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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은별 Jul 14. 2022

어디서 타는 냄새 안 나요?

스탠드 업 코미디, 여기도 여자는 출입 금지인가요?

그것은 아주 익숙한 냄새였다. 남자들만의 축제에서 빠지지 않고 피어오르는 향락의 냄새. 가까이 다가가기 께름칙하게 만드는 이 불쾌하고 텁텁한 냄새의 정체는 일단 한번 손 대기 시작하면 끊을 수 없다는 ‘여자들은 멍청해’ 뽕을 태우는 냄새였고, 여기에 취하면 모든 여자들이 꽃뱀 아니면 구멍으로 보이는 환각 증세를 일으켰다. 이게 바로 이 중독 물질의 재밌는 점이었다. 여기 손 댄 모든 남자들에게 전부 똑같은 환각을 보게 한다는 점. 환각을 보는 동안은 내 위를 짓누르고 서 있는 수없이 많은 다른 남자들의 무게를 훌훌 털고 그 밑에 깔려 벗어날 수 없는 현실의 비참함을 잊을 수 있었고, 절대 제칠 수 없을 것만 같은 상대에게 느끼는 무력감과 절망감에서 오는 분노를 죄의식 없이 환각 속의 상대에게 풀 수 있었다. 



이 쾌감에 빠진 남자들은 한결같이 현실 감각을 잊고 판단력을 상실해갔다. 이 중독 물질이 그들의 의식을 마비시키는 게 분명했다. 이 습관적 탐닉성 물질은 남자들에게 특히 항우울제 같은 역할을 했는데 복용할수록 의존도가 높아지고 내성이 생겨 더 강한 자극을 필요로 했고, 투약을 중단하면 금단 증상이 나타났다. 대표적인 증상으로는 급격한 심리적 위축(기가 죽음)과 여기에서 기인한 심인성 반응이 신체로 전이되어 나타나는 기능 장애 현상(발기부전) 등이 있었다. 중독이 심각할 경우, 나의 내면을 알아봐 주지 않는 여자들에 대한 원망이 피해망상으로 번지고 칼부림(노리는 족족 여자들만 골라서 죽이지만 ‘묻지마 살인’이라고 불리는)까지 일으키기도 했는데, 이 모든 현상을 유발하는 강력한 중독 물질의 정식 명칭은 ‘여성 혐오’라는 이름의 마약류 향정신성 이데올로기였다. 



그날의 분위기는 마치 해외 유명 가수의 내한 콘서트장이나 열광의 도가니에 빠진 UFC 경기장 같았다. 나는 방구석에 앉아 핸드폰 화면을 통해 유튜브 영상을 보고 있을 뿐이었지만 방 안은 수증기처럼 남자들의 땀냄새로 가득 찬 듯 했고 머리가 몽롱하고 어질해졌다. 얼굴은 벌게지고 땀구멍이 열리며 두피에서는 땀이 솟아났다. 핸드폰이 뜨거워지는 이유는 현장의 열기를 전해주고 있기 때문이었고 그 후덥지근한 열기에 숨이 막히는 듯 했다. 흥분 상태에 빠졌을 때와 비슷한 울렁거리는 느낌은 곧 있으면 무언가 안 좋은 일이 펼쳐질 거라는 사실을 알려오는 전조 현상 같았다. 





#스탠드업코미디 #여성혐오 #굴절혐오 #차별 #강간문화 #남성카르텔 #ofs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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