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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은별 Jul 14. 2022

검문소 통과하기

스탠드 업 코미디 입문자인데요

발단은 영어 공부였다. 취업을 할 것이냐 창업을 할 것이냐 선택의 기로에 놓여 있었고 둘 중 무엇을 하든 영어는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 막 장기간 시험의 늪에서 겨우 빠져나온 찌질이 패잔병 같던 나로서는 토익 공부 같은 시험 공부는 진저리 나게 싫었고, 다시 할 여력도 없었다. 다닥다닥 떠오르는 토익 사이트의 팝업창, 미관은 전혀 생각하지 않고 원색으로 너도나도 글자 크기를 키운 상가 건물 간판들마냥 죄다 굵은 글씨로 깜빡이는 온갖 배너들, 한쪽 구석에서 며칠이나 더 공부는 안하면서 스트레스는 받아야 하는지 알려주는 디데이 카운트 달력, 여기가 토익 사이트인지 공무원 시험 사이트인지, 아니면 부동산, 보험, 공기업… 문어발식 확장으로 도통 뭐하는 곳인지 알 수 없게 만들어놓은 메인 화면 등등, 이런 이미지들은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다시 탈진할 것 같은 기분이 들게 했다. 



내 머리는 취업 준비나 자격증 정보부터 시작해서 내가 바깥과 단절된 새 세상이 얼마나 빠르게 변했는지, 미래에는 어떤 분야가 전도유망할지 정도의 조금이라도 유용함과 고상함을 띤 정보들은 세관에서 밀반입 물품을 적발해 반출하듯 전부 뱉어내고 있었다. 내 뇌는 세관원처럼 일하고 있었는데, 이 세관원은 통속적이고 아주 말초적인 자극을 추구했으며 제멋대로인 기준을 마구 휘두르는 중이었고, 삶의 매너리즘에 빠진 태도가 이 갑질을 가속화 시키고 있었다. ‘테셋? 나가.’, ‘인적성? 꺼져.’, ‘내가 사랑했던 모든 남자들에게? 하… 또 교복 입었을 때 생각나게 하네, 설레게. 좋아, 통과.’, ‘한국사? 뭐, 서울대라도 가려고? 재밌네.’, ‘NCS…? CSI 뉴 시즌이야? 아니면 꺼져.’, ‘아이돌 무대 직캠? 오… 가운데 빨강 머리 누구야? 복근 쩐다, 귀여워. 좋아요 누르자.’, ‘핫한 키스신 모음? 완전 좋아, 북마크 저장 완료.’, ‘하반기 공채 일정? 닥쳐.’, ‘넷플릭스 19금 미드, 찜한 영화 목록 추가.’, ‘사람인, 차단. 잡코리아, 추방.’ 



이 찌들대로 찌든 세관원을 속이고 통과하기 위해서는 무조건 재미와 자극이 필요했다. 하지만 여기서 통과한다고 끝이 아니었다. 내 머리 속에는 아주 오랜 시간 동안 감시자 역할을 해온 감독관이 하나 더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잠시 힘을 잃고 이빨 빠진 교도관처럼 뒷방에 조용히 숨어있지만 언제 다시 모든 선택을 총괄하던 총사령관의 면모를 되찾으려 들지 모르는 일이었다. 2차 관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 이 초자아라는 이름의 감독관은 앞선 말초적인 취향의 세관원과는 정반대의 기준을 지니고 있는 그의 상사였다. 그리고 비교적 얼마 전까지 수험생 신분을 유지하던 본체가 오래 전 제출했던 ‘장밋빛 미래’라는 제목의 제안서를 매우 마음에 들어해 아직까지 놓지 못하고 있는 상태였다. 이 두 관문을 모두 무사히 통과하려면 눈속임이 필요했다. 어린이들을 위한 오렌지맛 감기약 부루펜처럼 말이다. 그래야 장기적으로 본체 내에서 물의를 빚지 않고 소요 사태가 벌어지지 않을 수 있었다. 본능이 거부한다고 해서 정말 불량식품 같은 것들만 주입했다간 얼마 안 가 본체의 하드 웨어도 고장나겠지만, 죄책감이라는 치명적인 바이러스가 소프트 웨어를 먼저 망가뜨릴 게 뻔했기 때문이다. 



나는 한 가지 그럴싸한 이유를 찾아냈다. 쉬우면서도 제일 원어민 같은 영어를 구사하는 방법은 역시 그 나라 유머를 할 줄 아는 거지! 하는 생각으로 영어로 된 재밌는 볼거리를 찾아다녔고, 때마침 유튜브 알고리즘에 짧은 스탠드업 코미디 영상이 하나 걸려들었다. 한국 예능은 보기 힘들어 끊었던 차에 이거다 싶었고, 선진 유머는 어떤가 한번 즐겨보자 하는 마음으로 빠져들기 시작했다. 한동안은 멋진 신세계가 펼쳐졌다. 일하러 가는 줄도 모르고 신나게 뛰쳐나가는 마약 탐지견마냥 코를 벌름대며 날뛰다 얼마 안 가 수상한 냄새를 감지해버렸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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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탠드 업 코미디로 #영어공부 #되겠냐 #유튜브 #한국예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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