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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지영 Sep 14. 2022

인간의 조건

아빠는 이제 누워서 몸을 일으키는 것조차 혼자 힘으로 하지 못했다. 따라서 엄마는 아빠를 위한 밥상을 따로 차려야 했다. 뿐만 아니라 양치질과 세안 역시 방에서 해결해야 했다. 엄마는 그때 당시 아빠가 갓난아기와 같다고 했다. 하나부터 열까지 엄마 손을 빌려야 했고 자주 짜증내는 것을 모두 받아주어야 했기 때문이었다. 

뿐만 아니라 먹는 것이 별로 없었던 아빠는 변비로 고생을 했다. 그래서 변비약도 함께 먹고 있었는데 변비약이 효과를 발휘할 때에는 바로바로 화장실로 이동해야 하지만 아빠에게는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그래서 1~2차례 이불에 대변을 보기도 하셨다. 그때마다 엄마는 아빠의 병수발로 힘들어했다.

이때 생각했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무엇이 인간을 인간 답게 만드는 것일까? 생리현상조차 해결할 수 없다면 인간의 조건은 무엇일까?’라는 생각을 끊임없이 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하면 이 생각 역시 사치스러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빠가 숨쉬고 우리 곁에 살아 있음에 감사해야 했는데, 나는 왜 인간의 조건 따위를 고민하고 있었을까? 이런 태도 때문에 지금 나는 후회라는 암 덩어리와 인생을 함께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죽음을 맞이할 때까지 절대 떨어져 나가지 않을 것 같은 후회와 미안한 마음은 아마도 내가 죽어서도 계속될 것 같다. 하지만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은 인간의 조건을 고민했던 것은 나를 위해서, 혹은 간병으로 고생하는 엄마를 위해서가 아니었다. 이것은 순전히 아빠 때문에 시작된 고민이었다. 아빠가 누워서 지내는 기간 동안 아빠는 가족들과 거의 대화를 하지 못했다. 오직 잠을 자거나 혹은 눈을 감고 지내기만 했을 뿐이었다. 내가 그런 상황이라면 어땠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살고 싶었을까? 생리현상조차 내 마음데로 해결할 수 없고, 이동이 자유롭지도 않고, 숨쉬는 것조차 힘들다면 사는 것이 의미가 있을까? 사실 나는 삶에 대한 애착이 없다. 삶은 고달펐고 치열했고 힘겨웠다. 여기에 몸까지 아팠다면 차라리 죽는게 낳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암 덩어리들 때문에 더욱더 힘들어질 것이 뻔한데 사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죽을 것처럼 아픈 상황에서 가족들은 어떤 심정으로 나를 바라볼까? 함께 고통 속에서 시간을 보내느니 차라리 죽음이 좋은 선택이 아닐까? 이런 생각들을 많이 했던 것 같다. 즉, 앞으로 더욱더 고통스러워 할 아빠를 위해 시작된 고민이었던 것이다. 고통이 극에 달해서 아빠 본인과 가족들이 더 지치기 전에 인생을 끝내는 것이 좋지 않을까? 긴 병에 효자 없다고 한다. 아빠의 간병이 지속될수록 나 역시 지치고 있었던 것이다. 고작 6개월만에 지치다니. 그래서 나 자신이 용서가 안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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