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꿈의 격차 08화

학력 세탁을 결심하다

by 서지영

나는 학력으로 인한 자격지심이 누구보다 심하다. 중고등학교 시절 특별히 공부를 잘했던 것도 아니면서 어디서 이런 자격지심이 생긴 건인지 모르겠다. 지금 극복하지 않으면 눈을 감는 마지막 순간까지 후회로 남을 것 같아서 무엇인가 해야만 했다. 그래서 결심한 것이 학력 세탁이다. 학력 세탁이라고 하니 뭔가 거창하고 불법적인 행위가 수반될 것 같지만 전혀 그런 의도로 선택한 단어가 아니다. 단지 자격지심을 극복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일 뿐이다.

대학에 입학해서 최근까지 나는 학력에 대한 질문이 가장 싫었다. 우연이라도 만난 지인, 혹은 처음 만나는 사람들이 내가 다니고 있는(다녔던) 학교를 물어볼까봐 늘 전전긍긍이었다. 부끄러움은 자연스럽게 명문대에 대한 동경으로 이어졌다. 고등학교 2학년때 같은 반 친구가 있었다. 독실한 기독교인이었고 성실한 친구였다. 이 친구에게 일탈이라는 것은 감히 상상도 못할 일 같았다. 그렇게 평생을 살아왔고 앞으로 그렇게 살아갈 친구였다. 성실한 친구는 고등학교 내내 공부에 매진하더니 결국 원하는 대학에 진학했다. 이 친구의 꿈은 목사님과 결혼하여 교회와 하느님을 위해 헌신하는 것이었다.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총신대에 진학했으나 그곳에서 무엇이 부족했는지 1년 후에 휴학을 했다. 휴학 기간동안 재수학원에 등록하여 또 열심히 공부하더니 결국 고려대학교 편입에 성공했다. 친구가 편입에 성공했다는 이야기는 나에게 희망과도 같았다. 나도 1년간 열심히 공부하면 편입에 성공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이미 얘기했지만 휴학해서 공부에 매진할 만큼 경제적으로 넉넉한 편이 아니었다. 졸업식뿐만 아니라 취업을 위해 필요한 정장조차 살 돈이 없었다. 결국 그때 당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취업한 친구의 신용 카드를 빌려서 정장을 구매했을 정도로 가난했다. 이러한 처지에 휴학과 학원비는 감히 꿈도 꾸면 안되는 것이었다. 친구가 무척 부러웠다.

편입에 성공한 친구를 부러워하거나 명문대를 동경하는 일련의 태도들은 지적 허영심일 것이다. 나의 집착이 물욕에서 지적 허영심으로 옮겨간 것이다. 여전히 책과 교육비로 많은 돈을 지출하고 있지만 유용하고 현명하게 소비하고 있다는 뿌듯함이 느껴졌다. 현재 내 책장에는 약 500권이 넘는 책들이 넘쳐 흐른다. 가득 쌓여 있는 옷들을 비워냈지만 그 자리를 다시 책으로 채운 것이다. 내 작은방의 모든 벽면이 책장으로 채워졌지만 답답하거나 한심하다는 생각보다 뿌듯하게 생각되는 것을 보면 지적 허영심이 맞는 듯하다. 그것도 아니면 지적 허기이거나.

나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은 친구는 고려대를 졸업해서 짝사랑하던 목사님과 결혼해서 잘 살고 있다. 그런데 결혼해서 남편 외조가 꿈이었다면 왜 구지 편입을 했던 것일까? 그 친구 역시 지적 허영심이 있었던 것은 아닐까? 결국 지적 허영심을 채웠으니 더 이상 허영심으로 남아있지는 않을 것이다. 내적으로 만족한 삶을 살고 있다면 그때 그녀가 투자했던 시간과 돈은 충분히 그럴만한 가치가 있던 것이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또 이런 생각도 해본다. 그녀는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학교를 졸업했지만 단 한번도 사회에서 공부했던 것들을 사용해본 적이 없다. 반면에 나의 경우는 짧게 끝낸 대학생활 이후 지금까지 사회생활을 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내가 하고 있는 일이 거창하게 애국심과 연계시킬 만큼 자부심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늘 최선을 다해왔다. 그렇다면 나는 나의 학력을 부끄럽게 생각하는 것이 맞는 것일까? 누구나 공감하겠지만 학교에서 배운 내용들이 사회에서는 큰 도움은 되지 않는다. 지금은 개인들의 역량에 따라 창업할 기회가 얼마든지 열려 있기 때문에 학교에서의 배움이 아니더라도 다양한 활동을 통해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 하지만 내가 학교에서 무언가를 배워야 할 때에는 단방향 가르침이었다. 또 지금처럼 창업에 대한 기회가 열려 있던 것도 아니어서 배움은 학교에서 끝나는 경우가 많았다. 문제는 그 배움이라는 것이 사회에서는 도움이 안된다는 것이다. 결국 사회에 나와서 새롭게 공부하고 경험하고 결과를 만들어내는 과정이 필요하다. 따라서 어떤 학교를 졸업했는지는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 어차피 사회에 나와 새롭게 공부하는 것은 비슷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내 학력이 부끄러웠다. 학교를 졸업한지 십년이 훨씬 지났음에도 여전히 내가 어느 학교 출신인지를 묻는 사람들이 많다. 사회 생활을 하다 보면 다음과 같은 말을 종종 듣게 된다. ‘저 과장은 호주에서 대학교를 다녔데’, ‘저 사원은 서울대를 나왔데’. 그리고 어김없이 이어지는 말은 다음과 같다. ‘저 사람들은 이 회사에서 임원까지 승진할 수 있을꺼야’. 회사에는 특히 대기업일수록 진골과 성골이라는 문화가 자리잡고 있다. 겉으로는 모두 평등한 것 같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유리 천장’이 존재한다. 진골은 더더욱 기회가 주어지지 않지만 성골의 경우도 같은 성골이 아니다. 국내에서는 SKY대학을 졸업해야 학벌과 인맥으로 고속 승진할 기회를 잡을 수 있다(고속 승진이 아니더라도 승진의 기회가 있을 때마다 누락되지 않고 꾸준히 승진이 가능하다). 우리나라는 개인의 실력보다는 조직의 문화를 더 우선시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조직에서 임원들은 대부분 SKY대학 출신이고 이들이 일을 맡기거나 끌어주는 사람들은 대부분 같은 학교 출신이다. 이런 이유로 같은 성골이라도 다 같은 성골이 될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학력이라는 것은 자신의 인생을 평생 따라다니면서 때로는 발목을 잡고, 때로는 기회를 제공한다. 누군가는 반박할 것이다. 학력이라는 것이 멋진 인생을 보장해주지 않으며 그 혜택이라는 것도 그리 크지 않다고. 하지만 정말 그럴까?

<한국일보>와 여론조사기관인 한국리서치는 지난 2014년 11월 20~24일 서울, 부산, 대구, 광주, 대전 등 5개 주요 도시에 거주하는 20~59세 성인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했던 설문조사 결과는 다음과 같다. ‘교육 정도에 따라 인생이 결정된다’에 ‘그렇다’라고 답변한 이가 76.2%였다. 또한 ‘교육 정도(학력)가 무엇을 의미하냐’는 질문에 58.9%가 ‘출신 학교’을 꼽았으며 ‘미래를 위해서라면 편입, 재수를 해서라도 좋은 대학에 가는 것이 낫다’라는 질문에도 71.1%의 응답자가 ‘그렇다’라고 답변했다. 또한 ‘학력이 좋을수록 좋은 직업을 구하기 쉽다’라는 질문에도 88.1%의 응답자가 ‘그렇다’라고 답변했다고 한다. 여론조사가 좀 오래되긴 하였지만 여전히 우리 사회는 학력이 평생의 꼬리표처럼 붙어 다닌다는 것이다. 졸업한 학교의 레벨에 따라 입사하게 될 회사의 레벨이 달라지며, 인생이 달라지며, 궁극적으로는 삶의 질이 달라지는 것이 현실이다.

1,000명의 응답자를 일반화해서 말하고 싶지는 않지만 누구나 한번쯤은 학력으로 인한 차별을 받아보지 않았을까? 초등학교 고학년을 포함하여 중고등학교 10년간 열심히 공부한 대가라고 생각한다면 그 차별이 그리 억울할 일도 아닐듯하다. 하지만 여기서 주의 깊게 살펴봐야할 것은 눈에 보이는 차별이 아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꿈의 격차가 더 큰 상실감을 준다. 고등학교를 졸업해서 중소기업에 입사한 사람이 꿀 수 있는 꿈의 크기는 얼마나 될까? SKY대학을 졸업해서 대기업에 입사하여 외국인들과 대화하는 것이 일상인 글로벌한 환경에서 일하는 사람의 꿈의 크기는 얼마나 될까? 사회는 무한 경쟁인 곳이긴 하지만 기회 또한 무궁무진하다고 한다. 하지만 그 기회라는 것이 모든 사람들에게 동등하게 주어진 것인지에 대해서는 질문을 던져보아야 한다. 모호한 얘기는 집어치우고 정량적인 수치로 얘기해보자. 현재 중소기업 신입사원 초봉의 경우 2,000만원이 조금 넘는다. 하지만 대기업 신입사원 초봉의 경우에는 4,000만원이 조금 넘는다. 이 수치는 실제로 중소기업과 대기업에서 일하고 있는 신입사원으로부터 전해들은 이야기이기 때문에 비교적 정확하다고 할 수 있다. 매년 연봉이 3%씩 오른다고 가정할 때 중소기업에 다니는 사람의 5년후 연봉은 28,981,000원(연봉을 2500만원으로 가정했을 때)이 되지만 대기업에 다니는 사람의 5년후 연봉은 52,167,000원(연봉을 4500만원으로 가정했을 때)이 된다. 2000만원의 차이에서 시작했지만 5년후에는 더 차이가 벌어졌다. 연봉뿐만 아니라 성과급 등을 고려하면 그 차이는 더 클것이다. 10년 후에는 이들이 살게 될 아파트의 위치나 평수가 달라지게 될 것이다. 정량적 수치만으로도 이렇게 큰 삶의 격차를 보여주는데 꿈은 더할 것이다.

나의 어린시절에는 꿈이 없었다. 꿈이라는 것을 가져봐도 이뤄지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에 꿈을 꾸는 것조차 시도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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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꿈을 꾸기에는 세상이 얼마나 넓은지 알지 못했다. 그래서 고작 꿈이라고 가져본 것이 학교 선생님 정도였다. 내 세상에서 선생님은 최고의 직업이었다. 방학이 끝나고 학교로 돌아왔을 때 국어 선생님은 방학동안 유럽을 여행했다면서 교사라는 직업이 좋다고 했던 기억으로 나 역시 선생님이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결국 꿈이라는 것도 내가 알고 있는 세상만큼의 크기로 제한되는 것이다. 이후 영어 공부를 하면서 세상이 넓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또 그만큼 사람들의 생각도 다양하는 것을 알게 되었다. 더 넓은 세상을 자신의 눈으로 직접 확인하기 위해 여행하는 사람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다른 나라에 터를 잡고 사는 사람들, 더 넓은 세상에서 자신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모든 것을 버리고 외국으로 떠나는 사람 등 정말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그런데 내가 꿈꿨던 것은 고작 선생님이었던 것이다. 선생님이라는 직업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선생님 외 다른 직업을 생각조차 해볼 수 없었던 지난 과거가 안타까워서 하는 말이다. 많은 사람들이 나와 비슷했을 것이다. 집과 학교, 혹은 학원이 전부인 학생에게 누군가 더 넓은 세상을 보여주지 않는 이상 이들이 꿈 꿀 수 있는 세상이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요즘은 인터넷이 발달해서 간접경험을 할 기회가 많아졌다. 특히 유튜브는 직접 경험으로 알 수 없는 많은 것들에 대해 간접 경험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그래서 나는 많은 것들을 간접 경험하면서 큰 꿈을 꿀 수 있는 친구들이 부럽다. 하지만 이들은 학교에서 배우는 영어와 수학이 앞으로 자신들의 인생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핑계로 공부를 등한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하는 이유는 유튜브 혹은 기타 다른 웹 사이트에 충분이 설명되어 있다. 그럼에도 공부를 하지 않는 것은 그들의 선택이고 그 선택의 결과는 고스란히 자신의 몫이어야 할 것이다. 그들의 부모나 선생님을 원망해서는 안될 것이며, 사회를 원망해도 안될 것이다. 어떻게 보면 더 냉철한 사회를 살고 있는 어린 친구들이 부러우면서도 안타깝다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결국 나는 동경을 동경으로만 묻어두지 않기 위해 학력을 세탁하겠노라고 결심했다. 이때가 30대 초반이었다. 20대 중반에 영어를 접하고 5년 넘는 시간동안 영어 회화반을 수강하면서 꾸준히 노력하면 무엇이든 이뤄낼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지금도 나의 영어 회화 실력은 중급 정도이지만 의사소통에는 문제없다. 즉, 노력으로 완벽에 가까운 성취는 아니더라도 생활에 불편함이 없을 정도의 완성도는 가능하다는 것을 몸으로 깨달은 것이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성취감을 맛본 나는 학업을 계속해도 문제없겠다고 판단했었다. 이때 목표로 했던 것은 석사학위였다. 최종 학교의 레벨을 높이기 위해 먼저 대학교 졸업장이 필요했다. 전문대학 졸업장으로는 대학원 진학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대학교 수준의 졸업장을 얻을 수 있는 다양한 방법들을 알아보았다. 확인해본 결과 학점제은행, 사이버대학 등을 선택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해 보였다. 생계를 위해 직업을 포기할 수 없기 때문에 시간이 여유로운 사이버대학에 편입했다.

대다수의 채용 공고에는 ‘4년제 졸업 이상’이라는 항목이 있다. 마치 해당 문구가 없으면 채용 공고가 아닌 것 같은 느낌을 줄 정도이다. 나는 이직을 위해 채용 사이트를 확인할 때마다 ‘4년제’라는 내용만 언급되어 있어도 주눅들었다. 취업이 힘들어질수록 위축감은 더욱더 커지더니 급기야 ‘4년제’라는 조건이 있다면 결코 지원하지 않는 상황까지 이르렀다. 이미 5년 이상의 경력이 있음에도 학력이라는 항목을 만나면 주눅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이러한 모든 상황에서 도망치는 것은 불가능하니 극복하고 싶었던 것이다. 나는 그때 한창 영어에 관심이 많았기 때문에 영어학과를 선택했다. 전문적으로 공부하면 영어를 더 잘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일과 병행해서인지 많이 늘지는 않았다. 그때 나의 영어 실력이 일취월장했다면 영어 때문에 스트레스 받는 일은 없었겠지만 나는 여전히 영어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으면서 살고 있다. 일과 공부를 병행했던 2년이라는 시간이 어떻게 흘렀는지 모를 정도로 정신 없었다. 업무는 업무데로 바빴고 과제와 중간/기말고사로 인해 공부를 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저녁이 있는 삶은커녕 주말까지 반납하며 공부해야 했다. 또 그때 당시 학교는 코넬 대학과 연계한 다양한 프로그램들이 있었는데, 욕심은 얼마나 많았던지 모든 프로그램을 참여했었다. 시작을 했으면 끝을 봐야 한다는 성격이 나 자신을 들들 볶아 댔던 것이다. 결국 아주 우수한 성적은 아니지만 결국 무사히 졸업은 할 수 있었다. 영문학 수업, 영어 프리젠테이션 과제, 코넬 대학 프로그램 등을 무사히 마친 나 자신이 자랑스러워야 했지만 그렇지 못했다. 겨우 4년제라는 조건은 충족시켰지만 학교의 레벨은 여전히 낮았다. 일반 대학이라고 할 수 없는 사이버대학은 또 다시 꼬리표처럼 나를 따라다니고 있었던 것이다. 어차피 목표로 했던 것은 대학원이었기에 괜찮다고 몇 번이고 되뇌었다. 실제로 10년 후에 나는 대학원에 진학했다. 최종 목표를 달성하기까지 10년이라는 시간이 더 필요했던 것이다. 이래서 공부는 때가 있다고 하는가 보다. 마음 같아서는 바로 대학원에 진학하고 싶었지만 학업 때문에 업무에 소홀해지는 것이 싫었다. 그리고 회사에서도 이미 충분히 나를 배려해줬기 때문에 졸업 이후에는 업무에 집중하고 싶었다. 업무에 열중한 삶을 살았을 때에는 또 다시 학업을 계속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하루하루 녹초가 되어 퇴근하는 내 삶에 더 이상의 스트레스를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나는 그렇게 나를 다독이며, 나를 속이며 하루하루를 살았던 것 같다.

‘누구나 다 이렇게 살고 있어, 일도 힘든데 좀만 더 쉬자’

그런데 어느 순간 또 다시 삶이 무료해졌다. 업무에서 느낄 수 있는 성취감은 또 다시 줄어들었고 매일이 똑같은 나날들의 연속이었다.


아침에 눈 뜨면 어떤지 알아?

열정, 희망, 감정,

아무것도 안 느껴져

제일 힘든 순간은

지나간 줄 알았는데

계속 이렇게 사는 건

죽음보다 잔인해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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