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의 차이를 넘어서
베트남 직원들과의 첫 만남은 예상보다 더 어려웠다. 낯선 환경에서 새로운 업무를 시작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았고, 그들과의 소통도 마찬가지였다. 겉으로는 모두 친절하게 미소를 지었지만, 그 뒤에 숨겨진 진짜 감정을 읽어내는 일이 생각보다 까다로웠다. 처음에는 그 미소가 모든 것을 해결해 줄 것처럼 느껴졌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것이 때로는 거리감을 나타내기도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특히, 한국에서 팀워크와 진정성을 강조하며 살아온 나로서는 이러한 차이가 더 크게 느껴졌다.
지금은 5년이 지난 후 오래동안 같이 일한 직원들과 웃으며 이 이야기를 나누지만, 베트남에서 정착하던 초기 단계는 내 커리어 중 가장 힘든 시기였다. 내 편이 없는 듯한 느낌, 의논할 사람도, 공감할 사람도 없는 상황이 마치 무인도에 홀로 떨어진 것처럼 느껴졌다.
어떻게 하면 이들과 공감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함께 호흡을 맞춰 일할 수 있을까? 이 질문이 매일 나를 괴롭혔다.
그러던 중, 남자 직원들이 퇴근 후 근처 공원에서 농구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역시 남자는 스포츠라는 생각이 들었다. 함께 농구를 하며 땀을 흘리고, 운동 후에 마시는 맥주 한 잔은 말이 통하지 않아도 그들과의 거리를 좁히는 데 충분했다. 시작은 이렇게 되는 거구나 싶었다. 그들도 퇴근 후 운동을 하고, 친구들과 어울려 술을 마시고, 회사 이야기를 하며 일상의 스트레스를 풀고 있었다. 그들의 삶은 나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때부터 매일 저녁 함께 식사하고 운동하면서 나는 그들의 일상 속으로 자연스럽게 스며들어갔다.
하지만 나는 회사를 대표해 일을 하러 온 사람이지, 단순히 친구를 만들기 위해 온 것은 아니었다.
업무에서도 문화적 차이는 크게 드러났다.
가장 먼저 부딪힌 것은 일 처리 방식의 차이였다. 한국에서는 빠르게 결정을 내리고 신속하게 실행하는 것이 중요하지만, 베트남에서는 속도보다는 실수를 피하려는 경향이 강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속도는 느리고, 자잘한 실수나 숫자 오류는 빈번하게 발생했다. 지시한 사항에 대해 중간 보고를 요청했음에도, 데드라인 전까지는 보고가 없었고, 막상 데드라인에 제출된 보고서는 완성도가 떨어졌다.
이를 통해 나는 명확한 중간보고 일정과 지시를 설정하는 것이 필수라는 점을 깨달았다. 영어로 소통하는 데서 오는 문제도 있었지만, 명확한 지시와 일정 관리가 커뮤니케이션의 손실을 줄여주는 중요한 요소라는 것을 배웠다.
이때부터 구글 캘린더를 적극 활용하기 시작했다. 지금도 내 캘린더는 스케줄로 빼곡히 차 있어, 일상적인 점심/저녁 약속부터 모든 미팅까지 기록하고 있다. 내 회사 계정의 구글 캘린더는 직원들과 공유되어, 누구나 내 일정을 확인할 수 있도록 했다.
첫 회의에서도 이러한 차이는 분명했다. 회의는 영어로 진행되었지만, 언어 장벽이 큰 장애물로 작용했다. 내 영어 발음과 표현이 그들에게 익숙하지 않았고, 그들의 발음도 내가 평소 듣던 영어와 달랐다. 이로 인해 내 의도가 정확히 전달되지 않았고, 그들의 제안 역시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회의는 점점 길어졌고, 중요한 논의가 지연되기 일쑤였다. 한국에서는 30분이면 끝날 회의가 여기서는 2시간 이상 걸렸다. 나는 이러한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지 깊이 고민하게 되었다. 이 문화 속에서 내가 맞춰야 할 부분은 무엇인지, 그리고 그들과 더 나은 소통을 위해 어떤 노력이 필요한지를 스스로 끊임없이 질문했다.
소통 방식에서도 차이는 분명했다. 한국에서는 직접적으로 말하고 피드백을 주고받는 것이 일반적이었지만, 베트남에서는 좀 더 우회적인 표현을 쓰는 경우가 많았다. 겉으로는 긍정적인 답변을 하면서도, 실제로는 아직 준비되지 않거나 결정을 내리지 못한 경우가 종종 있었다.
또한, 실수에 대한 태도에서도 큰 차이를 느꼈다. 베트남에서는 잘못을 인정하는 일이 드물었고, '미안하다'는 말을 듣는 것조차 어려웠다. 사람들은 베트남인들이 자존심이 세다고 말하지만, 내가 느낀 바로는 잘못을 인정하면 돌아오는 불이익을 피하기 위해 방어적인 태도를 취하는 경우가 많았다.
한 번은 매번 지각하던 팀장에게 조용히 타이른 적이 있다. "왜 자꾸 지각하나요?"라고 묻자, 그 팀장은 새벽 5시에 일어나 아침 식사를 준비하고, 요가를 하고, 가족을 돌보아야 한다고 했다. 가족을 돌보는 건 이해했지만, 요가는 좀 예상 밖이었다. 나는 그에게 교통 체증을 피하려면 30분만 일찍 나오면 해결될 것이라고 조언했다. 그러나 그 직원은 "그러면 4시 반에 일어나야 한다"고 답했다. 결국 지각을 고치겠다는 말은 끝내 듣지 못했고, 1개월 후 그 직원은 "일찍 일어날 자신이 없다"며 퇴사했다.
이 경험을 통해, 그들이 지각이 잘못된 행동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문제를 자신의 책임이 아닌 외부 요인으로 돌리는 경향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것이 나에게 혼란을 주었고, 어떻게 이 문제를 해결할지 고민하게 되었다.
그 후 나는 그들의 사고방식을 이해하고, 동시에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찾아야 했다. 그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을 존중하면서도, 어떻게 책임감을 높일 수 있을지 고민했다. 회의는 베트남어로 진행해 소통의 속도를 높였고, 구글 번역기를 활용해 실시간으로 내용을 파악했다. 회의가 끝날 때마다 논의된 내용, 각자의 역할, 데드라인을 명확히 정리해 책임 소재를 분명히 하는 습관을 들였다. 처음에는 이 방식이 낯설고 다소 비효율적으로 보였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들의 대화 방식과 문제 해결 접근법에 적응하며 좀 더 효율적인 논의를 할 수 있었다. 결국, 외부 요인에 대한 핑계를 줄이고 책임을 명확히 하되, 그들의 문화를 존중하는 접근이 더 나은 결과를 가져왔다.
베트남에서 일하면서 또 한 가지 눈에 띈 차이점은 회사 행사에 대한 태도였다. 한국에서는 회사에서 주최하는 행사에 참여하는 것을 부담스럽게 느끼는 사람들이 많고,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하지만 베트남에서는 달랐다. 베트남 직원들은 회사에서 마련하는 각종 행사나 이벤트에 큰 의미를 두고 있었다.
특히 여성의 날이나 컴퍼니 트립, 생일 파티 같은 행사들이 직원들에게는 중요한 친목 도모의 기회이자, 회사 생활의 중요한 일부로 자리 잡고 있었다. 처음에는 이런 문화가 낯설었다. 한국에서는 이런 행사에 억지로 참여하는 것이 오히려 부담이 되곤 했는데, 베트남에서는 직원들이 자발적으로 행사를 준비하고 서로를 챙기며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면서 문화적 차이를 실감했다.
특히 여성의 날에는 모든 남자 직원들이 꽃과 선물을 준비해 여자 직원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표현하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졌다. 처음에는 이 문화가 어색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것이 단순한 의무가 아니라 서로를 존중하고 축하하는 자연스러운 문화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또 하나 기억에 남는 것은 컴퍼니 트립이었다. 매년 직원들과 함께 떠나는 여행은 그저 업무의 연장이 아니라, 팀워크를 강화하고 서로를 더 깊이 이해하는 소중한 시간으로 여겨졌다. 한국에서는 이런 행사에 불참하려는 사람들이 많지만, 베트남에서는 오히려 여행을 통해 동료들과 더 가까워지고 싶어 했다. 그들은 이 시간을 통해 회사 생활에서 느낀 스트레스를 풀고, 새로운 에너지를 얻는 계기로 삼았다.
이러한 행사는 나에게도 큰 배움이었다. 처음에는 의무적으로 참여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직원들과 함께 어울리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것이 업무와의 균형을 맞추는 데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았다. 행사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직원들과의 관계가 훨씬 더 가까워졌고, 그들의 문화와 소통 방식도 더 잘 이해하게 되었다.
이처럼 베트남에서는 회사 행사와 친목 활동이 단순한 일상에서 벗어난 여유로운 시간이자, 회사 생활을 더 풍부하게 만드는 중요한 요소로 자리 잡고 있었다. 이러한 경험들을 통해 나는 업무뿐 아니라 그들의 문화 속에서 더 나은 관계를 형성해 나갈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