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밖으로 자동차 문이 열리고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아빠를 부축하기 위해 빨리 밖으로 뛰쳐나갔다. 아빠는 엄마의 부축을 받고 있었지만 걷는 것조차 몹시 힘들어했다. 평지를 지나 계단을 올라야 하는데, 아빠가 주춤했다. 발 하나 떼어서 계단에 올려 놓는 것이 불가능했다. 엄마와 내가 양쪽에서 부축했지만 계단 하나 오르고 나서 아빠는 거친 숨을 몰아 쉬더니 주저 앉았다. 또 다시 한 발을 떼더니 거친 숨을 몰아 쉬고 주저 않기를 반복했다. 온 몸에 땀이 흠뻑 젖은 상태에서 아빠는 방에 들어와 자리에 누웠다.
이제서야 아빠의 모습을 제대로 볼 수 있었다. 예전보다 4~5kg이 더 빠진 상태라 이제 아빠는 뼈만 남은 상태였다. 그러니 자신의 의지로 걸을 수 없는 것이 당연했다. 사람의 몸이 이렇게까지 뼈만 남아있을 수는 없었다. 또다시 흐르는 눈물을 감추느라 빨리 내 방으로 돌아왔다. 아빠의 기침은 차도가 있는 듯했다. 하지만 여전히 아무것도 먹지 않으려 했고 누워서 잠만 잤다. 마치 살아있으면서도 죽은 것 처럼..
잠깐 마주쳤던 간병인과 엄마는 꽤 많은 대화를 나눴던 것 같다. 그녀의 가족관계부터 그동안 간병했던 사람들 얘기까지..그러면서 아빠처럼 양반인 사람은 없다고 했단다. 그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말조차 할 기운이 없어서 늘 잠만 잤기 때문에 간병인 입장에서 어려운 환자가 아니었을 것이다. 아빠가 이런 말도 했다고 했다. 퇴원해서 집에 가면 그동안 먹고 싶었던 음식들 모두 먹겠다며 기대에 가득 차 있었다고 했다. 실제로 아빠는 집에오자마자 그동안 먹고 싶었던 음식들중 냉면을 사다 달라고 했다. 아프기 시작하면서 아빠는 냉면을 즐겨 드셨다. 언젠가 입맛이 없었을 때 냉면을 먹고 식욕이 돌아왔던 것을 기억 때문인지 냉면을 찾으셨던 것 같다. 냉면이라도 먹고 빨리 기운을 차리고 싶으셨던 것이다.
엄마는 아빠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냉면을 사러 갈 채비를 하셨다. 엄마는 마음이 급해서 이리저리 뛰어다닐 것이 뻔했지만 업무시간 때문에 동행할 수 없었다. 잠시후 돌아온 엄마는 초봄인데도 이마에 땀이 방울방울 맺혀 있었다. 하지만 옷도 갈아입지 못한 상태에서 아빠에게 줄 냉면을 준비하고 있었다. 하지만 아빠는 마음과는 다르게 냉면이 넘어가지 않았던 것 같다. 몇 가닥 입에 넣더니 젓가락을 손에서 내려 놓으셨다. 엄마의 걱정은 계속되었다. 아무것도 먹지 못하는 아빠의 건강 상태와 그런 아빠를 간병해야 하는 상황들에 대해.
어느날 외근 일정으로 집을 비웠다가 돌아와서 저녁을 먹는데 엄마는 나의 먹는 모습을 한참을 바라보더니 아빠가 차를 팔라고 했다고 전했다. 아빠에게 차는 본인의 두 다리와 같았다. 가까운 거리를 이동하더라도 항상 차로 움직였던 아빠였고 건강이 회복되면 엄마와 이곳 저곳 다니면서 맛있는 음식을 먹겠다는 희망으로 차에 대한 집착이 강하셨다. 병원에 입원했을 때에도 엄마에게 전화하여 ‘차 시동을 켜둬라’, ‘차에 기름을 넣어둬라’라고 잔소리를 할 정도였다. 그러던 아빠가 이제 차를 팔라고 했단다. 그 순간 직감했다. 아빠는 이제 모든 것을 내려 놓았구나. 자신이 더 이상 예전처럼 건강해질 수 없다는 것을, 그리고 이제 죽음을 받아 들여야 한다는 것을. 엄마의 말을 들으면서 밥을 먹는데 목이 메였다. 밥이 넘어가지 않고 가슴에 얹혀 있는 것 같았지만 내색할 수는 없었다.
그리고 다음날 또다시 엄마는 내가 밥먹는 모습을 한참을 바라보더니 이렇게 말했다. ‘오늘 아빠가 울었어, 내 손을 잡고 그동안 고생 많았다고 계속 울더라’
아빠와 44년을 살았지만 아빠가 우는 모습을 단 한 차례도 본 적이 없다. 자식한테 눈물을 보이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 아빠가 어떤 마음으로 울면서 엄마에게 그동안 고생만 시켜서 미안하다는 말을 전했던 것일까?
가슴이 아팠고 지금도 아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