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만치 혼자서 ㅡ 일상을 다르게 읽히는 힘
김훈, 저만치 혼자서, 문학동네, 한국, 2022
아내가 주말 행사로 늦게 올라와 미안해하는 오늘, 나는 소은이와 버스 타고 인근 키즈까페로 가고 있었다. 사실 활달하고 운동.좋아하는 소은이에게는 몇살 위 오빠들과 어울려 축구도 하고 비탈도 오르는, (특수훈련??) 원래 가던 방방이 키즈까페가 더 어울려보였으나, 어데서 알았는지 아이는 며칠 전부터 그 곳을 가자고 졸랐다. 아침 옥상도장 바닥이 젖어 맞서기 연습하기가 어려워, 천변을 한시간 정도 빠르게 걸었다. 이미 많은 이들이 짝맞춰 오래 뛰거나, 반주없이 노래를 연습하거나, 심지어 큰 스피커를 수레에 싣고 와서 음악을 틀고 각기춤을 연습하는 중년 사내도 있었다. 혹시나 내가 도복이라도 입은 채로 옆에서 치고 찼으면 볼만했을 거라고 속으로 생각했었다. 아내도, 정.선생님도, 쉬고 싶지 않느냐셨고, 안그래도 잡생각에 모기까지 덧붙어 잠 설치는 요즘, 왜 나라고 더 자고 싶지.않겠냐만, 주말부부의 남편이자 아비로서 해야할 일들이 너무 많고, 무엇보다 딸내미가 아침 일곱시부터 일어나 아빠아아 일어나아아 하며 클레멘타인마냥 불러젖힌다.. 역시 태권도 하는 이의 딸답구나… 그러므로 내 생계가 온전히 나의 일이듯, 육아도 가사노동도 당연히 돕는 일이 아니라, 그냥 나의 일이다. 내가 주말출근을 하게 되면 당연히 아내가 또 가정을 맡는다. 가정.구성원이 가사 노동을 공유하지 않으면 가정이 유지되기 어려울 터이다. 일상이란 원래 그렇다.
원래 다니던 방방이 키즈까페보다 좀 더 넓지만, 전부 뽀로로 관련된 장난감들이 주를 이루고, 실제 몸을 쓰는 기구들이 적어 사실 아이는 좀 지루해보였다. 비가 세차던 어제와 달리 해가 맑기에 이럴 줄 알고 밖에서 자전거라도 타며 활력을 빼놓을까 싶었는데, 그래도 새롭게 온데다가 돈 주고 살 장난감들이 자주 보여 아이는 이 곳이 더 좋다 버티었다. 아이는 미끄럼틀과 볼풀장, 방방이에서 주로 놀았지만, 가끔 제 또래의 아이들이 있는가 싶어 한번씩 기차놀이나 주방놀이 하는 곳을 기웃거렸다. 그 또한 아이의 일상일 터이다. 나는 어지간히 아이의 동선이 눈에 들어오고 나서는, 다시 읽다만 김훈 선생의 저만치 혼자서, 를 다시 폈다. 질긴 고기를 여러번 씹듯, 몇 문장씩 눈에 넣고, 속으로 우물거리면서 아이를 보고,
다시 책을 보기를 반복했다.
역사 소설로 주로 명성을 떨친 김훈 선생이지만, 현대를 배경로 한 그의 소설은 세세하다 못해 소소할만큼 일상을 깊게 파고든다. 결국 밥 먹고 술 먹고 여자 만나 자고, 헤어져서 우울해하는 이야기일 뿐 아니냐는, 무라카미 하루키가 공허한 문체 위에 째즈, 음악, 미식을 얹어 일상을 꾸민다면, 선생은 누구나 알고 쓰는 생활 속 단어들로 일상을 꾸민다. 아주 쉬운 말로 시어를 구성하는 김소월 시인과도 맥락이 비슷하다. 김소월 시인이 일상적인 언어로 생각치도 못한 감정을 끌어온다면, 김훈 선생은 명사와 동사를 기묘하게 이어지도록 배치하며, 모두가 알법한 단어들은 생각치도 못한 상황에 놓아두어 같은 상황이라도 다르게 비칠수 있도록 이끈다. 그러므로 김훈 선생이 윤을 내는 일상은, 우리가 늘 겪을법한 일상인데도 또 다르게 느껴진다.
본디 유도 선수였다가 극진 가라테에 입문한 키쿠노 카츠노리는 비교적 늦은 30대 초반에 비로소 UFC에 들어 기라성 같은 거구의 서양 선수들과 겨루게 되는데, 그의 자세는 지금도 종종 회자될 정도로 참으로 비범하고 독특했다. 모두가 양팔로 가드를 올리고 스텝을 뛸때, 그는 양팔을 ㄴ자 로 가볍게 구부려 허리 높이에 두고, 양발을 스치듯이 걸었는데, 극진이 있기도 전에 야마토 사무라이들의 칼에 맨손발로 대적하던 류큐 사내들이 쓰던 옛 오키나와 가라테의 자세였다. 비록 근육으로 단련되었으되 168cm로 아담한 카츠노리의 비어 있는 안면을 노리고, 거구의 서양 선수들이 빠르게 달려들었으나 그는 숙련된 보법으로 상대의 공격을 흘리거나 피한 뒤 스트레이트가 아닌 주먹 찌르기를 카운터로 꽂아 기세를 잡은 뒤, 가까운 거리에서 그야말로 일격필도의 권각 拳脚 을 펼쳐 승리를 거두었다. 비록 본인의 나이듦과 함께, 더욱 커지고, 레슬링의 태클로 하체를 걷어올려 넘어뜨리는 서양 선수들을 대적하지 못해 UFC에 있던 시절은 그리 길지 않았으나 한 시대를 풍미했던 이는 분명하다.
김훈 선생의 글을 읽을때마다, 나는 가끔 이, 불혹의 나이에도 여전히 격투의 무대에 오르는 이 사나이를 생각한다. 제아무리 빠르고 날렵한 괴력의 선수가 있더라도, 손을 낮추고 꼿꼿이 걸어 압박해들어가는 이 중년의 공수가 空手家 처럼, 김훈 선생의 문장 역시 특유의 기세가 견고해 어느 때고 무너지지 않는다. 역사는 가정이 없어, 이미 시간이 지나 못박혀 바꿀수 없고, 매일의 일상은 누구나 대부분 비슷 하여 다를 것이 없으나, 김훈 선생의 손을 타면 그야말로 반짝반짝 윤이 나 달라보인다. 마치 똑같은 단어라도 김소월 시인의 손에서는 시가 되고, 같은 찌르기라도 철족불鐵足佛 상운상이 쓰면 산을 쪼갬과 같다. 나는 두세시간 아이와 키즈까페 가고, 세 번이나 거절했으나 결국 장난감을 사주고, 돌아와 씻기고, 냉면 말아주고, 설거지하고, 빨래하고, 이러고보니 또 아내 올.즈음 되어 저녁준비 무렵이다. 김훈 선생은 이런 내 일상에도 회한이나 낭만을 읽어내실 터이다.