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상 밖의 도전들
베트남에서 처음 마주한 도전은 생각보다 더 복잡하고 미묘했다. 표면적으로는 한국과 비슷해 보이는 비즈니스 환경이었지만, 실제로는 그 밑바탕에 깔린 문화적, 사회적 차이로 인해 업무가 예상대로 흘러가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그 중에서도 가장 크게 느꼈던 차이점은 의사결정 과정의 속도였다.
한국에서는 신속한 의사결정이 업무의 핵심이다. 빠른 실행이 곧 경쟁력이기 때문에 지시가 내려지면 바로 행동에 옮기는 문화가 자리 잡고 있다. 그러나 베트남에서는 이러한 신속함이 '신중함'이라는 이름으로 대체되곤 했다. 의사결정 과정이 매우 느리게 진행되었고, 프로젝트의 작은 부분을 수정하는 데도 많은 검토가 필요했다. 특히, 책임을 회피하려는 경향이 강했다. 만약 실수가 발생했을 때, 그 책임이 누구에게 돌아갈지 확실하지 않으면 일을 미루거나, 데드라인이 가까워져서야 겨우 결과물을 내놓았다.
나중에 알게 된 바로는, 중간에 보고를 하면 피드백이나 수정을 받게 되어 부담스럽고, 데드라인에 맞춰 결과를 제출하면 '할 일을 마쳤다'고 생각하는 것이었다. 결과물의 질보다는 본인의 역할을 다하는 것이 우선인 셈이었다. 처음엔 이런 사고방식이 이해되지 않았다.
나는 왜 그들이 이렇게 소극적으로 행동하는지 쉽게 이해하지 못했다. 한국에서는 빠르게 결정을 내리고 바로 실행에 옮기는 것이 당연했기에, 베트남에서의 느린 의사결정 속도와 소극적인 태도가 답답하게 느껴졌다. 몇 번이고 재촉을 해도 상황은 변하지 않았고, 이런 상황이 반복될수록 나의 인내심도 한계에 가까워졌다.
베트남에서 직원들이 이렇게 행동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그들의 의사결정 과정이 느린 것은 단순히 소극적이거나 신중해서가 아니라, 베트남의 사회주의적 시스템과 문화적 배경과도 깊은 연관이 있었다라고 생각한다. 베트남은 사회주의 국가로, 개인보다는 집단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문화가 강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이 때문에 개개인이 스스로 결정하고 책임지는 것보다는, 상위 권력이나 집단의 승인을 받고 움직이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베트남에서는 실수를 극도로 경계했다. 작은 실수라도 발생하면 상사나 동료에게 질책을 받을 수 있다는 불안감이 크게 작용했다. 또한, 이러한 실수는 개인의 문제를 넘어 조직 전체의 평판이나 성과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여겨졌다. 때문에 모든 것이 확실해지기 전까지는 결정을 내리지 않으려는 경향이 강했다. 이러한 문화는 역시 개인보다는 집단의 결정을 존중하는 사회주의적 특성에서 기인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결과적으로, 이런 상황에서는 책임 회피가 일상화되었고, 결정이 내려지기 전까지는 여러 단계를 거쳐 승인을 받아야 했다. 그로 인해 의사결정 과정이 길어질 수밖에 없었고, 업무 속도도 자연스럽게 느려졌다.
또한 베트남에서는 관계 중심의 업무 문화도 큰 도전이었다. 한국에서는 성과 중심의 문화가 자리 잡고 있어 결과만 좋다면 과정에서의 인간관계는 크게 중요하지 않을 때가 많았다. 하지만 베트남에서는 직원들 간의 유대감과 협력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팀원들끼리 서로를 잘 알지 못하면 업무가 원활하게 진행되지 않았고, 그들은 일의 성과보다는 팀 내 인간관계를 우선시하는 경향이 있었다. 예를 들어, 팀장이나 팀원에 대한 불만이 직접적으로 나에게 전달되는 일이 잦았고, 심지어 회사 매출이 떨어지는 상황에서도 HR 부서에서 직원들을 위한 액티비티를 제안하곤 했다. 처음에는 이런 부분들이 이해되지 않아 그들을 꾸짖기도 했지만, 그런 방식으로는 아무런 변화가 일어나지 않았다.
직원들의 생산성은 여전히 낮았고, 글로벌 경기 악화로 회사의 상황이 나아지지 않으면서 눈에 밟히는 문제들이 더 많아졌다. 나는 이 문제가 직원들의 잘못이 아니라, 회사의 리더십과 프로세스에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에 따라 빠르게 직원들의 역할과 책임(R&R)을 재정립하고, 각 개인에게 맞는 KPI를 부여했다. 단, 결과에 대한 책임은 부서 전체와 회사에 부여하고, 개인에게는 과정 중심의 지표로 목표를 설정하게 했다.
예를 들어, 영업팀에게는 하루 전화 횟수, 고객 접촉 횟수, 제안서 발송 수 같은 구체적인 지표를 부여했다. 개인이 꾸준히 노력하여 일일 목표를 달성하면 보상이 주어지는 형태로 커미션 구조도 새롭게 설계했다.
또한 회사의 행사나 복리후생 정책은 연초에 예산과 아이템을 선정해 직원들에게 공개하고, 계획된 스케줄에 따라 진행되도록 했다. 분기마다 타운홀 미팅을 통해 직원들과 소통하며 피드백을 받아 정책을 지속적으로 개선해 나가는 방식도 도입했다.
이 모든 과정을 통해 나는 프로세스와 소통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회사는 제대로 된 프로세스를 통해 돌아가고, 성과는 결국 사람이 만든다는 진리를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두번째로 내가 처음으로 시도한 접근법은 '자율성 부여'였다.
처음에는 나 역시 그들의 결과물을 믿지 못하고, 모든 일을 내 방식대로 지시하며 그들이 따라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는 나와 그들 모두에게 큰 부담으로 작용했다. 나는 회사 전반적인 업무들을 관리하면서 직원들에게 일일이 액션 플랜을 제시하고, 교육을 지속적으로 진행해야 했다. 언어 장벽 속에서 모든 자료를 문서화해야 하는 상황에다, 본사에서 끊임없이 요청하는 자료와 문의 대응까지 하다 보니, 몸이 열 개라도 부족했다. 그들은 그들대로 내 지시를 수동적으로 따르는 태도로 일하게 되었고, 이는 문제 해결 능력의 저하로 이어졌다.
결국, 나는 그들이 스스로 결정을 내리고 책임질 수 있도록 자율성을 더 부여하기로 마음먹었다. 작은 프로젝트나 단순한 업무에서는 더 많은 권한을 주어 그들이 주도적으로 일을 진행하도록 했으며, TFT 제도를 적극 활용해 타 팀원들과 협업하며 업무를 처음 기획부터 마무리까지 스스로 책임질 수 있도록 했다. 이를 통해 그들은 점차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는 법을 배우고, 자신감을 얻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내가 중요하게 여긴 것은 명확한 보고 시스템 구축이었다. 그들은 자신이 잘하고 있는지 확신이 없을 때 업무를 미루는 경향이 있었기 때문에, 정기회의를 통해 진행 상황을 파악하고 적절한 피드백을 제공함으로써 그들의 불안감을 줄였다. 이를 통해 의사결정의 속도를 높이는 동시에 그들이 스스로 책임감을 느끼게 할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교육과 훈련을 통한 조직 역량 강화였다.
먼저, 나는 소프트스킬 교육에 주력했다. 문제 해결 방법, 리더십, 창의적 사고, 논리적 사고, 협상 기술 등 실제 업무에 필요한 다양한 소프트스킬을 각 부서의 특성과 필요에 맞춰 교육했다. 한국에서 오래전에 들었던 교육 과정을 재구성하기도 했고, 유튜브나 구글링을 통해 습득한 정보를 최대한 쉽게 풀어 직원들에게 전달하려고 했다. 특히 리더급 직원들에게는 리더십 교육을 강화하여 팀을 이끌 수 있는 역량을 기르는 데 중점을 두었다.
또한, 신규 직원들에게는 회사의 미션과 비전을 명확하게 이해시키고, 사업 전반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교육을 직접 진행했다. 이 교육은 단순히 회사 목표를 설명하는 데 그치지 않고, 우리가 가고자 하는 방향과 그 안에서 직원들이 어떤 방식으로 성장할 수 있는지를 명확히 인식시키는 데 초점을 맞췄다. 특히, 신규 직원들이 회사의 목표와 개인적 성장을 연결지어 생각할 수 있도록 유도하면서, 회사의 비전에 공감하고 동기부여를 느끼도록 했다.
마지막으로, 외부 강사를 초빙한 마인드셋 교육을 적극 활용했다. 언어 장벽으로 인해 내가 직접 마인드셋 교육을 진행하기 어려운 점이 있었기에, 외부에서 저렴하게 강사를 초빙해 직원들에게 퍼스널 브랜딩, 자기 관리, 성장 마인드셋 등을 교육했다. 베트남에서는 퍼스널 브랜딩에 대한 관심이 높기 때문에, 현지에서 마인드셋 강사를 찾는 것이 비교적 쉬웠다. 이러한 교육은 직원들의 자기 인식과 업무에 대한 태도를 긍정적으로 변화시키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베트남에서의 업무는 문화적 차이와 의사결정 속도의 느림, 관계 중심의 업무 문화 등 다양한 도전과 과제를 안겨주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나는 자율성 부여와 교육 및 훈련을 통해 조직의 역량을 강화하려 했다. 직원들에게 자율성을 부여하여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고 책임감을 가지도록 유도했으며, 교육을 통해 그들의 역량을 체계적으로 키웠다. 더 나아가 프로세스 개선을 통해 각 부서와 직원들의 역할과 목표를 명확히 하고, 성과 중심의 문화보다는 과정 중심의 지표를 설정함으로써 책임과 성장을 유도했다.
많은 정책을 바꾸고,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나도 나름 성장했고, 직원들에 대한 이해도 깊어졌다고 자부한다. 이제는 그들의 의사결정 속도나 관계 중심의 업무 문화도 어느 정도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 솔직히 이 정도 어려움은 이제는 크게 문제되지 않는 수준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건 진짜 아무것도 아니었다. 진짜 어려움은 따로 있었다. 뒤에 나올 이야기, 바로 본사와의 커뮤니케이션... 이건 진짜 레벨이 다르다. 지금까지 얘기한 어려움들은 그저 몸풀기였을 뿐. 본사와의 소통은 정말 차원이 다른 난이도였다.
기대하시라, 진짜 고난은 이제부터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