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사와의 커뮤니케이션
해외 주재원으로서의 경험은 생각보다 더 복잡하고 미묘했다. 특히, 베트남에서의 업무는 그동안 내가 익숙했던 한국 본사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흘러갔다. 이 과정에서 겪은 본사와의 커뮤니케이션은 내가 주재원 생활을 하며 가장 큰 난관이었지만, 동시에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주재원의 현실은 간단하지 않았고, 때로는 그 현실이 나를 외딴 섬에 홀로 남겨둔 듯한 기분을 들게 했다.
처음 주재원으로 베트남에 부임했을 때는 의욕이 넘쳤다. 현지에서 눈에 띄는 성과를 내고 본사에서 인정받아 더 큰 기회를 잡겠다는 생각으로 가득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내 자신이 내놓은 자식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베트남에서 혼자 고군분투하는 나와는 달리, 본사는 점점 더 멀게 느껴졌다. 그 간극이 점차 벌어지며 주재원 생활의 진짜 어려움을 깨닫게 되었다.
공휴일과 시차 문제는 생각보다 큰 도전이었다. 한국의 공휴일은 베트남에서의 근무일이고, 반대로 베트남의 공휴일은 한국에서 업무가 계속되는 날이었다. 자연스럽게, 두 나라의 근무 일정을 모두 소화하다 보니 휴일이 휴일이 아닌 날들이 많아졌다. 더불어, 시차가 2시간밖에 나지 않지만 이 작은 차이가 업무 효율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한국에서 오전 9시에 시작하는 회의는 베트남에서는 내가 출근 준비도 끝내지 못한 이른 시간이었고, 한국의 오후 2시,3시 회의는 베트남에서는 점심시간에 겹치는 경우가 많았다. 이러한 시간적 불일치는 피로를 누적시켰고, 나의 업무 패턴에도 혼란을 주었다.
그러나 이보다 더 큰 도전은 본사와의 소통에서 비롯되었다. 베트남에서의 업무는 한국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돌아가기 때문에, 본사와의 커뮤니케이션에서 많은 설명이 필요했다. 재무, 회계, 인사정책, 영업, 마케팅, 운영 등 모든 부분에서 세세한 설명이 요구되었고, 그 과정에서 반복되는 질문에 답하는 데 많은 시간이 소요되었다. 특히 본사의 담당자들이 해외 시장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경우, 기본 개념부터 다시 설명해야 하는 일이 빈번했다. 매번 새로운 담당자가 오면 처음부터 설명을 반복해야 하는 과정에서 효율성이 떨어졌고, 이는 실제 성과를 내기 위한 시간에 영향을 미치기도 했다.
본사 내부의 변화도 또 다른 변수로 작용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조직 개편이 여러 차례 이루어졌고, 내가 알고 있던 상사나 동료들이 부서를 옮기거나 퇴사했다. 내게 있던 네트워크의 끈이 하나씩 끊어질 때마다, 본사와의 거리감은 점점 더 커졌다. 이런 상황에서 “내가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면, 나를 기억해줄 사람이 있을까?”라는 불안이 커져갔다. 마치 본사로 복귀했을 때 나는 그저 "낯선 얼굴"이 되어버릴 것 같은 두려움이 나를 따라다녔다.
그렇다고 본사가 상황을 이해하고 기다려준 것도 아니었다. 본사의 성과 중심적인 시각 역시 주재원으로서의 업무에 상당한 압박으로 다가왔다. 베트남은 한국과 달리 긴 호흡이 필요한 시장이었다. 현지 직원들과의 의사소통, 현지의 업무 생산성, 그리고 사회적·법적 규율 등을 고려하면, 빠른 성과를 기대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웠다. 그러나 본사는 빠른 성과를 요구했다. 현지에서 성과가 나오기까지의 과정을 이해하기보다는 당장 눈에 보이는 결과를 원했고, 성과가 나왔을 때조차 추가적인 요구가 뒤따르거나, 부족한 부분들에 대해 부각하려는 느낌이 강했다. 처음에는 열심히 하면 인정받을 수 있겠다는 생각에 동기부여가 되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그 욕구는 점차 사라졌고, 나는 점점 더 끝없는 레이스를 뛰는 기분이었다.
그러나 이런 과정 속에서도 나는 깨달았다. 주재원 생활은 단순히 업무 성과만을 내는 것이 아니라, 본사와 현지의 균형을 맞추고 효율적인 소통 방식을 찾는 여정이었다. 나는 본사와의 거리가 멀어질수록 현지 팀과의 협력에 집중해야 했고, 그 과정에서 리더십의 중요성을 배우게 되었다. 내가 느낀 어려움들은 단지 하소연이 아니라, 주재원 생활이 가지는 근본적인 문제들이었으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 나 자신도 끊임없이 성장하고 적응해야만 했다.
본사와의 소통에서 가장 난감했던 부분은 바로 거버넌스 문제였다. 본사는 해외 사업의 모든 거버넌스를 직접 가져가고 싶어 했다. 회사 입장에서는 당연히 모든 결정을 본사가 통제하고 싶어하는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본사 담당자들의 현지 상황 이해 부족이 큰 문제로 다가왔다. 그들이 베트남 시장에 대해 피상적인 정보만 가지고 접근하다 보니, 현지에서는 제대로 실행되지 않을 전략이나 아이디어가 나오기 일쑤였고, 이는 주재원으로서 나에게 큰 도전으로 다가왔다.
가령, 한 번은 본사에서 베트남 시장에 대한 뉴스를 보고 "이 분야에서 기회가 있는 것 같다"며 특정 아이템을 검토하라는 요청이 들어왔다. 문제는 그 아이템이 현지 시장에서 전혀 맞지 않거나, 본사에서조차 시도해보지 않았던 사업인 경우였다. 베트남의 문화적 특성, 소비자 성향, 경쟁 상황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한국에서 성공했던 사례나 일시적인 뉴스에 의존한 제안들이 종종 나왔다. 이런 제안이 들어올 때마다, 나는 하나하나 다시 설명해야 했다. 현지의 복잡한 상황을 설명하고, 왜 그 전략이 실행되기 어렵다는 것을 납득시키는 일은 점점 더 힘들어졌다. 본사와 현지 사이에서 중간 다리 역할을 하는 일이 만만치 않았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거버넌스의 책임 구조였다. 본사가 사업의 전략적 결정을 주도하면서도, 주재원의 역할은 종종 그저 실행자로 제한되는 경우가 많았다. 상황이 잘 풀릴 때는 본사에서 직접 관여하려 했지만, 문제가 생기면 책임은 주재원에게 돌아왔다. 예를 들어, 사업이 예상대로 진행되지 않으면, 비록 본사에서 결정한 일이더라도 실행에 대한 책임은 나에게 전가되는 분위기가 형성되곤 했다. 공식적으로는 그런 말을 듣지 않더라도, 나는 점점 모든 화살이 나를 향하는 느낌을 받았다.
의사결정 구조 또한 어려운 점 중 하나였다. 본사에서 결정이 내려지면, 이를 그대로 현지에서 실행하는 데 제약이 많았다. 베트남 시장의 복잡한 요구사항, 현지 법규, 빠르게 변하는 환경, 그리고 제한된 자원 등이 걸림돌이 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본사에서는 현지 상황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채 빨리 처리하라는 요청을 반복했다. 예를 들어, 본사에서 성공적인 전략으로 평가된 것을 베트남에 똑같이 적용하라고 했을 때, 현지에서는 그 전략을 실행하기 위한 데이터나 리소스를 확보하는 것이 불가능하거나 현실적으로 매우 어려운 경우가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사의 압박은 계속되었고, 나는 현지 상황과 본사의 요구 사이에서 매번 줄타기를 해야 했다. 이 과정에서 받는 스트레스는 상당했다.
이런 상황을 겪다 보니, 나는 자연스럽게 주재원으로서의 내 역할에 대해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주재원의 역할이란 본사가 지시한 것을 단순히 이행하는 사람일 뿐인가? 아니면 현지 상황을 고려해 독자적인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하는가? 그 답을 찾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본사의 요구와 현지의 현실 사이에서 균형을 맞추기 위해 나는 끊임없이 고민하고 조정해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사에서 받은 지원은 분명 감사할 부분이 많았다. 특히 재무, 회계, IT개발 업무와 같은 내가 익숙하지 않았던 분야에서 본사의 체계적인 서포트는 큰 도움이 되었다. 현지에서 직접 처리하기에는 어려움이 많았던 업무들이었지만, 본사에서 이를 전문적으로 지원해준 덕분에 문제없이 해결할 수 있었다. 이 과정에서 본사의 전문성을 실감했고, 덕분에 현지 업무에 집중할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또한, 본사가 제공한 시스템적 지원도 현지 사업 운영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예를 들어, 복잡한 회계 프로세스나 IT 인프라는 현지에서 직접 구축하기 힘든 부분이었다. 본사에서 이러한 기반을 제공해주었기에, 나는 현지에서 따로 신경 쓰지 않고 운영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 만약 이런 지원이 없었다면, 더 많은 시간과 리소스를 소모해야 했을 것이고, 결과적으로 업무의 효율성도 크게 떨어졌을 것이다. 본사의 이러한 체계적인 지원 덕분에 나는 보다 효율적으로 일할 수 있었다.
주재원으로서 해외에서 일하는 것은 생각보다 훨씬 많은 도전과 난관을 안겨주었다. 본사와의 소통, 현지 상황에 대한 이해 부족, 그리고 거버넌스 문제 등 여러 복잡한 상황 속에서 답답함을 느낀 순간도 많았다. 하지만 그 과정을 통해 나는 소통의 중요성과 효율적인 리더십의 필요성을 절실히 깨달았다. 무엇보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효과적인 해결책을 찾기 위해 끊임없이 고민해야 했다는 점이 나를 한 단계 성장시켰다.
물론 이 경험이 아직 완벽하지는 않다. 하지만 이런 과정을 통해 나는 더 성숙한 리더가 되었고, 앞으로의 업무에서도 많은 교훈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특히, 본사의 지속적인 지원 덕분에 어려운 순간들을 잘 헤쳐나갈 수 있었다는 점에 감사하며, 나는 이 경험을 바탕으로 앞으로도 성장해 나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