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탠드 업 코미디에서 발견한 차별의 위계
내가 찾아낸 이 교리의 파훼법은 생각보다 아주 간단하다. 하지만 그 전에 마지막으로 한 가지 더 밝히고 싶은 것이 있다. 이 코미디언이 누구인지에 대해서 말이다. 도날드 글로버라는 이름의 이 재능 있는 남자 코미디언의 또 다른 활동명은 ‘차일디쉬 감비노’이다. 그는 코미디언뿐 아니라 배우, 작가, 뮤지션 등으로 활동하며 미국에서 잘나가는 아티스트였는데,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작품으로는 2018년에 나온 ‘This is America’라는 곡이 있다. 미국 사회 내 인종 차별을 비판한 곡으로, 특히 총기 사고와 같은 혐오 범죄가 어떤 집단을 더 쉽게 겨냥하는지, 또 사회는 그 범죄의 무게를 어떻게 다루는지를 풍자한 뮤직 비디오로 세계적인 관심과 찬사를 받은 주인공이기도 하다. 흥미로운 지점이었다. 누군가가 여전히 좋은 사람일 수는 있지만 더 이상 좋은 남자는 아니게 되는 경계 말이다. 도날드 글로버와 차일디쉬 감비노 사이의 거리는 극단적이지만 전형적인 사례였다고 생각한다.
이것을 처음 알았을 때 내가 느꼈던 충격과 분노, 실망감과 씁쓸함은 뒤로 하더라도 한 가지 확실해진 게 있다. 남자들이 차별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는 사실 말이다. ‘아, 그래? 흑인 남자가 차별 당하는 건 못 견디겠지만 여성 혐오는 계속 하고 싶다 이거지? 너희들의 유일한 위안이 되어주는 유희거리는 놓기 싫다 이거지?’ 조소가 나왔다. 그들의 양면성이 우스웠다. 하지만 실제로는 나와 큰 상관 없는 남의 나라 남자들이 보이는 이중적인 태도가 나에게 적대감을 불러일으킨 이유는 따로 있었다. 그들에게서 익숙한 정서가 느껴졌기 때문이다. 흑인 남성의 차별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같은 흑인 여성을 동원하지만 흑인 여성들에게 가해지는 이중, 삼중의 구조적 차별에는 철저히 나 몰라라 하는 태도, 남성에 의한 여성 차별을 해결할 의사는 전혀 없으면서 아쉬울 땐 찾고 필요가 다하면 팽하는 역사, 여기에서 한국 남성과 짙은 동류의 냄새가 났다. 외국 남성에 대한 열등감과 피해 의식을 자국 여성들을 폄하하고 쥐어짜는 것으로 메꾸려는 보상 심리, 자기보다 잘난 남성에 대한 시기와 선망을 옆자리의 여자를 비난하고 매도하는 것으로 해소하는 굴절 혐오, 스스로 진보주의자라 일컫지만 그 진보의 열매를 여자들과 나누기는 아까워하는 일부 진보 한국 남성들, 그들이 몇 번이고 되풀이해 확인시켜준 역사였다. 이런 상황에서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무엇을 하면 좋을까? 다음에 소개하는 조크 세트가 내가 찾아낸 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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