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응은 누구에게나 쉽지 않다.
베트남에 처음 왔을 때, 나는 혼자 먼저 와서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 했다. 그런데 코로나로 인해 예상보다 더 오랜 시간 동안 가족을 보지 못할 줄은 몰랐다. 비행기 길은 막히고, 입국을 하더라도 격리기간이 3주나 되었기 때문에, 이미 격리를 경험한 나로서는 가족들이 느낄 고통을 예상할 수 있었기에 쉽게 그들을 부를 수 없었다.
10개월이라는 긴 시간이 지나고, 연말이 되어서야 나는 더는 기다릴 수 없었다. 4살 된 아들이 너무 보고 싶었고, 혼자 지내는 시간이 점점 더 힘들어지고 있었다. 결국, 가족들이 오게 되었고, 우리는 베트남에서 진짜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가족들이 도착했을 때, 기대와 걱정이 교차했다. 특히 아내가 베트남 생활에 얼마나 적응할지 불안했다. 하지만 나의 걱정이 무색하게도 아내는 생각보다 빠르게 베트남 생활에 적응했다. 2주간의 격리 기간을 마친 후, 그녀는 마치 오랫동안 이곳에서 살아온 사람처럼 자연스럽게 일상에 녹아들었다. 격리 중에 만난 다른 가족들과 교류하면서 시내를 돌아다니고, 베트남 생활에 전혀 어려움을 느끼지 않았다. 오히려 나는 아내를 보며 너무 걱정했던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다. 그녀는 나보다 훨씬 빠르게 맛집을 찾아내고, 아이의 유치원과 학교를 알아보는 과정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해주었다.
정작 문제가 된 건 아들이었다.
아들의 적응은 예상보다 훨씬 어려웠다. 4살이라는 나이에서 겪는 변화는 매우 클 수밖에 없었다. 모든 것이 새롭고, 낯선 환경에서 아이는 많은 혼란을 겪었다. 특히 언어가 가장 큰 장벽이었다. 말이 통하지 않으니 기본적인 의사소통도 어려웠고, 그로 인해 불안감이 커져만 갔다.
아이는 베트남이 어떤 나라인지, 왜 우리가 여기 와 있는지에 대해 끊임없이 물었다.
"왜 한국은 추운데, 여기는 춥지 않아?"라거나, "베트남이 뭔데?" 같은 질문이 반복되었다. 우리는 가능한 한 쉽게 설명해주려 노력했지만, 이해하기에는 어려운 부분이 많았다. 새로운 나라, 새로운 환경, 낯선 사람들 속에서 아이는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다.
당연히 모든 주재원들이 고민하듯이 우리도 아이를 영어유치원 보내기로 했다. 아내와 논의도 많이 하고, 한글의 중요성도 우리 둘다 이해하고 있었지만, 주변의 조언을 듣고 빨리 영어에 노출되는 것이 좋겠다는 결정을 내렸다. 하지만 그 결정이 과연 옳았을까?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아이와 집에서는 얘기를 많이 하려고 노력하는 편인데, 어느날 유치원에서의 생활을 묻는 질문에 아이의 대답에 나는 충격을 받았다.
"아빠, 얘기를 하고 싶은데, 영어라서 얘기를 할 수가 없어요."
그리고는 "한국에 가면 안 돼?"라고 물었다.
그 말을 들었을 때, 나는 가슴이 너무 아팠다. 아이가 느꼈을 좌절과 외로움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그저 작은 아이였지만, 그 순간 그 아이가 겪고 있는 감정의 무게는 결코 가벼운 것이 아니었다. 아내와도 다시 한번 진지하게 이 문제에 대해 얘기했고, 부모의 욕심이 아이의 적응력에 대한 기대에 지나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다.
이미 시간이 흘렀고, 다시 한국 유치원으로 옮기는 것은 또 다른 어려움을 피하는 것밖에 안 될 것 같았다. 대신, 아내는 아이의 영어 공부를 옆에서 도와주고, 나는 집에서 영어로 게임을 하며 아이가 언어에 대한 거부감을 줄일 수 있도록 노력했다.
다행히 시간이 지나면서 아이는 점차 친구를 사귀고, 간단한 영어 표현을 배우며 조금씩 자신감을 되찾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매일 아이의 마음을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아이에게 필요한 것은 단순히 학습보다도, 그 마음을 헤아리고 위로해 주는 것이었다.
지금은?
어제 아이는 나에게 말했다.
"아빠, 한국 안 가면 안 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