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와의 여행
2000년은 아빠의 환갑이 있는 해였다. 시아버님이 아빠와 동갑이신데 시골에는 아직 환갑잔치의 관행이 남아 있어서 서산에 사시는 시아버님은 조촐하게나마 환갑잔치를 하기로 하셨다. 하지만 엄마 아빠는 한사코 싫다고 했다. 그러면 제주도 여행이라도 가자고 해서 가게 된 여행이었다. 엄마가 당시 민준이를 봐주고 있었기 때문에 엄마에게 고마운 마음도 있었다.
아직 아기였던 민준이를 데리고 엄마 아빠와 함께 제주도로 향했다. 이때 민준이가 비행기 안에서 어찌나 울었던지 정말 난감했던 기억이 난다. 엄마 아빠에게는 5성급 호텔이었던 S호텔 3박을 예약해 드리고, 우리는 경비 절약을 위해 좀 급이 낮은 호텔 2박을 예약했다. 즉 마지막 날은 엄마 아빠만 제주도에 있는 일정이었는데 아빠가 운전을 잘하시기도 하고, 마지막 날은 잠수함 승선 예약이 되어 있었기 때문에 두 분만 남겨두고 과연 문제가 없을까 하는 걱정은 별로 하지 않았다.
도깨비 도로, 성읍 민속 마을, 표선 해수욕장, 천지연 폭포, 비자림 등 제주도의 이름난 관광지를 다니고, 점심 저녁 다양한 먹거리도 먹어 보았다. 엄마 아빠는 역시 좋은 호텔은 다르다면서 고마워했고, 매일 아침 조식을 어떤 걸 먹었는지 자랑하기도 했다. 하루는 한식, 다른 날은 일식, 나를 두 분이 알아서 다양하게 잘 드시고 계셨다. 그 당시 전복은 귀한 음식이었는데 제주도에 온 김에 해녀들이 잡은 전복을 꼭 먹어봐야 한다고 해서 아빠가 거금을 주고 아주 커다란 전복을 사서 어른들은 회를 민준이는 죽을 먹었다. 그리고 서울로 돌아오는 날에는 자식들 먹으라고 제주 밀감을 여러 박스 사들고 오셨다.
이 작은 여행이 엄마 아빠가 힘들고 지칠 때 가끔씩 꺼내 볼 수 있었던 행복한 기억의 한 조각이었기를 바랄 뿐이다. 이런 기회를 좀 더 자주 가졌으면 좋았을 텐데, 살다 보니 실행은 고사하고 계획 조차 쉽지 않았고, 내리사랑이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닌 것이, 부모님은 계속 뒷전으로 밀리고, 자식 위주로 삶이 흘러가게 되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