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관계, 그리고 일상의 조화
사실 스트레스라는 것이 마음먹는 대로 조절 할 수 있다면 그것이 스트레스겠냐만. 주재원으로 일을 하러 나오시는 분들은 특히나 좀 더 다른 마음가짐이 필요한 것 같다.
베트남에서의 주재원 생활은 기대 이상으로 많은 도전과 마주하게 했다. 새로운 환경에서 일을 시작했을 때 나는 모든 것을 통제하고, 철저하게 관리해야 한다는 압박감을 스스로에게 부여했다. 처음에는 한국 본사와 현지 직원들 사이에서 모든 일을 조율하며 최선의 결과를 만들어야 한다고 믿었다. 매일 밤 지시가 오고, 보고서가 이어지며 해결할 문제가 끊이지 않았다. 그 과정에서 나 스스로 완벽함을 추구하는 강박에 사로잡히게 되었고, 그 결과는 오히려 스트레스로 이어졌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나는 한 가지 중요한 깨달음을 얻었다. 모든 것을 통제하려고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었다. 베트남에서는 불확실성이 더 많았고, 내가 예상하지 못한 변수들이 계속 생겼다. 그러다 보니 모든 일에 완벽함을 추구하기보다, 그때그때 상황에 맞게 균형을 찾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다. '내려놓음의 미학'이라는 말처럼, 내가 해결할 수 없는 것들을 자연스럽게 흘려보내는 법을 배우는 것이 나의 불안을 다스리는 열쇠가 되었다.
조직에서 발생하는 모든 문제를 나 혼자 해결해야 한다는 책임감에서 벗어나기 시작하자, 오히려 내가 믿고 있는 동료들, 조력자들과의 협업이 더 원활해졌고, 나의 역할은 모든 것을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중요한 결정에만 집중하면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렇게 나는 조금씩 마음의 무게를 덜어낼 수 있었다.
주재원 생활에서 외로움은 피할 수 없는 감정이다. 특히 회사에 한국 사람이 거의 없을 경우, 한국어로 속마음을 나눌 사람을 찾기 어렵고, 현지 직원들과의 소통은 주로 업무에 한정되기 때문에 정서적 교감을 나누기 어렵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느낀 불안과 우울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는 사람의 존재가 무엇보다 중요했다. 때로는 친구, 때로는 가족. 중요한 것은 그들과 주기적으로 감정을 나누며 마음속에 쌓인 감정을 해소하는 시간이었다.
베트남에서 처음 맞이한 나의 시간은 고독과의 싸움이었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혼자 10달 가까이 외롭게 지냈다. 그때 우연히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을 소개받아 만났다. 우리는 금세 친해졌고, 힘든 생활 속에서 서로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났다는 사실이 나에게 큰 위안이 되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우리는 서로의 가족들과 교류하며 더 깊은 관계로 이어졌다. 이 소중한 인연이 나의 외로움을 달래주었고, 정착 과정에서 나에게 큰 힘이 되었다.
하지만 진정으로 나를 지탱해준 사람은 가족이었다. 한국에서의 삶은 항상 야근과 회식, 그리고 먼 출근길로 인해 새벽에 집을 나서고 늦은 밤에 돌아가는 것이 일상이었다. 그로 인해 가족과 보내는 시간은 한정적이었고, 늘 가족들과의 시간에 갈증을 느꼈다. 그러나 베트남에서는 나에게 주어진 책임과 권한이 늘어난 대신, 적어도 퇴근 후나 주말에는 나만의 시간을 가족과 함께 보낼 수 있었다. 이 시간은 내가 재충전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고, 스트레스 해소에 큰 도움이 되었다.
특히 7살 아들의 재롱은 나에게 가장 큰 위로가 되었다. 하루 종일 업무에 지치고 머릿속이 복잡해도, 집에 돌아와 아이가
"아빠, 놀아줘!"
라고 외치며 안기면 그 순간만큼은 모든 걱정이 사라졌다. 아이가 나에게 보여주는 무한한 에너지는 나에게 힘이 되었고, 그의 웃음소리와 천진난만한 모습은 나의 지친 마음을 달래주었다. 그의 재롱을 보고 있으면 마음속에 쌓인 무거운 감정들이 자연스럽게 풀리며, 나도 아이와 함께 어린아이가 되어 놀곤 했다.
가족과의 시간은 단순히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데 그치지 않고, 나를 다시금 힘내게 하는 중요한 원천이었다. 특히 아내는 나의 상태를 이해하고, 나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주었다. 내가 가진 부담과 어려움을 숨기지 않고 털어놓았을 때, 아내는 그저 나를 이해하며 조용히 나의 곁에 있어 주었다. 그녀는 나에게 "스트레스를 받으면서 왜 일을 해? 편의점 알바라도 하면 돼. 건강이 제일이야."라는 말을 해주며, 내가 나 자신을 너무 몰아붙이지 않도록 조언해주었다. 그 말은 나에게 큰 위로가 되었고, 더 이상 나의 감정을 숨기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을 주었다.
가족들과의 솔직한 소통은 나에게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을 주었다. 나는 더 이상 외로움과 스트레스 속에 홀로 갇혀 있지 않았다. 그들과 함께하는 시간 속에서 나는 조금씩 회복될 수 있었다.
주재원으로 일하다 보면 업무와 일상을 분리하는 것이 어려울 때가 많다. 업무의 특성상 본사와 시간대가 다르기도 하고, 중요한 일들이 주말이나 퇴근 후에 갑자기 발생하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업무에 대한 압박감이 나를 휘감았고, 쉬는 시간에도 일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래서 나만의 방법을 찾아야 했다. 퇴근 후와 주말에 업무에서 벗어나 나 자신만의 시간을 가지는 것은 필수적이었다. 처음에는 일을 완전히 잊는 것이 어려웠지만, 점차 나는 업무와 일상을 분리하는 습관을 형성했다. 완전히 연락을 끊는 대신, 우선 퇴근 후 최소한 1~2시간 정도는 알람을 끄고, 개인적인 시간을 가지는 규칙을 정했다. 이 시간 동안에는 휴대폰 알림을 무음으로 전환하여 업무 메시지에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것을 자제하고, 가족/친구와의 소통이나 개인적인 취미 활동을 찾으면서 시간을 보냈다.
주말 역시 아이와 함께 시간을 보내거나 친구들과 골프를 치는 등, 업무와는 전혀 상관없는 활동들을 하며 나만의 시간을 가지려 했다.
업무와 일상을 명확히 구분하는 습관은 단순히 스트레스를 줄이는 것 이상의 효과가 있었다. 그것은 내가 일을 더 효율적으로 처리할 수 있도록 도왔고, 재충전된 상태에서 더 나은 성과를 낼 수 있게 해주었다. 또한, 나 자신을 돌보는 방법을 배움으로써 더 균형 잡힌 삶을 살 수 있게 되었다.
베트남에서의 주재원 생활은 많은 도전과 함께 개인적인 성장을 가져다주었다. 불안과 우울을 겪었던 순간들이 있었지만, 내려놓음의 미학을 배우고, 마음을 나눌 사람과 함께하며, 업무와 일상을 분리하는 습관을 찾음으로써 나는 더욱 건강한 마음가짐을 유지할 수 있었다.
나만의 방법들이 아니더라도, 누구나 자신만의 스트레스 해소법은 반드시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주재원 생활을 하며 비슷한 고민을 하게 된다면, 이 글이 단순 방법론이 아닌 '똑같은 고민과 스트레스를 가지고 있는 주재원들이 나뿐만이 아니다' 라는 작은 위안이 되기를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