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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CM Tiger Sep 30. 2024

4장: 우울증 그리고 공황장애 - 관계안에서의 극복

사회적 동물

감추고 싶었던 고통


우울증과 공황장애는 서서히 나를 잠식했다. 처음엔 단순한 마음의 문제라고 생각했다. 쉽게 극복할 수 있을 거라 믿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상황은 악화되었다. 매일 아침 침대에서 일어나는 것조차 버거워졌다. 하루를 시작하는 일은 점점 부담으로 다가왔고, 출근길 발걸음은 한없이 무거웠다.


"밤사이 어떤 메일이 와 있을까?", "한국은 이미 업무 시간이 시작됐는데, 출근 전부터 전화가 오지는 않을까?" 눈을 뜨자마자 이 같은 걱정이 밀려왔다. 하루 종일 머릿속을 맴돌았다. 업무가 끝나면 편안함을 느낄 수 있어야 했지만, 오히려 불안감이 커져만 갔다. 집에 돌아오면 휴식이 기다리는 대신, 모든 것을 잊기 위해 바로 잠자리에 들었다. 퇴근 시간이 7시든 9시든 상관없이, 나는 집에 오자마자 이불 속으로 숨어들어 하루를 마무리했다. 그저 잠드는 것만이 내가 취할 수 있는 유일한 대처 방법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자도 피로는 사라지지 않았다. 10시간을 자고 일어나도 피로가 가시지 않았고, 점점 나 자신을 잃어갔다. 해야 할 일들은 점점 미뤄졌고, 사람들과의 약속도, 모임도 모두 거절했다. 나는 나만의 작은 섬에 고립되듯이 점점 더 사람들로부터 멀어져 갔다. 매일 반복되는 피로와 무력감에 짓눌려 버텨내기만 하는 삶이었다. 


저녁은 더 이상 휴식의 시간이 아니라, 모든 현실을 피하려는 도피처가 되었다.


이 불안감은 누구에게도 털어놓기 어려웠다. 마치 나만의 약점이 드러나는 순간, 나만 유별난 사람이 될 것 같았고, 사람들은 여전히 나를 '강한 사람'으로만 보고 있었다. 나는 그들의 기대를 저버리고 싶지 않았고, 스스로를 더욱 억눌렀다. 도움을 요청하는 것도, 나의 고통을 나누는 것도 불가능해 보였다. 결국, 나는 혼자서 그 무게를 짊어지며 더욱 깊이 고립되었다.


주말에도 마찬가지였다. 주말에 가까워질수록 더 불안감이 증폭되었다. 아무 일정도 잡지 않았고, 가족들은 내가 피곤해 보인다고 더 많은 휴식을 권했고, 나 역시 소통을 포기한채 공허함 속에있는 것이 자연스러워지고 있었다. 


마치 빠져나올 수 없는 깊은 터널에 있는 것만 갔았다.

빠져나오기 위해서는 회사를 빠져나오면 될까? 그 생각만이 머릿속을 맴돌았고, 그와 동시에 가장으로서 충돌되는 책임감과 매일 매일 터널안에서 싸우고 있었다.




사회적 동물 - 관계를 통한 극복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 속에서 작은 빛을 발견한 건 생각지도 못한 순간이었다. 하반기 전략 수립을 위해 베트남 각 팀의 리더들과 종일 진행한 워크숍 중이었다. 8시간이 넘는 회의 속에서 나는 점차 몰입하게 되었고, 혼자서는 해결할 수 없던 문제들이 그들과 함께 논의하며 풀리기 시작했다.


'내가 그들을 믿지 못했던 걸까?'


문득 그런 생각이 떠올랐다. 그들이 준비한 보고서들을 동료로서 다시 바라보니, 완벽하지는 않았지만 그들의 노력과 성장을 인정하게 되었다. 논리적으로 부족한 부분은 내가 채워주면 되는 일이었다. 그들과의 회의를 마친 후, 나에게 작은 변화가 찾아왔다.


회의가 끝난 후 함께한 저녁자리에서 나는 팀 리더들에게 내 마음을 솔직하게 털어놓을 수 있었다. 그동안 내가 느꼈던 업무의 부담과 과중함, 그리고 그들에게 기대하는 것들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들도 나에게 자신의 어려움을 솔직히 공유했고, 우리는 함께 일하는 방식과 목표에 대해 더 깊이 논의했다. 그 순간부터 나는 혼자가 아니라는 느낌을 받기 시작했다.


오랜만에 그들과 나눈 대화와 함께 술 한잔을 하며 나는 마음의 무거운 짐이 조금씩 내려가는 것을 느꼈다. 그들과의 소통이 나에게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았고, 매일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이 회사에서 내가 그들과 더 많은 대화를 나누며 연결될 필요가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이후 나는 의도적으로 그들과 더 자주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단순히 업무와 관련된 내용이었지만, 점차 개인적인 이야기도 섞였다. 그들과 함께 일하는 시간이 즐거워졌고, 그들 역시 나에게 조금씩 마음을 열기 시작했다. 대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고, 협력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서로에게 더 깊은 신뢰를 쌓아가고 있었다.


나는 회사에서 보내는 시간이 단순히 일하는 시간이 아니라, 나의 삶의 일부라는 사실을 다시금 실감하게 되었다. 그들과의 대화는 나를 더 강하게 만들었고, 비로소 나는 사회적 동물로서 관계 속에서 살아간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되었다.


나는 그제서야 깨달았다. 혼자서 싸우는 것이 아니라, 함께 걸어가며 해결해 나가는 것. 그들과의 소통과 관계 속에서 비로소 나는 터널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실마리를 찾았다.


나는 혼자가 아니었다.




나의 편 가족


나는 가족에게 나의 약한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된다고 믿었다. 가장으로서 내가 흔들리면 그들 역시 불안해할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건 잘못된 판단이었다. 오히려 내가 감정을 감추고 말이 없어질수록 가족은 더 큰 불안을 느끼고 있었다.


응급실을 다녀온 이후, 불안감은 더욱 심해졌다. 매일 밤 가슴이 답답하고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며 잠을 이루지 못했다. 하루는 술을 마시고 들어온 저녁, 아이가 잠든 후에 아내와 솔직한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내가 처한 현재의 상황, 마음속의 복잡한 감정들을 처음으로 모두 털어놓았다. 내가 그동안 얼마나 힘들었고, 무엇이 나를 짓누르고 있었는지 모두 고백한 순간이었다.

아내는 조용히 내 이야기를 듣더니, 예상치 못한 말을 건넸다.


"왜 그렇게 스트레스 받으면서 일해? 그냥 편의점 알바라도 하면 되잖아. 꼭 그렇게 책임감을 안고 살아야 해? 건강이 제일이잖아."


그 순간 나는 큰 충격을 받았다. 내가 혼자만의 무게를 짊어지고 가야 한다고 믿었던 책임감이 사실 나를 더 힘들게 했던 것이다. 아내의 말은 나에게 갑작스런 해방감을 주었다. 내가 감정을 감추며 살아가는 것이 오히려 나를 더 약하게 만들고 있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아내는 나의 고통을 함께 나누어주었고, 그 순간 나는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다시금 느낄 수 있었다. 그녀의 지지는 나에게 다시 힘을 불어넣었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용기를 주었다.


또한, 아들과의 시간은 나에게 특별한 위로가 되었다. 아이는 세상의 걱정과 상관없이 항상 밝고 순수했다. “놀아줘”라고 재잘거리는 아이를 보면, 그 순간만큼은 나의 무거운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아이의 웃음은 나에게 다시 살아갈 이유를 선물하는 듯했다. 그 작은 순간들이 나에게 소중한 힘을 주었다.


나는 더 이상 웃는 척, 괜찮은 척하지 않기로 했다. 내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고, 가족과 그 감정을 공유하는 것만으로도 나는 서서히 나아가고 있었다. 


혼자서 이겨내려 애쓰던 고통이, 이제는 더 이상 나만의 짐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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