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와의 여행
2007년은 엄마의 환갑이 있는 해였다. 엄마 역시 괜히 친척들에게 부담주기 싫다는 이유로 식사 모임은 하고 싶어 하지 않았다. 나는 부모님의 해외여행을 알아보았다. 아빠는 예전에 회사에서 하와이 여행을 보내 줘서 회사 지인 분과 함께 해외여행을 해 본 경험이 있었지만, 엄마는 해외여행 경험이 한 번도 없었다.
내가 가끔 들어가곤 했던 딴지일보 사이트에 딴지 관광청이라는 코너가 있었는데, 다른 여행사들의 비슷비슷한 여행 상품과 비교했을 때, 쇼핑 일정을 줄이거나 제외하고, 보다 고객 지향적인 일정으로 짜인 여행 상품을 제안하고 있었다. 하지만 딴지 관광청은 당시 시작 단계에 있었고 취급하는 여행 상품이 많지는 않았다. 효도 여행 상품으로는 태국 여행을 제안하고 있었는데, 엄마는 불면증이 있어서 여행 자체를 두려워하고 있었기 때문에, 태국은 너무 멀게 느껴져서 그 상품은 포기했고, 다만 딴지 관광청에서 알려준 효도 여행 상품을 선택하는 기준만 참조하였다. 그 기준은 다음과 같다.
- 어르신들의 체력을 고려하여 너무 먼 곳으로 가지 않는다.
- 대부분의 어르신들이 언어 문제를 부담스러워하기 때문에 비행기는 반드시 국적기를 이용한다.
- 휴양 위주의 일정이나 자유 여행보다는 너무 힘들지 않은 관광 중심의 여행 상품을 알아본다.
- 식사에 한식이 포함되는 것이 좋다.
이런 기준으로 선택한 지역이 일본 홋카이도였다. H 여행사의 나름 프리미엄 상품이었는데, 3박 4일 동안 한국인 투어 가이드가 동반되고, 온천 호텔에 저녁 뷔페도 포함된다고 했다. 엄마 아빠는 예상했던 대로 안 가겠다고 펄쩍 뛰었다. 자식이 힘들게 번 돈으로 당신들이 여행을 갈 수는 없으며, 민준이 키우려면 돈도 많이 드는데 쓸데없는데 돈을 쓰지 말라는 것이었다.
나는 결혼 후 가끔 속상했던 것 중 하나가 시부모님들은 똑같은 상황에서 엄마 아빠처럼 행동하지 않는데, 엄마 아빠는 유별나게 자식들한테 폐 끼치는 것을 싫어하고, 작은 거 하나라도 받을라치면 엄청 미안해하는 것이었다. 전통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부모님들 세대에서는 당연한, 아들 가진 부모와 딸 가진 부모의 차이였을까? 하지만 나도 직장 생활을 해서 가계에 기여하고 있었고, 내가 직장 생활을 계속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 중 하나가 엄마의 도움 덕분이 아닌가? 여하튼 최근까지도 시부모님들이 자식으로서 당연히 해야 한다고 생각하시는 걸 엄마 아빠는 끝끝내 안 받겠다고 고집을 부리는 경우가 많았다.
여러 차례의 설득 끝에 여행은 가는 것으로 했지만, 나는 여전히 해외여행이 처음이고 언어 문제도 있고 평소 몸도 약한 엄마를 아빠와 둘이서만 보낸다는 것이 여행 기간 내내 불안했다. 혹시 익숙지 못한 상황에서 실수라도 해서 난감한 일을 겪고, 엄마 아빠가 부끄러워할 일이 생길까 봐 말이다. 어르신들이 많이 신청한 상품이어서 그런지 여행사의 배려로 이틀째던가 사흘째던가 엄마 아빠가 현지에서 집으로 전화를 할 수 있었다. 관광 후 호텔로 돌아와 온천욕도 하고 저녁 식사도 푸짐하게 잘 먹고 지금은 쉬고 있는 중이라고 밝은 목소리로 이야기를 해서 좀 안심이 되었다.
한국으로 돌아올 때 엄마 아빠는 미역 스낵과 같은 홋카이도의 특산물을 여러 가지 사 와서 나눠 주었다. 다행히 여행은 즐거웠고 별 문제도 없었다고 했다. 어디 가서 꽃도 보고 타워도 봤다고 하고, 관광 가이드한테 들은 이야기도 우리에게 전해 주면서 자식 덕분에 편한 여행 잘하고 왔다고 한동안 고마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