지능 및 신기술 등 컴퓨터와 관련된다면 모든 과목이 해당된다.
<시험 시간>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 20분까지이다. 쉬는 시간은 20분이며, 점심시간 1시간을 포함한 전체 시험 시간은 9시간이다.
<합격 기준>
필기는 교시 당 100점 만점으로 4교시 총 400점 만점이다. 합격기준은 필기와 실기에서 각각 100점 만점으로 하여 60점 이상 받아야 한다. 즉, 필기에서는 240점 이상 받으면 합격이다.
<평균 학습 기간>
평균 2년~5년 정도이다. 물론 더 짧거나 길어질 수도 있다.
기술사 시험에 대한 리서치 결과를 종합했을 때 도저히 시작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고작 자격증 취득을 위해 2년~5년이라는 시간을 투자해야 하는 것이 옳은 일일까 싶었다. 하지만 고민은 일주일을 넘기지 않았다. 나는 고민은 가능한 짧게 하고 바로 행동으로 옮기는 편이다. 솔직히 고민이라는 것을 하는지도 모르겠다. 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직접 해봐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으로 바뀐 탓에 고민을 하기 위한 시간을 갖지 않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바로 다음날 자격증 취득을 위해 학원을 등록했다. 기술사 과정은 시험 주기에 맞춰서 개강한다. 개강까지 2주간의 시간이 있었지만 무엇을 준비해야 할지 몰랐다. 아무 생각 없이 참석한 첫날은 악몽과도 같았다. 200분 시험으로 시작되는 첫날 내가 했던 일은 많지 않았다. 답안지는 백지상태였고, 토픽 토론(그룹 스터디)하는 시간에는 사람들이 하는 말을 전혀 알아들을 수 없었다. 첫날의 악몽에 대해 부연 설명을 위해 학원의 패턴을 좀 더 설명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기술사 자격증은 단기간 공부해서 취득하기 어렵다. 짧게는 2년에서 길게는 5년이라는 시간이 걸린다는 말은 수험생들이 그 기간만큼 학원에 등록해야 한다는 것과 같다. 즉, 배운 내용을 배우고 또 배우는 과정이 2년에서 5년간 반복된다는 것이다. 물론 그 사이 새로운 기술들이 발표된다면 새로운 기술들도 함께 학습해야 한다. 꽤 긴 기간동안 같은 내용을 반복적으로 학습함에도 단기간에 합격이 어려운 이유는 기술사 자격증이 논술 시험이기 때문이다. 기술을 암기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알고 있는 기술을 가독성이 좋으면서 논리적으로 기술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뿐만 아니라 암기할 내용이 많기도 하다). 그래서 이 시험은 기획이나 컨설팅 업무를 하는 사람들이 단기간에 합격할 확률이 높다는 얘기를 하기도 한다. 학원에서의 학습 역시 매 강의마다 새로운 내용이 담겨 있는 것이 아니라 배웠던 내용을 배우고 또 배우게 된다. 결국 학원을 등록하는 이유는 기술사의 1차 시험인 쓰기 훈련을 위해서인 것이다.
학원을 등록하고 치렀던 200분 시험에서 나만 유독 백지였다면 다른 사람들은 이미 한 차례 이상 동일한 과정을 반복했다는 것이다. 내가 속했던 반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있었다. 이번 과정이 두번째 인 사람부터 2년 이상 학습을 계속한 사람까지 다양했다. 하지만 이번 과정이 처음인 사람은 나뿐이었다. 200분의 시험이 끝나면 멘토님과 멘토링을 진행하게 되고, 그 시간동안 수강생들끼리 학습을 진행한다(정확히는 기술에 대한 토론이다). 수많은 과목들의 내용을 모두 암기하기에는 우리의 기억력은 한계가 있기 때문에 매일, 매주 반복해서 학습하는 것이다.
첫날 멘토링에서 멘토님은 내게 해줄 말이 많지 않으셨을 것이다. 첫째 어떻게 써야 하는지 알지 못했고, 둘째 답안지를 채울 만한 지식이 없었다. 따라서 멘토님의 멘토링은 다른 사람들의 답안지를 많이 보라는 것이었다. 더 최악이었던 상황은 3주 후에 모의고사가 있다는 것이었다. 모의고사를 보기 전주 멘토님의 당부가 있었다. 절대 지금처럼 백지를 제출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묻는 문제의 답을 쓰지 않아도 좋다. 답을 창작해서 써도 좋지만 매 교시마다 14페이지 중 최소 12페이지를 채우라는 것이었다. 불가능할 것 같았지만 노력해보겠다고 답변했다. 학원에서 치뤄지는 모의고사임에도 불구하고 시험 당일날은 긴장감이 감돈다. 장시간 치뤄야 하는 시험에 대비해 초콜릿을 준비해오거나 비타민 음료를 준비해오는 사람들이 많았다. 20분이라는 짧은 쉬는 시간마다 손에서 교재를 놓지 않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지난 문제를 어떻게 풀었는지 토론하는 사람들까지 다양했다. 나의 경우는 어떤 무리에도 속하지 못했다. 단지 창작의 고통만 있었을 뿐이다. 차주 시험 성적이 공개되었고 예상과 같이 하위권이었다. 내 답안지를 한참을 살펴보신 멘토님이 한마디 던지셨다. ‘약속대로 12페이지 작성한 것은 대단한데 상당히 뻔뻔하네요’. 어떤 내용이라도 쓰라고 해서 썼더니 뻔뻔하다니.
그런데 이후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나의 답안지는 묻는 내용과는 전혀 다른 내용일 수 있지만 절대 백지 상태는 아니었다. 지식이 쌓일수록 답안지의 내용들은 실제 묻는 내용들로 바뀌게 되었지만 그때 당시에는 왜 멘토님이 정답을 쓰는 것보다 답안지를 채우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였었는지 알지 못했었다. 이후 같은 학원에서 동일한 과정을 한번 더 참여하고 다른 학원으로 옮겼다. 합격자가 많지 않았고 참고할 수 있는 자료들이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합격자를 많이 배출한 학원에서는 단기간 내에 합격할 수 있는 노하우를 알려줄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런 노하우 따위는 없었다)
나의 본격적인 공부는 다른 학원으로 옮겨간 이후부터였다. 첫번째 학원에서는 시행착오의 기간이었다. 다양한 공부 방법 중에서 나에게 가장 적합한 방법이 무엇인지 찾는 과정으로 흘려 보낸 시간이었다. 무엇을 공부해야 하는지, 어떻게 답안지를 작성해야 하는지, 암기는 어떤 방식이 효율적인지를 알아내는 과정이었다. 이 모든 것을 알아냈으니 이제 정진하는 일만 남았던 것이다. 이때 내가 선택한 효율적인 학습 방법은 노트였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이패드와 같은 전자기기를 활용하는 암기 방법을 선택하였지만 나와는 잘 맞지 않았다. 기술사 시험은 가독성 있게 답안을 작성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도표나 그림을 잘 활용해야 한다. 하지만 아이패드를 이용할 경우 그림을 채워 넣는 것이 어려웠고 실제로 답안지에 얼마만큼의 크기로 도형을 그려야 적절한지 알지 못한다. 따라서 답안지에 도표나 그림 그리는 연습 차원에서 다음과 같은 노트를 이용한 학습 방법을 선택하였다.
반복 학습하면서 도표나 그림을 위한 새로운 아이디어가 생길 때마다 답안지에 그려보고 그 결과를 노트에 붙여 넣는 과정을 반복하였다. 그 결과 나의 노트는 더덕더덕 붙은 포스트잍과 도표/그림들로 지저분한 상태가 되었다. 또 한권씩 추가된 노트는 결국 14권이 되었다. 노트가 계속 추가된다고 좋은 것만은 아니다. 그만큼 암기해야 할 분량이 많아졌다는 것이므로 부담감만 가중될 뿐이다.
어떤 노트의 어느 위치에 찾고자 하는 내용이 있는지 알 수 있게 될 때까지 2년이 걸렸다. 기술사를 공부했던 2년을 포함하여 현재까지 내 생활에서 ‘여유’, ‘휴가’, ‘건강’ 이러한 단어는 끼어들 자리가 없었다. 실제로 단 하루도 쉬어본 기억이 없다. 특히 2년이라는 시간동안 나 자신은 없었다. 기술사 자격증을 취득한 이후 많은 사람들이 나에게 물었다. 어느 학원이 좋은지, 어떻게 공부하면 되는지 등등에 관해.. 그럴때마다 내 대답은 하나다. 자신을 포기할 수 있으면 시작하고 그렇지 않다면 시작도 하지 말라고. 집안의 경조사, 회식, 프로젝트로 인한 야근 등을 챙겨가면서 공부한다면 학습 기간은 길어질 수밖에 없다. 학습 기간이 길어지면 자신도 그렇지만 가족들이 지칠 수밖에 없다. 그럼 포기하게 되고 또 시간이 흐르면 그동안 공부했던 것이 아까워서 또 다시 시작하고. 합격 때까지 무한 반복되는 과정이다. 나는 이러한 사람들을 많이 봐왔다. 공부하는 2년동안 어떤 사람은 중간에 포기하고, 어떤 사람은 다시 시작하겠다며 돌아왔다.
2년동안 평일은 6시간, 주말은 13시간씩 공부했던 것 같다. 공부를 하고 싶어서 했다기 보다는 공부할 분량이 많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 이렇게까지 공부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경쟁심이었다. 공부를 시작한 처음부터 합격하는 마지막 날까지 나의 학습 메이트가 되어준 분이 있다. 나보다 2년정도 먼저 시작했던 분으로 나의 학습과 합격에 많은 도움을 주셨던 분이다.
어떤 학원을 등록하던 200분 시험으로 시작해서 멘토링으로 마무리되는 과정은 동일하다. 200분시험 역시 약식 시험이기는 하지만 이 역시 시험인지라 모두들 결과에 민감했다. 시험이라는 원인이 있으면 등수라는 결과가 있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내가 경쟁심을 느낀 지점이 여기이다. 나보다 2년 먼저 시작한 선배님은 늘 나보다 점수가 높았다. 당연할 수 밖에 없었다. 2년이라는 시간이 짧았던 것도 아니고 선배는 상당히 성실한 사람이었다. 답안지는 가독성이 뛰어났고 모든 중요한 키워드가 포함되어 있었다. 단 한번이라도 이겼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더 열심히 공부했던것 같다. 죽을힘을 다해 공부했던 하루하루였다. 그런 내가 안타까웠는지 친구는 자격증 공부를 그 정도로 열심히 할꺼면 차라리 공무원 시험을 보라고 할 정도였다. 시험에 합격한 이후 잠깐 후회를 하기도 했다. 2년간 공부해서 얻는 것이 자격증 뿐인데, 차리리 공무원 준비를 했더라면 평생 직장이라는 것을 얻었을텐데. 어쨌든 나는 중간에 경로를 변경하지 않고 자격증 취득에 매진했다.
어느 날은 회사에서 워크샵을 간다는 것이다. 시험이 코앞인데 개인적인 문제로 안 간다고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결국 내가 선택한 것은 처리해야할 업무를 핑계로 독방에서 몰래 공부하는 것이었다. 중간 중간 사람들이 나를 찾으러 들어왔다. 그럴때마다 나는 지금 당장 처리해야할 업무가 있다며 거짓말을 했다. 아마 모두들 내가 공부 때문에 어울리지 않았다는 것을 눈치챘을 것이다. 그날 워크샵에서 내가 그들과 함께 했던 시간은 고작 저녁을 먹었을 때뿐이었으니까. 그런 노력 때문이었는지 결국 나는 학원 모의고사에서 전체 1등을 했다. 결과가 발표되기 전에 멘토님이 1등을 축하한다는 문자를 주셨었다. 나는 당연히 반에서 1등을 했다는 것으로 이해했었다. 하지만 100명이 넘는 전체 인원중에 1등이었던 것이다. 그때 당시 나는 멘토님을 좋아하지 않았다. 멘토링 때마다 답안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멘토님이 때로는 얄밉기까지 했다. 단 한번도 칭찬이라는 것을 해주신 적이 없었다. 1등을 하면서 자신감도 붙었고 학원에서 함께 공부하던 모든 사람들은 당연히 내가 합격할 것이라고 예측했지만 나는 59.94점으로 불합격했다. 안타깝고 억울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다시 도전하는 것뿐이었다. 벚꽃이 한창이었던 날이었는데, 점수를 확인하고 떨어졌다는 사실에 화가났다. 회사에서 나와 사람이 없는 조용한 곳을 찾아 지난 노력들을 생각하면서 많이 울었다. 지나온 노력들이 아까웠고 무엇을 어떻게 더 공부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이미 충분히 모든 열정과 에너지를 다해서 공부해왔던 터라 더 이상 할 수 있는 것이 없을 것 같았다.
그럼에도 인생은 계속된다. 힘들게 마음을 다잡고 다시 6개월간의 공부를 시작하면서 마지막으로 학원을 다시 한번 더 옮겼다. 나를 더 채찍질 해줄 수 있는 학원을 찾아서. 또 다시 동일한 과정을 반복한 후에야 합격할 수 있었다. 결국 내가 본 종목에서 1등이라는 성적으로 합격했다. 하지만 이 시험에서는 등수가 중요하지 않다. 오직 합격과 불합격만 있을 뿐이다. 마지막 합격 발표 전달 떨리고 무서워서 써 놓은 글이 있다. 지금 다시 봐도 소름 끼치는 공포이다.
더 이상 무슨 공부를 해야 할지 모르겠다.
무엇이 부족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미 나에게 남은 마지막 한 방울의 에너지까지 써버린 상태다.
또 다시 불합격일까봐 두렵다.
어떤 공부를 더 할 수 있을까? 가능하기나 할까?
나는 이제 더 이상 내가 무엇을 더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제발 끝이기를 바라본다.
나는 진짜 모르겠다. 어떻게 더 지속할 수 있을지.
그때 당시의 처절함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불행히도 나는 2차 구술시험에서 또다시 불합격했다. 면접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모두들 내가 합격하는데 문제없을 것 같다고 하였지만 불합격이었다. 말을 더듬었던 것도 아니고, 내 의견을 잘 전달했던 것 같지만 결과는 예상과 달랐다. 하..매순간 고난과 역경이 없으면 내 인생이 아니지..싶었다.
자신감과 자존감이 하늘을 찌를 듯한 시기에 ‘그렇게 살지마, 더 조심해야지’라고 경고라도 하고 싶었던 것 같았다. 면접에서 떨어진 그때 나는 필기시험을 한 번 더 도전했고 운이 좋게도 역시 1등으로 합격했다(컴퓨터 관련해서 기술사 자격증은 두 종류가 있다). 그리고 구슬 시험에서 두 과목 모두 합격하여 최종 2개의 기술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자격증 취득을 이렇게까지 장황하게 설명하는 이유는 한가지이다. 이미 얘기했듯이 나는 학창시절 열심히 공부하지 않았기 때문에 공부에 대한 효과적인 방법을 알지 못했다. 그런 나 같은 사람도 새롭게 공부를 시작해서 무엇인가를 성취하는 것이 가능했기 때문에 이 글을 읽는 당신도 가능하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 나는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다. 오히려 평범한 수준에도 포함되지 않았던 사람이다. 그런 내가 해냈다면 이 글을 읽는 당신은 당연히 나보다 더 잘 해낼 수 있다.
참고로 기술사 자격증을 취득하면서 내가 반드시 지켰던 것들을 공유하고자 한다.
1. 단기 목표 세우기
나는 단 한번도 1등을 목표로 공부했던 적이 없다. 나의 목표는 일주일과 하루 동안 공부해야 할 분량을 해내는 것이었다. 따라서 일요일 저녁이면 일주일 동안 봐야할 전체 분량을 정하고, 그것을 6일동안 볼 수 있는 분량으로 쪼개서 학습했다.
2. 정해진 분량은 반드시 채워라
하루에 학습해야 할 분량이 정해졌다면 그 분량만큼 공부할 때까지 절대 잠들지 않았다. 피곤하다고 잠들어버린다면 다음날 학습해야 할 분량이 2배로 늘어난다. 문제는 2배 분량에 대한 학습은 절대 하루만에 끝낼 수 없다는 것이다. 애초부터 하루 분량은 과하다 싶을 정도로 할당된 학습량이었다. 따라서 그날 학습해야 할 분량은 절대 미루지 않았다.
3. 반복 학습
내 기억력은 최악이다. 기억력이 최악이라기 보다는 머리가 나쁜 편이라고 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따라서 반복 학습 말고는 1500~2000개의 기술들을 암기할 방법이 없었다. 나의 암기 노트는 총 14권이었는데 절대 한주만에 끝낼 수 있는 분량이 아니었다. 따라서 2주 간격으로 반복할 수 있도록(혹은 유난히 어려운 과목은 좀 더 짧은 주기로 반복할 수 있도록) 계획을 세웠다.
이 세가지가 반드시 지켜왔던 나와의 약속이었다. 뿐만 아니라 1500~2000개의 기술들은 단순히 암기하기보다는 일일이 인터넷에서 검색하면서 원리를 이해하려고 노력하였다. 기술사 자격증이 2000개 기술 범위 안에서 출제된다고 가정했을 때, 어떤 방식으로 출제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따라서 이해를 기반으로 하는 학습이 필요하다.
내가 했던 학습 방법은 기술사 자격증 취득에만 해당되지는 않을 것이다. 어떤 자격증이건, 시험이건 해당될 수 있을 것 같다. 모든 종류의 시험을 준비하는 사람들에게 행운만 가득하길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