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날 갑자기 찾아온 증상
나는 우울증이나 공황장애와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주변에 대화할 사람도 많았고, 나름대로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방법을 알고 있다고 자부했었다.
하지만, 우울증과 공황장애는 나에게 어느 날 갑자기 찾아왔다.
불안 증상이 처음 찾아왔을 때는 그저 피곤함의 누적이라고 생각했다. 매일 반복되는 업무와 본사와의 소통이 힘겨웠지만, 어느 정도는 내가 감내해야 할 스트레스라 여겼다. 하지만 어느 날부터인가, 메일이 도착할 때마다 가슴이 답답해지고 손이 떨리기 시작했다. 카카오톡 알람 소리가 울리면 심장이 터질 듯 빠르게 뛰었고, 메신저를 지우고 싶은 충동이 계속되었다.
일은 계속 쌓였고, 담당자와의 소통도 쉽게 풀리지 않았다. 작은 오해가 커지면서 갈등이 빈번해졌고, 나는 점점 더 감정적으로 대응하기 시작했다. 평소라면 넘길 수 있는 말에도 쉽게 화가 나고, 그럴 때마다 스스로를 다잡으려 했지만, 감정은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보고를 위한 보고' 어찌보면 회사생활을 하면서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홀로 베트남에 나와 있는 상태에서 더 큰 문제로 다가왔다. 베트남에 나와있는 한국기업들 영업은 내가 직접할 수 밖에 없는 일이었고, 회사를 운영하면서 벌어지는 크고 작은 일들은 모두 내가 결정을 해야 하는 일들이었다. 한국 본사와의 끝없는 문서 대응은 베트남 사업을 위한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고 내 안의 불안감과 조급함은 하루가 다르게 쌓여만 갔다.
불안이 정점을 찍은 순간은 어느 날 새벽이었다. 한국과의 컨퍼런스 콜과 팔로우업 업무들로 스트레스가 극에 달했다고 스스로 느껴졌던 날이었다. 잠자려고 누운 자정 즈음 갑자기 가슴이 답답하고, 손끝이 떨리며 땀이 비 오듯 흘렀다. 마치 몸이 멈춘 것처럼 느껴졌고, 공기조차 가슴속으로 들어오지 않는 것 같았다. 숨이 제대로 쉬어지지 않는 상태에서 머리로 공급되는 산소의 부족을 느끼면서 나는 홀로 근처 응급실로 향했다. 병원에 도착한 후에도 내 심장은 여전히 빠르게 뛰었고, 몸을 움직이기조차 어려웠다.
말도 잘 통하지 않는 의사들과 증상을 설명하고, 인생 처음으로 산소호흡기를 코에 달면서 조금 상태가 나아짐을 느꼈다. 3시간정도 응급실 침대 위에 누워 있는 동안 나는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리는 기분이었다. 입원을 하라는 의사의 말을 뒤로하고, 새벽 3시가 넘어 30만원정도의 금액을 결제하며 집에 들어오면서 당장 아침에 출근해서 처리해야 하는 일들이 생각났다. 급여 결제도 해야하고, 면접 스케쥴도 3건이나 잡혀있던 터였다. 다시 숨이 가빠오는 것이 느껴졌다.
몸이 아프더라도 나는 쉴 수가 없었다.
그제서야 나는 말로만듣던 우울증과 공황장애라는 것을 내가 겪고 있다고 인정했다.
응급실을 다녀온 후, 나는 내가 겪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시도했다. 우선 나를 진정시키기 위해 명상을 시작했다. 명상 앱을 사용해 매일 아침 10분간 시간을 내어 호흡에 집중했고, 그 순간만큼은 조금이나마 마음이 편안해지는 듯했다. 하지만 곧 업무에 복귀하고 메일이 쌓일 때면 다시 불안감이 밀려왔다. 운동도 열심히 했다. 1주일에 한번정도는 농구 모임을 나가 땀에 흠뻑 젖을만큼 뛰고나면 잠시나마 스트레스를 잊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그 시간 이후엔 다시 현실로 돌아와야 했다. 결국, 이런 모든 노력들이 단기적인 해소는 되었지만, 내 마음 깊은 곳에 있는 본질적인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누구에게도 내 고통을 털어놓을 수 없었다. 주변 사람들과의 대화는 표면적일 뿐, 그 누구도 내가 느끼는 불안을 이해하지 못했다. 매일같이 쌓여가는 일과 압박 속에서 나는 점점 더 어둠으로 들어가는 것 같았다. 마치 내가 세상에 홀로 남겨진 것 같았다.
공감할 사람도, 내 아픔을 이해해 줄 사람도 없다는 생각이 머리를 가득 채웠다. 더 이상 버틸 힘조차 없는 상태에서 나는 점점 모든 동력을 잃어가고 있었다.
움직일 수도, 나아갈 수도 없었다. 그저, 멈춰버린 시간 속에 갇힌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