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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은별 Aug 18. 2022

파훼법

유머의 공격성, 여자들에게 필요한 것

여자들과 관련된 다른 모든 문제가 그렇듯 이것 역시 믿음에 관한 문제였다. 여자는 남자들만큼 유머를 구사할 지적 수준이 못된다는 능력치에 대한 사전적 기대, 성적 대상화로 인한 여자들의 행동 제약을 보고 ‘거 봐, 여자들은 안 된다니까’라며 강화시키는 사후적 확증편향, 여자들에게는 관점을 세울 기회조차 없었지만 그러한 현실에는 편히 눈 감고 손가락질 하기에 바쁜 불관용적 태도, 이 모든 것이 여자는 남자보다 뒤떨어지는 존재여야 한다는 믿음에서 기인한 것이었다. 하지만 남자들이 정말 그들의 교리에 대해 굳건한 믿음이 있었다면, 그리고 그것이 진실이라면 구태여 그렇게 반복적으로 강하게 되뇌일 필요는 없었을 것이다. 근간에 불안함이 도사리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빈약한 믿음을 무너뜨리는 데 유머가 좋은 무기가 되어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게 아니라면 그토록 오랜 세월, 유머의 영역에서까지 여자들을 배척할 이유가 없었다. 사실 유머는 일자리나 정치처럼 큰 파이가 왔다갔다 하는 곳도 아니고, 학문의 전당처럼 신성시 되는 영역으로 보이지도 않았으니까 말이다.

 


조금 더 정확히 말하자면, 내가 찾아낸 답은 유머의 공격성이었다. 유머는 그 자체로 공격성을 내포하고 있는 동시에 가장 인간적인 방식으로 공격성을 표출할 수 있는 수단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바로 이 지점이 여자들에게 적극적으로 유머를 구사하는 데 껄끄러움을 느끼고 주저하게 만드는 원인이기도 하지만 말이다. 그것은 아마도 우리가 공격성을 거세 당했기 때문일 것이다. 공격성이 잘 발달하지 못한 사람은 지나치게 위축되거나 지나치게 공격적이 되기 쉽다고 한다. 나는 때때로 이런 경향이 우리가 구사하는 유머에도 드러난다고 느낀다. 상대방에 대한 과잉 우려나 과도한 피해 의식이 아예 유머가 성립될 수 없는 환경을 만드는 것을 보기도 했고, 이 모든 비난과 검열을 피하기 위해 선택한 자기 비하나 자학적 유머가 스스로를 해치는 모습을 목격하기도 했다. 그렇게 드문 일은 아니었다.



공격성을 거세 당했다는 말은 내가 상대를 공격하는 훈련을 하지 못했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역으로 대등한 상대의 공격으로부터 자기자신을 방어하는 연습을 하지 못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내가 자기 주장을 하고 타인을 공격할 수 있듯 똑같이 상대방도 그렇게 할 수 있음을 이해하고 긍정한 상태에서 자신을 수비하고 방어할 수 있게 된다면, 그리고 이 능동감으로 굴러가는 메커니즘을 체득한다면 많은 것이 달라지지 않을까? 유머가 가진 공격성이 조금 무섭고 다루기 어렵더라도 가장 좋은 방법은 하나하나 시도해보는 것이다. 우리가 성적 대상화에서 완전히 벗어나고, 완벽한 관점을 정립하고, 누구에게도 상처 주지 않으면서 훌륭한 농담을 던질 수 있는, 모든 조건이 완벽해질 때까지 웃음을 포기하고 살 수는 없으니까 말이다. 처음부터 잘해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 실수해도 괜찮다는 마음가짐을 얻는 건 덤이다. 마지막으로, 우리들의 시도가 하나의 선택지로 자리잡았으면 한다. 대안이 있는 사람만이 품위를 유지할 수 있다. 나는 나를 포함한 여자들이 인간다운 품위를 유지하며 삶을 살 수 있도록 우리에게 옵션을 하나 추가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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