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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은별 Jul 14. 2022

모락모락, 테스토스테론 타는 냄새

스탠드 업 코미디, Mr. 마초왕 겨루기 대회

작은 화면 안에는 더 작은 남자가 한 명 서 있었고 관중들을 향해 말을 던지고 있었다. 자신감에 차 보였지만 그의 눈빛 한 구석에는 살짝 눈치를 보는 기색이 어려 있었다. 웃음이 터지게 만드는 데에도 설득하는 과정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불안감을 숨기고 최대한 여유로운 척 하면서도 사람들의 마음을 사기 위해 살살 눈치를 보며 포석을 깔았고, 이내 사람들이 넘어온 것 같자 좀더 대범해졌다. 목소리는 자신감에 찼고 몸이 풀렸는지 본론으로 들어가기 위한 시동을 걸었다. 마트에서 갑자기 뭐가 마음에 안 들었는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눈 앞에 보이는 물건이란 물건은 죄다 발로 차고 다니는 아이를 기가 막히게 따라했고, 이어서 공공장소에서 생떼를 쓰며 난동 피우는 아들을 타이르는 엄마 흉내를 내기 시작했다. “재커리, 재커리? 그만해, 재커리, 잭, 재커…” 



그 정도로는 아이가 말을 듣지 않는지 새침하게 머리를 귀 뒤로 넘기며 쭈그리고 앉아 아이와 눈을 맞추고 “기억 나? 기억 나니, 재커리? 응? 돌고래 기억 나?” 당장 조용히 시켜도 모자랄 판에 갑자기 웬 뚱딴지 같은 말인지 모르겠지만, 세상 그 어떤 것보다 아이와 눈을 맞추는 게 가장 중요한 일이라는 듯 아이에게서 눈을 떼지 않으며 점점 몸을 낮추고 말을 이어가는 엄마였다. 세상 가장 중요한 일을 하면서도 새침한 표정으로 쉬지 않고 머리를 쓸어넘기는 것도 잊지 않았지만 이 정도 멀티 태스킹 쯤이야 여자라면 얼마든 가능하다. “돌고래 기억 나? 돌고래. 우리만의 암호로 약속했잖아. 돌고래가 마법의 단어고, 내가 돌고래라고 말했으니까 예의 바르게 행동해야겠지? 알겠니?” 남자 코미디언의 옷이 조금만 더 파였더라도 은근슬쩍 가슴골을 보여주는 행동까지 묘사할 수 있었을텐데 디테일이 아쉬워 약간의 감점이 있었다. 그의 몸이 내려갈수록 웃음소리도 커졌다. 



https://youtu.be/_f0oqx0dby4

도널드 글로버, 스탠드 업 코미디 영상 일부-자그마한 히틀러들



계속해서 그는 농담을 이어 갔다. 같은 아이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아이는 저녁으로 쿠키를 먹겠다고 우겼고 엄마는 못 먹게 말렸다. 아이는 “뭐하는 거야, 지금? 뭐해?! 아니, 이런 개년이?!?!”(정확히는 Oh, you fucking bitch!)라고 외쳤다. 그를 위해 조금 공정하게 전달하자면, 아이가 말을 할 줄 알았다면 그랬을 거라는 농담이었다. 눈 앞에서 희망이 꺾였을 때 느끼는 좌절감을 우리는 모두 알고 있으니까. 아이(로 분해 몰입한 그)는 분노에 차서 외쳤다. “넌 내가 쿠키를 먹고 싶어하는 걸 알면서 내 손이 닿을 수 없는 곳에 놨어. 넌 뒤졌다.” 농담은 클라이맥스를 향해 갔다. “내가 아빠한테 말하면 아빠가 아주 니 강냉이를 다 털어버릴 거야. 아빠, 아빠?” 대망의 피날레, “아빠가 결혼한 이 창년(Cunt) 있잖아. 내 손이 안 닿는 곳에 쿠키를 갖다 놨어. 죽여버려, 그냥. 기다릴게.” 농담의 대미를 장식하는 화려한 불꽃이 터졌다. 





#스탠드업코미디 #여성혐오 #굴절혐오 #차별 #강간문화 #남성카르텔 #ofs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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