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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지영 Sep 14. 2022

갑작스러운 이별

병원에서 퇴원한 아빠는 기력이 없으신지 잠만 잤다. 실제로 잠을 자고 있는 것인지 눈만 감고 있었던 것인지 구분할 수 없었다. 엄마가 말을 걸면 대답을 하지 않거나 대답이 힘들다고만 했다. 숨만 쉬는 것조차 힘든 사람에게 대화는 사치스러운 일이었다. 엄마가 부축을 한다고 해도 화장실 거동도 할 수 없을 만큼 쇠약해진 아빠와 그런 아빠를 간병해야 하는 엄마를 위해 의료용 침대를 사드리기로 했다. 몇 일전 동네를 지나면서 의료용 기기를 임대해주는 상점을 봤던 것을 기억하고 아빠에게 의료용 침대를 선물해드리면 좋을 것 같다는 의견을 내놓았더니 부모님 모두 좋다고 하셨다. 엄마는 아빠를 일으킬 때 허리에 무리가 가는 것을 걱정하였다. 디스크로 힘들어하는 엄마에게 아빠의 병간호는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아빠 입장에서도 엄마가 부축해준다고는 하지만 일어서고 앉는 것이 힘들었을 것이다. 말이 나온 김에 엄마와 당장 상점에 방문하여 비용을 알아보았다. 의료용 기기의 임대료의 경우 중증환자로 진단받은 경우가 아니면 꽤나 비싼 가격이었다. 월 10만원이 넘는 금액이 부담스러워서 중고로 의료용 침대를 구매했고 다음날 받기로 했다. 아빠는 침대가 도착할 때까지 언제 도착하는지 수시로 물으셨다. 또 엄마에게 ‘역시 딸 딸 밖에 없어’라고 하셨다고 했다. 몇 개월을 누워만 있었던 아빠는 욕창 때문에 고생하셨다. 그래서인지 침대를 사드리겠다는 나의 제안에는 더 없이 좋아하셨던 것이다. 예정대로 침대는 다음날 오후에 도착했고, 엄마는 침대와 함께 사용할 전기장판과 가벼운 담요를 사기위해 시장으로 향했다. 세팅이 끝나고 엄마와 나의 부축으로 아빠는 침대에 누우셨다. 위치 조정을 하면서 좋아하셨던 모습이 지금도 눈앞에 선하다. 또 아빠는 기분이 좋았는지 평소와 다르게 많은 양의 식사를 하셨다. 평소 같으면 하루에 한 숱가락도 안 드셨지만 그날은 아침, 점심과 과일 주스까지 드셨다. 이렇게만 잘 드신다면 앞으로 더 오래 살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이 있었다. 

그리고 다음날 새벽 엄마가 내 이름을 불렀다. 바로 눈을 뜨고 엄마가 부르는 곳으로 가보았다. 화장실이었다. 거동이 불편한 경우 소변통을 사용하지만 아빠는 소변통을 사용하는 것이 불편하다고 하셨다. 그날도 엄마의 부축으로 화장실을 가셨던 것이다. 화장실에 갔을 때 엄마는 아빠가 이상하다고 했다. 아빠가 기운없이 쳐져 있고 아무리 불러도 대답이 없다면서 아빠를 방으로 같이 옮기자는 것이었다. 엄마와 나는 양쪽으로 아빠를 부축하여 방으로 옮겼다. 처음에는 아빠가 진짜 기운이 없었던 것으로 생각했다. 방으로 옮겼지만 아빠가 숨을 쉬지 않는 직감하고 119에 전화했다. 여자분이 전화를 받고는 환자가 의식이 있는지를 물었다. 나는 의식이 없다고 답변했다. 그랬더니 숨을 쉬는지 물었다. 가슴이 위아래로 움직이는지 물었다. 나는 아빠가 숨을 쉬는지 코 앞에 손을 대보았다. 반응이 없었다. 물론 가슴의 움직임도 없었다. 겁이 났고 전화를 통해 들리는 목소리가 희미해 졌지만 집중하려고 노력했다. 

머리는 낮게 유지하고 지금부터 심폐소생술을 할 테니 구급차가 도착할 때까지 가슴을 압박하는 행위를 계속하라고 했다. 나는 시키는 데로 따라했다. 내가 하고 있는 행동이 맞는지 틀린지 확신할 수 없었지만 열심히 따라했다. 그렇게 5분인가 10분이 흘렀더니 구급차가 도착했다. 구급대원들은 아빠의 상태를 확인하더니 엄마와 나에게 물었다. 지병은 있는지, 왜 의식을 잃었는지 그리고 마지막으로 진짜로 환자를 살릴 것인지..

환자를 살릴 수는 있지만 살린다고 해도 의식이 돌아올 것이라는 장담은 없으며 심폐소생술로 가슴뼈가 모두 부러질 수 있다는 것이다. 지금의 상황을 고려했을 때 환자를 살리는 것에 대해 가족이 선택하라는 것이었다. 그때 엄마의 선택은 아빠를 보내주는 것이었다. 이미 양쪽 폐는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상황이었고 신장에도 암이 있어서 소변을 볼때마다 피가 섞여 나오는지 소변색은 빨간색이었다. 이런 상태에서 아빠가 목숨을 건진다고 해도 고통스러운 나날의 연속일 것이라는 생각에 엄마는 어려운 결정을 한 것이었다. 

사람의 목숨이 이렇게까지 쉽게 끊어질 수 있단 말인가. 아빠는 그 흔한 유언 한마디 남기지 않았다. 지방에서 직장 생활을 하고 있는 동생이 다음날(주말에) 오기로 되어있었지만 아빠는 끝내 동생 얼굴도 보지 못하셨다. 그리고 사드렸던 침대도 단 하루를 사용해보지 못하셨다. 

아빠를 보내드리기로 결정한 순간 구급대원들은 이제 경찰에 연락하겠다고 했다. 경찰이 도착하면 본인들은 철수하겠다는 것이었다. 병원에서 사망할 때와는 다르게 자택에서 사망할 경우 사인을 밝혀야했기 때문에 절차가 복잡했다. 경찰이 도착했고 구급대원들은 철수했다. 하지만 경찰은 과학수사대가 와서 사인을 확인하고 마지막으로 의사가 사망원인을 진단해야 모든 절차가 끝난다고 했다. 하지만 의사는 9시 이후에나 출근하기 때문에 그때까지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이때부터 나는 바빴다. 아빠의 장례절차를 챙기는 것은 오롯이 내 몫이었다. 구급대원들의 ‘사망하셨습니다’라는 진단과 함께 동생에게 전화를 걸어 소식을 알려야 했고 장례식과 상조회사를 알아 봐야했다. 아빠가 좀 더 살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던 가족들은 어떤 준비도 해놓지 않았다. 집 근처 모든 병원을 알아봤지만 장례식장이 비어 있는 곳이 없었다. 그때 당시 뉴스에서는 코로나19 때문에 사망자가 급증하여 3일장이 아닌 4일장이나 5일장을 하는 경우가 많다는 소식을 전하곤 했었다. 역시나 다를까 알아보는 장례식장마다 비어 있는 방이 없다는 것이었다. 결국 엄마는 교회 목사님에게 전화를 걸어 상황을 알렸고 목사님은 특정 장례식장을 알려주시면서 연락을 해보라고 하셨다. 뿐만 아니라 잘 알고 있는 상조회사 직원이 있다면서 연락해 보시겠다고 했다. 다행히 장례식장에 자리가 있었고, 잠시후에 상조회사 직원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정신없이 장례식장과 상조회사를 알아보니 이제서야 실감이 났다. 하염없이 눈물이 흐르는데 과학수사대에서 도착했다. 집 주위 사진을 찍더니 마지막으로 고인의 사진도 찍어야 한다면서 가족들은 보지 않는 것이 좋다고 했다. 모든 옷을 벗기고 사진을 찍어야 했기 때문에 고인을 위해서도 가족을 위해서도 보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하는 것 같았다. 

30분 후쯤에 장례식장 차량이 도착했지만 여전히 과학수사대는 사진을 찍고 있었다. 그렇게 20분쯤 더 시간이 흐른 후에 과학수사대는 별다른 소견이 보이지 않는다는 내용을 경찰에게 알렸고, 경찰과 과학수사대 모두 철수했다. 그때 즈음에 지방에 있던 동생이 도착했다. 울면서 도착한 동생이 안쓰러웠고 안타까웠다. 하지만 가족들이 슬퍼할 시간은 없었다. 마지막으로 아빠를 장례식장으로 옮겨야 했기 때문이다. 아빠를 옮겨갈 기사분은 아빠를 덮어줄 얇은 이불이 있는지 물었다. 과학수사대에 의해 알몸이 된 아빠를 이불로 덮어 옮겨야 했다. 이때 역시 장례식장 기사분은 가족들이 지켜 보지 못하도록 했다. 머리 끝부터 발 끝까지 이불로 덮여진 아빠를 동생과 기사분이 들어서 장례식 차로 옮겼다. 병원에 도착한 시간이 7시 30분 즈음이었다. 엄마가 나를 불렀던 시간이 2시 40분 즈음이었으니까 꽤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가족들은 여전히 슬퍼할 겨를이 없었다. 이제 마지막으로 의사의 진단(정확히 검안서라고 했다)이 필요했고, 아빠를 모실 방이 비기를 기다렸다. 병원에서는 장례식장 방이 대략 11시즈음에 비워질 예정이므로 집으로 돌아가서 아빠의 영정 사진을 챙겨오라고 했다. 이상한 것은 이 시간부터 장례식장 방이 준비되는 데까지 걸린 시간이 몇 년처럼 길게 느껴졌다는 것이다. 신발장에 보이는 2만원짜리 아빠의 운동화, 의료용 침대, 의료용 침대에 놓여진 아빠의 모자(항암치료 때문에 머리가 빠진 아빠는 늘 모자를 쓰고 있었다)를 보는데 미안함이 밀려왔다. 단 한번도 사드리지 못한 운동화가 왜 그렇게도 마음에 걸렸는지 모르겠다. 하염없이 눈물만 흘렀지만 내가 목 놓아 울면 엄마와 동생이 더 슬퍼할 것 같아서 몰래 숨어서 울었다. 울고 또 울어도 눈물은 하염없이 흘렀다. 

살면서 이렇게까지 울어본 기억이 없다. 아빠를 위해 어떤 수고와 노력을 해보지 않은 자식이 할 수 있는 일은 오직 미안함으로 인한 눈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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