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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지영 Sep 14. 2022

코로나19로 병이 악화되다

코로나19가 유행하면서 TV에서 자주 듣는 얘기가 있었다. 기저질환을 가지고 있는 어르신들은 코로나19에 더 취약하니 백신을 맞아야 한다고. 그래서 가족들은 모두 3차까지 백신 접종을 했다. 부작용이 두려웠지만 아빠의 건강이 염려되는 것이 먼저였다. 

그렇게 가족들 모두 조심하며 살아왔다. 외출을 삼가고, 친구들을 만나는 것도 자제하면서 살아왔던 어느날 아빠의 기침은 더 심해졌고 엄마와 동생은 몸살로 힘들어했다. 처음에는 환절기 때문에 감기에 걸린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가족 모두 몸살로 힘든 시간을 보내면서 단순히 감기가 아닐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마침 시장에 볼 일이 있다고 나서는 엄마에게 약국에 들러서 자가진단 키트를 사다 달라고 부탁했다. 나를 제외한 가족들은 모두 테스트 결과 확진이었다. 나는 가족들과 같은 증상이 없었기 때문에 따로 검사를 받지는 않았다. 증상이 없더라도 나 역시 획진 되었을 수도 있었지만 자가진단을 할 여유가 없었다. 아빠가 위독해질 것을 대비해서 약을 처방받거나 병원을 동행할 누군가가 필요했다. 

아빠의 기침은 24시간 지속되었다. 항암 치료로 이미 몸무게는 20kg 가깝게 빠진 상태였고, 음식을 거의 섭취하지 못한 상태에서 24시간 지속되는 기침 때문에 많이 힘들었던지 아빠는 119를 불러 달라고 했다. 아빠는 병원에 입원하는 것을 끔찍히 싫어했다. 아빠가 20대인 시절부터 크고 작은 수술로 몇 차례 병원에 입원했던 아빠는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더 병원에 입원하는 것을 싫어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인이 직접 119를 불러 달라고 한 것은 정말 힘들었다는 것이었다. 

그 날 나는 외근중이었다. 코로나19 기간 내내 재택근무를 했지만 일이 있을 때마다 회사로 출근을했다. 그날 마침 오전부터 미팅이 있어서 회사에 있다가 미팅을 마치고 빨리 집으로 돌아왔다. 골목을 돌아서는데 119 차량이 있었다. 심장이 덜컥 내려 앉았다. 지난번 아빠가 약을 먹었을 때처럼 119 차량이 집 앞에 대기하고 있었던 것이다. 무섭고 눈물이 났지만 입술을 깨물고 집으로 향하는 길을 재촉했다. 아빠가 몸이 아파서 119를 불러 달라고 했지만 코로나가 의심되는 환자이기 때문에 받아주는 병원이 없어서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었다. 아빠는 119 차량에 인공 호흡기를 끼고 누워있었고 엄마는 아빠와 동행하기 위해 119 차량 앞에 있었다. 본인이 동행할 테니 집에 있으라는 엄마의 말에 나는 또다시 반항 한번 하지 않고 집안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잠시후에 엄마도 들어오더니 아직 출발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12시에 119에 연락해서 4시가 가까웠지만 119 대원들은 이 병원 저 병원 연락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더니 119 대원 중 한 분이 돌아와서 이제 출발하려고 하지만 코로나 환자로 의심되는 엄마 보다는 내가 동행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했다. 결국 내가 아빠와 동행하게 되었다. 119 차량 안에서도 아빠의 기침은 멈추지 않았다. 많이 빠진 몸무게 때문에 아빠가 입고 있는 옷들은 너무 컸고 신발은 시장에서 샀던 2만원짜리 그 운동화였다. 이동하는 내내 눈을 감고 계셨고 가끔 눈을 떠서 내가 그 자리에 있는지 확인하는 것 같았다. 나 역시 아빠가 괜찮은지 가끔 바라볼 뿐이었다. 왜 그때 아빠의 손 한번 잡아주지 못했는지 지금도 후회로 남는다. 살면서 한번도 잡아보지 못한 아빠의 손이었다. 괜찮을 것이라고 얘기해주지 못했다는 것, 무서웠을 아빠의 손 한번 잡아주지 못했다는 것이 뼈에 사무치도록 후회스럽다.

결국 우리는 항암 치료를 받고 있는 병원에 도착했다. 아마도 그동안 치료를 받고 있는 환자였기 때문에 코로나 의심 환자여도 받아줬을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도착한 이후에도 응급실 문턱을 넘는 것이 어려웠다. 일반 환자들을 먼저 받은 후 코로나 의심환자는 가장 마지막에나 받아주겠다는 것이었다. 119 대원들, 아빠와 나는 병원 앞에서 또다시 3시간을 기다린 후에야 응급실 문턱을 넘을 수 있었다.  

아빠를 응급실에 인계하고 119 대원들을 돌아갔고, 나는 아빠의 상태를 들을 수 있기를 기대하며 3시간을 더 기다렸다. 아무리 기다려도 소식이 없어서 응급실 문 앞에서 사람들을 통제하는 분께 환자의 상태를 물었다. 그 분은 어디론가 전화를 했고 2~3분간 통화를 하고 끊었다. 아빠는 코로나19 확진일 것 같고 폐 사진을 찍어 봐야하기 때문에 일단 돌아가라고 했다. 결국 아무 소득 없이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한없이 눈물이 흘렀다. 지난번처럼 새벽에 병원에서 걸려올지도 모를 전화를 기다리느라 잠을 제대로 잘 수 없었다. 오전이 되어서야 병원에서 전화가 왔다. 코로나 검사 결과 확진이므로 일주일 정도 입원해야 한다고 했다. 준비없이 아빠 혼자 응급실로 들어갔기 때문에 아빠에게 핸드폰을 포함한 소지품을 전달하기 위해 엄마가 병원으로 향했다. 다행히 아빠의 손에 휴대폰이 쥐어지면서 통화는 할 수 있게 되었다. 입원한지 2일차가 되었을때 병원에서 또다시 전화가 왔다. 코로나19 영향으로 폐렴과 폐부종 증상이 나타났기 때문에 치료가 필요하다며 추가로 2~3주 입원이 필요하다고 했다. 코로나19 치료가 끝나면 보호자가 간병을 할 수 있기 때문에 PCR 검사를 받아오라는 것이었다. 자가진단 키트로만 코로나라고 확신했던 엄마는 간병을 위해 PCR 검사를 했고, 역시나 양성으로 나타났다. 나 역시 검사를 받았다면 양성으로 나타났을 것이다. 별다른 선택권 없이 간병인을 구해야 했다. 하지만 이제 막 치료가 끝난 코로나 환자의 간병을 하겠다는 간병인을 구하는 것이 어려웠다. 어렵게 한 사람과 연락이 되었고 병원에서 아빠의 물건과 주의해야할 사항들을 전달하고 집으로 돌아왔지만 간병인은 아빠를 간병하다가 본인도 확진 되는 것이 두려워서 그만두겠다고 했다. 치료가 끝났기 때문에 감염의 위험은 없다고 설득했고, 간호사 분들께도 간병인에게 감염의 위험이 없다는 것에 대해 잘 설명해 줄 것을 부탁드렸더니 그제서야 남아있는 것에 동의해 주셨다. 

하루 하루가 고달프면서도 조용한 시간들이었다. 집에는 더 이상 아빠의 기침 소리가 들리지 않았고 아빠 옆에서 간병하느라 지친 엄마도 한숨 돌리고 있었다. 하지만 아빠는 병원에 있는 시간들이 고통스러웠는지 퇴원하겠다는 말만 반복했다. 결국 폐렴 치료가 끝나지도 않은 상태에서 아빠는 퇴원을 했다. 퇴원하는 날 엄마와 함께 병원에 가고 싶었지만 미팅 때문에 갈 수가 없었다. 간병인 분에게 엄마, 아빠가 택시 타는 것 까지만 도와달라는 부탁을 하고, 집에서 두 분이 오시기를 기다렸다. (그때 당시의 미팅은 화상으로 진행되는 미팅이었다)

불안하고 초조한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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