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꿈의 격차 11화

낮은 자존감 탈출하기 두번째 이야기

by 서지영

2년 조금 넘는 기간동안 내가 아닌 나로 살았던 기간의 후유증이 컸다. 합격 후 많은 여유 시간이 주어졌지만 어떻게 시간을 보내야 하는지 알지 못했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인 2년이라는 시간은 내 인생을 바꿔 놓기에 충분했다. 하루 24시간 중 10분의 휴식도 아까워했던 나였기에 합격 이후의 삶을 감당할 수 없었다. 가장 먼저 찾아온 것은 공허함이었다. 충분히 열심히 살았기 때문에 여행을 다닌다거나 책을 읽는 등의 여유시간을 가졌으면 좋았을 것이다. 그것도 아니면 그동안 무심하게 대했던 사람들을 챙기는 것도 좋았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 모든 것들을 제쳐 두고 또 다시 공부를 선택했다.

자격증을 취득한 사람들은 두 부류의 삶을 살고 있다. 장롱 운전 면허증처럼 자격증만 취득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과 공부나 다양한 활동을 하는 사람, 이렇게 두 부류가 있는데 내 경우에는 후자 쪽이었다. 남아도는 시간을 주체할 수 없었다. 무엇보다 어렵게 공부했던 것을 단지 공부로서 묻혀 두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다양한 활동을 통해 내가 배운 것들을 활용하고 싶었다. 자격증 공부를 위해 학원에 등록하러 갔을때 선배 기술사님들은 자격증 취득 후 할 수 있는 다양한 활동들을 일일이 나열하며 자격증을 준비하는 우리에게 합격 후 함께 활동하자는 얘기를 했었다. 하지만 자격증 취득 후 알게 된 사실은 실제로 활동할 수 있는 영역이 많지 않다는 것이었다. 활동이라고 해봤자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멘토링이나 제안 평가 등이 고작이었다. 일부는 국가 자격증을 이용하여 임시직 공부원으로 이직한 사람들도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선택을 후회하기 때문에 딱히 선택사항 중 하나라고 얘기하기도 민망하다. 후회하는 이유는 한가지이다. 그동안 민간기업에서 근무했던 사람들이 공기업이라는 문화에 적응하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물론 다양한 이유가 있을 수 있지만 이 이유가 가장 크다).

그래서 합격자들 중 극소수의 사람들은 또 다시 공부를 선택한다. 극소수라고 말하는 이유는 이미 대다수의 사람들이 석사 과정을 마쳤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내가 2차 면접에서 떨어졌을 때 불합격한 사람들끼리 모여서 면접 연습을 했었다. 그런데 이들 중 60~70%는 이미 석사 과정을 마친 사람들이었다. 또한 석사 과정을 마친 사람들의 나이대도 30대 중후반, 혹은 40대 초반이었기 때문에 박사과정에 대한 의지도 없었다. 그래서 학업을 지속하기로 결정하는 사람들은 일부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잠시의 여유시간도 자신에게 허락하지 않는 것은 결국 성향이라는 생각도 해본다. 결국 친구도 끼리끼리 사귄다는 말이 맞다. 내 주위는 어쩜 이리도 나 같은 사람들만 모여 있는 것인지.

하지만 나에게 학교의 의미는 또 달랐다. 학력은 나에게 아픈 손가락이었다. 누군가 출신 학교라도 물을 것 같은 분위기이면 화제를 전환하기 바빴다. ‘꼭 이렇게까지 부끄럽게 생각해야 했나.’라고 묻는다면, 글쎄..모르겠다. 이미 고백했듯이 지적 허영심 때문일 수도 있고, 어떤 누구보다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면서 살아왔던 습관일 수도 있다. 사랑받지 못한 삶을 살아와서인지 늘 다른 사람의 시선을 신경 쓰면서 살아왔다. 사실 다른 사람들은 내가 어떤 일을 하고 있으며 어떤 학교를 졸업했는지 관심이 없다. 자신들의 문제만으로도 충분히 정신없고 바쁜데 누가 남의 출신 학교까지 관심을 갖겠는가? 결국 부끄럽게 생각하는 마음은 나 자신으로부터 기인된 것이며, 내가 극복해야하는 문제였던 것이다. 하지만 허영심이나 타인을 의식하는 시선은 어느날 갑자기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졸업한지 20년이 지났음에도 부끄럽게 생각하는 마음이 줄어들기는커녕 매년 커지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학교를 가야겠다고 결심했다. 남아도는 시간을 주체할 수 없었고, 지난 20년간 겪어왔던 학력에 대한 피해의식에 마침표를 찍고 싶었다. 그래서 3월 말부터 학교를 알아보기 시작했던 것이다. 합격 후에 바로 알아보지 못했던 것은 기쁨의 순간에 취해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2월까지 회사에 제출해야 하는 영어 점수가 필요하기도 했다. 2개월간 영어 스피킹 공부에 집중해서 원하는 점수를 받았다. 급한 일들을 마치고 나서야 학교를 알아볼 시간이 생겼다. 이번 기회에 어떻게 해서든지 콤플렉스를 극복하고 싶었기 때문에 학교에 대한 선택권은 많지 않았다. 결국 무엇을 공부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선택만이 남아 있었다. 하지만 이 선택도 어렵지 않았다. 자격증 취득을 위해서는 컴퓨터 관련한 전체 과목을 학습해야 한다. 그 중에서 가장 재미있기도 했지만 최근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고 있는 인공지능을 선택하기로 했다.

2016년 이세돌 9단과 알파고의 대결로 인공지능이 무엇이며 그것의 위력이 사람들에게 각인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인공지능은 어느날 갑자기 등장한 기술이 아닌 그 이전부터 꾸준히 발전해왔던 기술이다. 때로는 쇠퇴기를, 때로는 부흥기를 겪으면서 발전해 온 것이 현재의 인공지능 기술이다. 물론 인공지능 기술은 현재도 부흥기라고 할 수 없지만 꾸준히 발전하고 있기 때문에 언젠가는 우리의 삶을 100% 바꿀 것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배적인 견해이다(인공지능을 배우고 있는 나 역시도 그들의 의견과 같다). 지금도 그렇지만 인공지능 기술이 접목된 다양한 서비스가 미디어를 통해 소개되고 있다. 하지만 나와는 먼 얘기와 같았던 어느날 멘토님께 이런 질문을 했다. ‘그런데 왜 전 인공지능 기술을 주위에서 볼 수 없을까요?’라고 물었더니 멘토님 답변이 허를 찔렀다. ‘인공지능 서비스는 살고 있는 수준과 관계가 있어. 부자의 삶일수록 더 많은 혜택을 볼 수 있지만 가난하면 그 혜택을 전혀 볼 수 없어’. 하..맞는 말이지만 아팠다. 내가 인공지능을 공부하겠다고 선택한 것은 모든 인간이 인공지능의 혜택을 누리게 하겠다는 인류애 때문이 아닌 순전히 나 자신의 안녕과 번영을 위해서였다. 지금까지 내가 해온 시스템 운영 업무는 수명이 짧다. 운영 업무는 고도의 기술력을 요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기업 입장에서는 열정 넘치는 신입사원을 뽑아서 2~3년 가르치면 이후 10~15년간 그 역할을 맡길 수 있다. 하지만 개인 입장에서는 10년 후가 문제이다. 10년 후면 또 다른 신입사원에게 자신의 일자리를 내줘야 하기 때문에 이후의 삶을 준비해야 한다. 이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관리자로 가지만, 관리자로 가지 못한 사람들과 관리자로 가고 싶지 않은 사람들은 다른 일자리를 찾아야 한다. 나 역시 비슷한 고민을 해야 하는 시기였다. 사실 반복되는 운영 업무가 재미없고 무료하기도 했다. 더 이상 어떤 자극도 없고 성취감도 느낄 수도 없지만 먹고 살기 위해 해야 하는 일이 의미 없다고 생각되었다. 그래서 직종을 바꿔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까지 쌓아온 경력이 있기 때문에 새로운 직종으로 바꾸는 것은 쉽지 않았다. 신입으로 다시 입사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경력직으로 새로운 업무에 지원 하자니 전환하려는 업무에 대한 경력이 전무했다. 실제로 나는 인공지능 관련한 데이터분석 직종에 여러 차례 지원해 본적이 있다. 하지만 그 결과는 누구나 예상했듯이 서류 광탈이었다. 내가 아무리 잘 할 수 있다고 주장해도 지나온 경력이 그것을 입증해주지 못하니 서류조차 검토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 것 같다. 무엇보다 인공지능 관련한 직종은 박사 학위자를 우대한다. 현업에서 경력을 쌓아온 사람들이 많지 않다는 것을 기업도 알고 있는 것이다.

결국 나는 빅데이터와 인공지능을 배울 수 있는 학과를 지원했다. 지원하는 과정도 상당히 촉박했다. 내가 지원하고자 했던 학교의 경우 가을 학기를 위한 지원 마감이 4월 중순이었다. 리서치를 끝내고 막상 지원하려고 했던 때가 4월 중순이었기 때문에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이 턱없이 부족했었다. 도저히 일정 내에 접수와 서류 제출을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렇다고 포기하고 싶지는 않았다. 이번에 포기한다면 또 다시 6개월을 기다려야 했기 때문에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 또 기간내에 서류가 도착하지 않는다고 해도 내가 잃는 것은 고작 접수비 뿐이었다. 급하게 인터넷 접수를 하고 필요한 서류들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제출해야 하는 서류가 의외로 많았기 때문에 연차까지 사용해야했다. 결국 서류는 마감 당일 날 도착했다. 인터넷 접수에는 학업 계획서를 작성해야 했지만 나의 경우 시간이 촉박해서 정성스럽게 작성하지 못했었다. 따라서 서류에서 떨어질 것이라 예측했지만 운이 좋았던 것인지, 지원한 모든 사람들에게 면접 볼 기회를 주는 것인지 몰라도 면접은 볼 수 있게 되었다. 면접을 코앞에 두고 걱정되고 긴장했지만 면접 준비를 하지는 못했다. 그동안 학교 입학 준비로 밀린 업무가 산더미였다.

아무리 워라벨이 가능 해졌다고는 하지만 직장 생활과 학업을 병행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어느 하나는 소홀해질 수밖에 없으며 그로 인해 누군가에게 피해를 줄 수밖에 없었다. 학교를 다니는 동안 때로는 팀 프로젝트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못했고, 때로는 업무에 소홀했었다는 것을 고백한다. 모두 의도했던 것은 아니었지만 절대적인 시간도 부족했고 두가지를 완벽하게 소화하기에는 능력도 부족했다. 그런데 한번에 여러 개를 해내는 것도 연습을 통해서 가능한 것 같다. 나는 지금도 직장 생활을 하면서 여전히 학교에 다니고 있으며, 책도 쓰고 있고 중간중간 자격증 취득을 위한 공부도 하고 있으니 반복적인 훈련을 통해서는 안되는 일이 없는듯하다. 이런 나를 회사에서는 좋아할 리 없다. 회사는 내가 오롯이 업무에만 집중하기를 바랄 것이다. 그것이 업무를 처리하는데 효율적이라 생각하는 것도 있겠지만, 직원의 시선이 밖으로 향할수록 이직 확률이 그만큼 높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직원들의 활동을 제한하기도 한다.

어떤 준비 없이 면접 장소로 향했다. 그룹면접으로 진행되었음에도 면접은 10분을 넘기지 않았다. 특수대학원임을 고려했던 것인지 개개인의 지식을 묻기보다는 최소한의 역량만 체크했던 것 같다. 결국 나는 최종 불합격했다. 전문대학을 졸업하고 학력 세탁을 위해 진학한 사이버대학에서 영어를 전공했던 것도 불합격에 한 몫 했던 것 같다. 인공지능은 영어와는 무관한 학문이다. 물론 매일 쏟아져 나오는 대다수의 논문이 영어이기는 하지만 인공지능을 배우기 위해 영어의 문법이나 단어가 중요하지는 않다. 나중에 알긴 했지만 인공지능을 배우기 위해 지원한 학생들의 절반 이상이 통계와 같은 수학이나 공학을 전공한 사람들이었다. 비전공자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상대적으로 적었다. 내가 사이버대학을 졸업했다는 것도 상대적으로 경쟁력이 없었을 것이다. 차라리 잘됐다는 생각도 했다. 만약 합격했을 경우 나는 많은 시간을 이동시간에 낭비해야 했다. 학교, 집, 직장은 그야말로 트라이앵글 구조를 갖는 거리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준비했던 것이 이직이었다. 즉 이직은 온전히 학업을 위한 것이었다. 하지만 우연인지 필연인지 이직을 위한 면접은 마지막 단계에서 불합격이라는 결과를 받았다. 단 하루 차이로 두번의 불합격 소식을 듣게 된 것이다. ‘어차피 학교는 불합격한 상태였기 때문에 회사의 불합격 소식이 문제되지 않았다’라고 말하고 싶지만 불합격은 그것이 무엇이든 화나고 자존감을 앗아간다. 그런데 차주에 학교에서 전화가 왔다. 추가 합격으로 입학을 원한다면 당장 내일 모레까지 입학금을 납부하라는 것이다. 입학금을 납부하지 않는다면 입학 의사가 없는 것으로 간주하여 자동적으로 다음 순번으로 넘어간다고 했다.

최초 불합격은 받아들였다. 나보다 더 좋은 사람들을 선발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이상하게 추가 합격 소식은 기분이 나빴다. 꼭 남이 씹다 버린 껌을 주워 씹는 기분이랄까. 그럼에도 나는 그 껌을 내 입에 넣었다. 다시 6개월을 기다리고 싶지 않았고 6개월 후에 다시 지원한다고 해도 합격할 것이라는 보장도 없었기 때문에 기분은 나빴지만 수용했다. 이제 하나만 해결하면 되었다. 개강전까지 어떻게 해서든지 회사를 옮겨야 했다. 처음에 생각했던 것은 팀을 옮겨 서울에 있는 본사로 출근하는 것이었지만 이마저도 여의치 않았다. 다른 회사는 다를 수 있겠지만 내가 소속된 회사에서는 공식으로 팀을 옮길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지만 그 기회가 누구에나 허락되었던 것은 아니었다. 공식적으로는 오픈 포지션이지만 뒤에서는 이미 내정자가 있었다는 것을 그 당시 알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팀 이동을 지원했지만 결국 거절당했다. 학교를 위해서 회사는 더 이상 다닐 수 없었고, 개강 전까지 남아있는 3개월 안에 무조건 이직을 해야 했다(학교마다 수업 방식이 다르지만 내가 다니고 있는 학교는 평일 수업을 진행한다).

학업을 계속 하라는 하늘의 뜻이었는지 이 시기에 기술사 공부를 하는 동안 만났던 멘토님께서 연락을 주셨다. 공기업에서 사람을 뽑는데 지원해볼 의향이 있는지 물으셨다. 당연히 지원해야했다. 그런데 면접 과정에서 청천병력 같은 사실을 알게 되었다. 정규직이 아닌 계약직이라는 것이었다. ‘그렇지, 공기업에서 경력직을 정규직으로 뽑을 리가 없지, 내가 순진했다.’라는 생각을 잠시 했다. 더 화가 났던 것은 공기업 역시 추가합격으로 합격했다는 사실과 기존의 연봉에서 30%가 줄어들었다는 것이었다. 학교에 입학하기 위해 너무 많은 것들을 감수해야하는 순간이었다. 나는 계약직이 어떤 것이라는 것을 충분히 경험을 통해 알고 있었다. 아무도 말은 하지 않았지만 나 스스로 위축되는 것이 계약직이었다. 분명 같은 동료이지만 절대 같을 수 없는 동료, 그들은 그들의 선택에 의해 회사를 떠날 수 있지만 나는 쫓겨날 수 있는 신세라는 것을 충분히 알고 있었기 때문에 계약직의 삶을 다시 반복하고 싶지 않았다.

이 모든 것을 감수하고 공기업에 입사했고, 학교도 입학했다. 무엇을 위해 이런 선택을 했던 것일 까? 모든 것을 감수하면서까지 학위가 필요했던 것일까? 잘 모르겠다. 그 답을 알았더라면 지금 이렇게 혼란스럽지 않겠지만 여전히 명확한 것이 하나도 없다.

드디어 개강을 했고 6개월간 집, 회사, 학교를 왔다 갔다 하는데 지쳤고 야근도 많은 상태에서 학교 공부까지 버거웠다. 특히 대학원 첫 수업은 너무 절망적이었다. 과목을 잘못 선택했던 것이다. 기초 지식이 없는 상태에서 너무 난이도가 높은 과목을 선택했고, 세 과목 중 두 과목에서 팀 프로젝트 과제가 주어졌다. 기술사 자격증을 공부했던 때보다 더 독하게 공부해야 했다. 아무리 특수 대학원이라 하지만 대학교라는 정규 과정을 마친 사람들이었기에 별다른 설명 없이 바로 본론으로 인공지능 알고리즘에 대해 설명하는 과목을 도저히 따라갈 수 없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보다 더 열심히 공부했던 것 같다. 원리를 이해하기 위해 동영상을 찾아 듣고, 관련 책을 구매해서 공부했다. 또한 구현 방법을 익히기 위해 많은 코드를 찾아보았고 직접 구현하는 연습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러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잠을 줄여가며 공부하는 것뿐이었다. 중고등학교때 지금처럼 열심히 공부했으면 서울대는 물론이고 아이비리그도 문제없었을 것이다. 역시..공부는 때가 있다. 나이 먹고 하는 공부는 2배 아니 3배는 더 힘들다.

인생은 참 알 수 없는 것이다. 수업을 위해 학교에 갔던 것은 고작 6개월뿐이었다. 이후 코로나 때문에 학교는 오프라인 수업에서 온라인 수업으로 변경되었다. 이런 상황을 미리 알았더라면 회사를 옮기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미래를 예측할 수 없기에 인생은 살아볼 만한 것이라고 하던데, 하..나는 왜 예측할 수 없기에 짜증만 나는 것일까.

이제 곧 졸업을 앞두고 있지만 열심히 살았던 것 같다. 특수 대학원은 돈으로 학위를 사는 곳이라고 하지만 나에게는 삶을 살아오면서 가장 최선을 다했던 순간들이었다. 단 1분이라도 쉬고 있는 나를 발견하면 강하게 질타했고 스스로에게 상처를 남겼다. 그만큼 절박했던 공부였다. 계약직을 벗어나고 싶었고 운영이라는 직종을 바꿔야했다. 역시, 먹고 사는 일이 걸려있으면 절박함 때문이라도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는 것 같다.



변환에 실패한 100여 개 기업을 연구한 결과

가장 큰 원인은 절박함을 조성하는데

실패했기 때문이었다.


하버드대 존 쿼터교수



대다수의 사람들은 더 이상 견딜 수 없는 상황에 이를 때까지도 여태껏 해왔던 잘못된 습관이나 행동이나 믿음을 지속해 나가려는 어리석은 경향이 있다.

부정적 마인드가 자기 삶을 옭아매고 있는데도 나락으로 떨어질 때까지 부정적 이야기만 습관적으로 끄집어 내는 사람들이 있다.

마음가짐을 고쳐먹지 않으면 주변 환경이 바뀌어도 일순간일 뿐이다.


따뜻한 독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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