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친구가 나에게 물었다. 지금 하고 있는 일들은 다 무엇을 위한 것이냐고, 이렇게까지 열심히 사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나는 이런 질문들이 부담스럽다. 나 자신도 그 답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생각해낸 답이 ‘난 이미 달리는 경주마에 올라 탔어. 절대 멈출 것 같지 않은 경주마’ 이것이 나를 설명할 수 있는 답변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어느 정도는 맞는 말이다. 내 역량을 뛰어넘는 일들을 계속 벌이고 있으니 말이다. 현재 나를 대표하는 말들이 많다. 딸, 부장님, 기술사님, 강사님, 작가님, 연구원님, 그리고 마지막으로 원우님까지. 이 모든 것들이 현재의 나를 대변하는 말들이다. 그래서 친구들이나 주위 사람들이 종종 묻곤 한다. 왜, 무엇 때문에 이 모든 것들을 하고 있냐고. 그럴때마다 내가 할 수 있는 답변이 없다. 정말 왜 이 모든 것들을 하고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 단지 욕심이 많아서라고 하기에는 나는 이미 번아웃 상태이다. 오늘 당장 살아갈 에너지가 없어서 내일의 에너지를 당겨서 쓰고 있는 처지이다.
나는 결국 눈치 보이는 계약직을 벗어났다. 계약직때 받았던 연봉에 비해 2배가 높아졌고, 직급도 높아졌으며 업무는 매일이 도전이다. 공기업을 계속 다녔다면 언제가는 정규직으로 전환이 되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매일 반복되는 업무는 나를 지치게 만들었다. 일을 하기 위한 일들이 많았고 그 일들을 마칠 때 즈음에는 도대체 본래 하려던 일은 무엇이었는지 기억조차 없었다. 요즈음 MBTI라고 해서 성격을 테스트해볼 수 있는 사이트가 많다. 이미 자신의 성격을 충분히 알고 있음에도 구지 공식적인 확인을 받고자 하는 사람들이 많다. 나 역시 재미삼아 성격 테스트를 진행해보았다. 나의 경우에는 단순 반복적인 지루한 일들은 참지 못한다는 결과였다. 성격 테스트 결과는 단 한번도 틀린 적이 없다. 정확히는 아니더라도 90%는 나의 성격을 반영한다. 그런 측면에서 단순 반복적인 지루한 일들을 못 참아 한다는 결과는 100% 맞는 말이다. 그나마 엔지니어로 일할 때에는 매번 다른 문제들을 해결해야했기 때문에 지루함이 덜 했다. 하지만 운영자의 일이란 똑 같은 일을 반복적으로 수행함으로써 장애를 예방하는 것이다. 따라서 그들의 일이라는 것은 새로운 것이 없으며 반복적인 일들로 삶이 무료할 뿐이다(절대 운영자들을 폄하하는 것은 아니다. 그동안 다양한 업무를 해오면서 느끼는 개인적인 생각일 뿐이다).
특별히 도전을 좋아하지 않고 안정적인 직업을 갖고 싶다면 공무원이나 공기업에서 일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하다. 혹은 사기업에서 운영자로 일해도 특별한 도전 없이 정년까지 무난히 일할 수 있을 것이다. 어디까지나 성격에 맞다면 말이다. 그런데 또 이런 생각도 해본다. 결국 직장에서 일한다는 것이 어떻게 매일 매일이 새로운 도전일 수 있을까? 많은 부분이 디지털화되어 있다고는 하지만 직장 생활의 대부분은 결국 문서작업이다. 사업을 기획해도 보고서를 작성해야 하고, 시스템을 구축해도 구축 정보를 문서로 남겨야 한다. 장애가 발생해도 장애 보고서를 작성해야 하며 프로젝트를 마무리해도 완료 보고서를 작성해야 한다. 그럼에도 단순 반복적인 일들이 싫다고 한다면 작장 생활을 하지 말아야하는 것이다. 하지만 어딘가에는 진취적인 업무와 단순 반복적인 업무에 대한 비율이 다른 기업이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는 진취적인 업무와 단순 반복적인 업무의 비율이 1:9 였다면 어딘가에서는 9:1까지는 아니어도 7:3인 곳이 있을 것이다. 믿지 못하겠지만 실제로 7:3인 비율로 매일 매일 도전을 불러일으키는 회사로 이직을 하였다. 글로벌 기업으로서 같이 일하고 있는 팀원들은 한국 사람들이 아니다. 중국, 호주를 포함한 아시아 사람들과, 유럽, 미국까지 국적도 다양하며 우리는 영어로 대화를 한다. 그러니 첫번째 도전은 영어가 될 것이다.
최근 기업은 현업 인력을 줄이는 반면 IT인력은 늘리는 추세이다. 그 시작은 금융권이다. 은행들은 최근 공개채용 규모를 줄여 가는 와중에서도 디지털 전문 인력 확보에는 열을 올리고 있다. 디지털 전문 인력을 채용하고자 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 인공지능(AI) 엔진을 기반으로 서비스를 개발
• 빅데이터를 통해 플랫폼 구축
• 블록체인과 클라우드, 오픈소스 등을 활용해 애플리케이션을 개발
• 모바일과 인터넷 서비스 기획
• 모바일 뱅킹 서비스 개발, 모바일 앱 개발
IT 분야에 종사하지 않더라도 뉴스 기사에서 한번쯤은 들어 봤을 단어들일 것이다. 각각의 항목에 등장하는 것들은 IT기술이 맞다. 그런 이유로 많은 기업들이 현업 인력을 줄이고 IT 인력을 현업에 전진 배치하고 있는 추세이다. 혹은 현업들에게 프로그래밍 기술을 배우도록 강제화 하지만 그것도 여의치 않다. 그렇다고 오해하지 말아야할 것은 IT에 종사한다고 위에서 언급한 모든 기술들을 다루거나 배워야 하는 것은 아니다. 일부의 사람들만 새로운 기술들에 관심을 갖고 사용한다. 내가 하고 싶은 것 역시 새로운 기술들을 공부하고 업무에 적용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일에는 엄청난 위험이 뒤따른다. 만약 새로운 기술을 사용하겠다고 결정했다면 은퇴하는 마지막 1분 1초까지 공부를 게을리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순수 과학의 경우 이론이 하나 정립되면 그 이론이 뒤집히는 경우는 드물다. 또 새로운 이론이 등장하기까지 수십년에서 수백 년이 걸린다. 하지만 IT분야는 다르다. 방심한 채로 2~3년간 살다 보면 많은 기술들이 바뀌어 있다. 도저히 따라갈 수 없을 것 같은 속도로 기술이 발전하고 있다. 기술의 변화로 비즈니스가 변화하고 있는 것인지 비즈니스 때문에 기술이 변화하고 있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변화의 속도가 굉장히 빠르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불과 5년전까지만 해도 서비스의 안정성이 가장 중요했다면 지금은 안정성도 중요하지만 유연성이 더 중요해졌다. 변덕스러운 고객의 요구에 빠르게 대응하기 위해 서비스(애플리케이션)를 쪼개고 쪼개더니 마이크로 수준까지 분리하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또한 분리된 애플리케이션 역시 유연성과 확장성을 보장하기 위해 클라우드 기반의 컨테이너에 서비스를 탑재하여 운영한다. 현재 이러한 환경에서 서비스를 가장 잘 운영하는 곳이 세계적인 전자 상거래 기업인 아마존이다.
비즈니스의 혁신을 위해 빠르게 변화하는 기술을 익히는 것은 때로는 피곤하지만 살아 있다는 희열을 주기도 한다. 물론 기술의 발전과는 별개의 삶을 살 수도 있지만 나와는 맞지 않는 삶이다. 그래서 지금 그런 삶을 살고 있냐고 묻는다면 그렇다. 이전에는 다뤄보지 않았던 수많은 새로운 기술들을 익히느라 정신없이 바쁜 삶을 살고 있다. 그런 삶이 행복하냐고 묻는다면, 그것에 대한 답변은 어렵다. 이 책을 처음부터 읽었다면 내 인생에서 행복한 순간이 없었음을 알 것이다. 행복이 어떤 것인지 알지 못하기 때문에 행복하냐고 묻는다면 답변할 수 없다. 질문을 바꿔서 즐겁냐고 묻는 다면 나는 당연히 ‘그렇다’라고 답할 것이다 (하지만 즐거움 딱 그만큼 스트레스도 받고 있다는 것이 함정이다). 업무와 관련한 도전은 현재 이렇게 두 가지이다. 아직까지는 지금의 도전이 버겁다. 하지만 나는 곧 새로운 기술에 익숙해질 것이다.
2년 넘게 돈과 열정을 투자하여 취득한 자격증으로 얻은 것이 하나 있다. 일명 N잡러와 같은 투 잡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그보다 더 귀한 것을 얻었다. 어떤 일이든 잘 해낼 수 있으리라는 자신감이다. 자격증 취득은 나에게 자격증 그 이상의 의미이다. 나도 노력하면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주었고 공부했던 내용들이 신기술은 아니더라도 신기술의 원리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래서 내게 주어진 혹은 앞으로 주어질 업무가 두렵지 않고 기대로 가득하다.
또 다른 도전이었던 석사과정을 통해 얻은 것은 나는 무엇이든 될 수 있다는 희망이다. 예전의 나는 중소기업만 전전하다 인생을 끝마칠 것이라 생각했다. 단 한번도 혹은 꿈에서도 대기업에서 일해볼 기회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세계의 인재들과 일할 수 있는 기회가 내게도 주어질 것이라고는 더더욱 상상해본 적이 없다. 그때는 내 꿈의 크기가 작았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을 것이라고 지레 짐작하여 아무것도 도전하지 않았다. 작은 우물 안에서 내 세상이 전부인줄 알고 살았다. 내가 꾸는 꿈이라고는 딱 우물의 크기 그 만큼이었다.
영어를 통해서 더 넓은 세상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자격증 취득을 통해서 나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고 석사 과정을 통해 내가 원하는 어떤 것이든 가능하다는 희망을 보았다. 나 자신에 대한 무궁무진한 가능성이 있다는 믿음으로 꿈의 크기에는 제한이 없어졌다. 물론 어쩔 수 없는 현실의 벽이 있겠지만 그렇다고 먼저 포기하는 일은 없다. 꿈의 크기에 제한이 없어졌다고 해서 IT 직종에서 쭉 일해왔던 내가 갑자기 변호사나 의사를 도전해보겠다는 것은 아니다. 아쉽지만 욕심만으로 안되는 것들이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한다. 지금의 자신감으로 더 많은 것들을 시도하고 더 많은 돈을 벌면 좋겠지만 나는 내가 관심 없는 분야는 시도하지 않는다. 용기가 없어서인지 모르겠지만 내가 잘 모르는 분야에 함부로 발을 들여놓고 싶지도 않다. 내가 가장 잘 알고 있고 잘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고 싶다. 하지만 시간과 장소에는 제한을 두고 싶지 않다. 따라서 첫째로 꿈꾸는 것은 외국에서 일하는 것이다.
내 주위에는 외국에서 일하고 있는 친구들이 많다. 주재원으로 미국에 있는 친구도 있고 국내 기업에서 일하다가 어느 날 갑자기 싱가폴에서 일할 기회가 생겼다며 떠난 친구도 있다. 혹은 글로벌 벤더에서 일하다가 본사에서 일할 기회가 생겼다며 떠난 친구도 있다. 이런 저런 기회로 떠난 친구들의 목적은 하나다. 더 넓은 세상에서 다양한 사람들과 일 해봄으로써 자신들의 견해도 넓히고 풍부한 경험을 쌓는 것이다. 외국에서 일하고 있는 친구들의 경우 단순히 외국에서 일하고 싶다는 열망만으로 가능했던 것은 아니다. 그동안 꾸준히 영어를 공부해왔었고 기회가 왔을 때 잡기 위해 혹은 없는 기회를 만들기 위해 부단히도 노력했다. 이제는 내가 노력해볼 차례인 것 같다. 현재도 충분히 외국인들과 일하고 있지만 예전에 영국에 있었을 때와 같은 자유를 느껴보고 싶다. 아무도 나를 알지 못하는 공간에서 오롯이 나를 위한 삶을 살고 싶다. 한국에서는 그렇게 살 수 없다. 어머니에 대한 죄책감 때문에 어머니를 돌봐야 한다는 압박감이 있다. 실제로 나는 현재 그렇게 살고 있다. 나를 위한 화장품이라도 하나 사려면 어머니에게 미안한 감정부터 앞선다. 그래서 필요하지도 않은 고가의 어머니 화장품을 구매한다. 내가 만원짜리 화장품을 구매한다면 어머니의 것은 3만원 혹은 5만원짜리를 구매해야 조금이라도 죄책감이 사라진다. 나의 가능성을 확인한 것과 가족에 대한 복합적인 감정이 사라지는 것은 완전히 별개인가보다.
내가 한국에서 부모님과 함께 사는 이상 나는 절대로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어머니에 대한 죄책감으로부터.. 이기적이라는 생각도 해보지만 지금 아니면 더 이상의 기회가 없을 것 같다. 조금 현실적인 얘기를 하자면 나는 이직을 위해 10~20 차례 국내 기업에 지원서를 제출했다. 새로운 직종이 아닌 그동안 꾸준히 경력을 쌓아왔던 직종이었음에도 합격이 어렵다는 것을 깨달았다. 요즈음 기업은 혁신을 위해 어리지만 능력 있는 사람들에게 임원 혹은 팀장 자리를 기꺼이 내어준다. 또 우리나라 특성상 나보다 나이 많은 팀원들과 일하고 싶어하지 않는다. 나이 많은 팀원들에게 일을 시키는 것이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뿌리 깊은 곳까지 유교사상이 자리잡고 있다. 나이 많은 사람을 존중하라는 가르침을 받은 우리나라는 나보다 나이 어린 팀장을 좋아하지 않지만, 나이 많은 팀원을 좋아 하지도 않는다. 이런 이유로 40만 넘어가도 이직이 쉽지 않다. 30대 후반 혹은 40대 초반에 이미 팀장 자리를 꿰차고 있는 사람들에게 40살이 넘은 팀원들은 부담스럽기 때문에 이력서조차 검토하지 않는다. 외국계 기업이라고해서 다르지 않다. 국내에 위치한 외국계 기업의 경우에도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한국인이다. 외국의 문화는 온데간데없어지고 한국의 문화만 남아있는 곳이 외국계 기업이다. 물론 글로벌 정책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각 지역의 문화 역시 반영 되어있는 곳이기도 하다. 그나마 내가 이직에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내가 일하게 될 사람들이 한국인이 아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라 추측해본다.
또 어떤 이는 이렇게 물을 것이다. 고작 외국계 기업에 이직한 것 가지고 무슨 대단한 성공이나 한 것처럼 떠들어대느냐고? 당신의 성공 기준이 대기업 임원이나 성공한 스타트업의 CEO라면 나는 분명 성공한 삶이 아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는 성공에 대해 얘기하고 싶은 것이 아니다. 성공이라는 것이 임원이나 CEO가 되는 것이라고 생각 하지도 않는다. 내가 얘기하고 싶은 것은 현재의 삶에 따라 꿈이 달라지기 마련이고, 노력 여하에 따라 현재의 상황은 얼마든지 달라 질 수 있기 때문에 꿈의 크기 또한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20대 초반의 나는 꿈꾸지 못했던 것을 현재 꿈꾸고 있다. 그렇다, 나는 지금 꿈의 크기에 대해 얘기하고 있는 것이다.
나 역시 한번 뿐인 인생이다. 앞으로의 이직에 있어 좋은 기회가 있을지도 장담할 수 없다. 그래서 지금의 기회를 최대한 잘 활용하고 싶다. 내 인생의 두번째 자유를 누려보고 싶은 것이 마지막 꿈이다. 나는 다른 사람들처럼 임원으로 퇴직을 하겠다는 욕심이 없다. 고속 승진이나 고액 연봉보다 마지막 꿈이 이뤄지기를 기대해본다. 나의 마지막 꿈을 자유로 정한데에는 이유가 있다. 나는 영국에서 그동안 한번도 느껴보지 못한 자유라는 것을 느꼈고, 오롯이 현재의 삶에 집중할 수 있었다. 하지만 또다시 어학연수를 목적으로 외국에 갈 수는 없는 노릇이다. 언제까지 어학연수를 핑계로 외국에 체류할 수 있단 말인가? 그렇다면 현실적으로 노력해볼 수 있는 방법이 현재 내가 소속된 회사를 활용하는 것이다. 운이 좋게도 외국계 기업에 입사하게 되었다. 나와 의견을 주고받고 화상 통화를 하는 사람들은 한국인이 아니고 외국인들이다. 즉, 노력에 따라 언젠가는 그들이 일하고 있는 그 곳에서 나도 일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길 수 있다.
물론 한국에서도 자유를 느껴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의 욕심은 끝이 없고 제어가 되지 않는다. 우스개 소리로 달리는 경주마에 올라탔다는 표현을 했지만 사실과 크게 다르지 않은 표현이다. 나는 내 손에 쥐어진 어떤 것도 내려놓을 마음이 없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외국에서는 모든 것을 내려놓는게 가능했다. 영국에 가기 위해 직업을 포기하려 했고 돈을 포기했다. 외국에서는 되는 것이 왜 한국에서는 안되는지 모르겠다. 나를 모르는 곳에서 다시 시작한다면 오롯이 나와 마주하게 될 수 있을 것 같다. 낮은 자존감으로 살아야 했던 나, 사람들의 냉혹한 시선이 두려워 한껏 움추려 들었던 나,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이라 생각하여 어떤 것도 노력해보지 않았던 나와 마주하고 그들의 상처를 어루 만지고 화해하고 싶다. 아쉽지만 한국에서는 그게 안된다. 나는 계속 앞만 보거나 위만 보고 살아가고 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기 때문이다. 뒤돌아볼 시간이 없다. 달리는 경주마가 뒤를 돌아본 적이 있는가? 나는 단 한차례도 그런 장면을 보지 못했다.
노력을 한다고 해서 실제로 내가 외국에서 일할 기회를 잡을 수 있을지는 모를 일이다. 최선을 다했을 때 언제나 목표했던 바를 이뤘던 것은 아니다. 어떤 하나를 이루기 위해 10번을 시도한다면 9번은 실패해야 간신히 얻을 수 있었던 것이 그동안의 나의 인생이었다. 그만큼 간절하게 무엇인가를 노력해야 얻을 수 있었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어떤 상황도 발생하지 않거나 오히려 더 나빠지기만 했다. 따라서 나의 마지막 꿈 역시 이뤄지지 않을 수도 있다. 9번의 노력 끝에 이뤄지려는 순간 해고를 당할 수도 있고 건강이 나빠질 수도 있다. 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에게는 시간이 필요하다. 지난 과거의 상처를 치유하지 못하고 덮어둔 채로 살아왔기 때문에 곪아 터지기 직전인 듯하다. 책도 많이 읽고 그동안 만났던 좋은 사람들을 닮아가려고 노력했기 때문에 회복 불가능할 정도로 내면이 뒤틀린 상태는 아니지만 나는 여전히 아프다.
무엇보다 죄책감에서 벗어나고 싶다. 세상의 모든 딸들이 나와 같은 감정을 가지고 살까? 착한 딸 콤플렉스일까? 장녀 콤플렉스일까? 아니면 이것도 일종의 정신병일까? 이해는 하지만 용서는 못하는 아버지도 용서하고 싶고, 어머니의 지난 고된 삶으로 인한 나의 죄책감도 털어버리고 싶다. 마지막으로 모든 무거운 마음이 좀 가벼워졌으면 좋겠다. 한 순간도 행복하지 못했던 내 삶을 위로하고 싶고 행복하고 싶다. 나도 모르게 새어 나오는 한숨 소리가 이제는 즐거운 미소로 바뀌었으면 좋겠다.
이제는 달리는 경주마에서 내려와 나와 화해를 해야겠다.
행복도 내가 만드는 것이네
불행도 내가 만드는 것이네
진실로 그 행복과 불행
다른 사람이 만드는 것 아니네
법륜 스님의 행복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